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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일터에서 떠밀린 청년들

입력
2018.12.15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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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칼럼에서 나는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산업재해가 청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작년에 유난히 많은 청년이 일터에서 죽었다. 이 청년들은 식품업체, 음료 제조업체, 콜센터 등에서 일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에도,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에도 그들의 노동과 죽음이 숨어있는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중반의 김용균씨가 홀로 화력발전소의 석탄공급용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중에 사고로 숨졌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업장에서는 2인 1조로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낮은 단가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안전기준에 맞춰 인력 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도 새벽에 홀로 설비를 점검하러 나갔다가 사망했다.

비보와 함께 보도된 사진에서 그는 피켓을 하나 들고 있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도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 아래 “나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또한 하청업체의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산업구조가 하청의 하청으로 분화되고 계층화될수록, 이익은 원청업체가 취하고 위험은 하청업체로 흘러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미숙련 노동자는 대부분 낮은 연령의 청년들로 대체되고 있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업장에서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이윤을 앞세워 원가를 절감하려 하고, 그 부담은 대개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그러다 보니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과 낮은 임금을 떠안으며 노동 세계를 지탱하게 된다.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또래 연구자들과 청년들의 퇴사를 연구해 왔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만큼이나 일터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30대 청년들이 일터를 떠나는 이유로 과로, 낮은 임금, 소진, 계약 만료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사람은 일을 적게 하는 편이라고 여겼고, 대부분 추가 수당 없이 야근이나 주말에 추가 근로를 해야 했다. 임금은 한 달 평균 180만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생활비를 보전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뿐 아니라 상사의 폭언과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버티다 못해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직종에 상관없이 직간접적인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우울증, 무기력증, 어지럼증, 구토 등의 증상을 겪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일터에서 버티고자 했으나 끝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퇴사하게 된 것이다.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청년들과 퇴사를 하는 청년들의 공통점은 일터에서 일터 바깥으로 점점 떠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비록 지금은 임금도 낮고 보상도 적지만 언젠가 승진을 하고 임금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나 보상이 충족되는 일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갈수록 일터의 환경은 개선되기보다 점점 열악해지기만 한다.

정부에서 아무리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일터가 위험하고 폭력적인 곳이라면 누가 그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이제는 청년에게 무조건 일자리를 만들어줄 테니 가서 일하라는 사고방식은 버려야한다. 그 대신 청년들이 일하는 곳이 안전한 곳인지, 한국 사회는 어떤 노동환경을 기준점으로 삼고 개선해야하는지, 일터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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