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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노포기행] 전국 마지막 남은 단관 개봉관 동두천 ‘동광극장’ 지켜야죠

입력
2018.12.15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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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간 운영해 온 고재서 대표 

 “꾸준한 투자로 내부는 현대적” 

 동두천 명물로 SNS에서 입소문 

 추억 찾는 발길에도 月500명 불과 

[저작권 한국일보] 경기 동두천시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자 전국에 마지막 남은 단독 건물의 단관 개봉관인 ‘동광극장’이 보인다. 이 극장은 1959년에 개관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경기 동두천시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자 전국에 마지막 남은 단독 건물의 단관 개봉관인 ‘동광극장’이 보인다. 이 극장은 1959년에 개관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고재서 대표가 동광극장 관객 대기실에 전시해놓은 35㎜ 영사기에 필름을 올려 놓고 돌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고재서 대표가 동광극장 관객 대기실에 전시해놓은 35㎜ 영사기에 필름을 올려 놓고 돌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챠르륵~’.

필름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잔잔하게 퍼져 나왔다. 영사기에서 쏜 빛이 큼지막한 흰색 스크린에 영상으로 비추었다. 비록 상영관이 아닌 관객 대기실이었지만, 은은한 불빛을 내며 부지런히 돌아가는 영사기가 정겹고 멋져 보였다.

35㎜ 구형 영사기를 원형 그대로 보전, 전시중인 곳은 경기 동두천시의 명물 ‘동광극장’이다. 전국에 마지막 남은 ‘단관 개봉관’으로, 여러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곳이다. 단관극장은 상영관이 하나인 영화관을 말한다.

동광극장은 1959년 문을 열었다. 내년이면 개관 60년을 맞는다. 현재는 1986년에 극장을 인수한 고재서(62) 대표가 32년째 매일같이 관객들을 맞고 있다. 고 대표는 당시 극장업을 하던 중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동광극장을 사들였다고 한다.

고 대표는 “지금은 관객이 좀 줄었지만, 1980년대만 해도 극장 안이 관객들로 꽉꽉 찼다”며 “당시에는 영화포스터를 붙이는 직원에다 영사기 기사와 영화 간판을 그리는 화공(畵工)까지 10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할 정도로 극장 규모가 대단했다”고 전성기 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에 걸맞게 영화관의 모습은 흥미롭고 특별했다.

옛 모습 그대로 걸린 노란색 영화 간판은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기자가 찾은 9일에는 ‘반지의 제왕’ 제작진의 신작 ‘모털 엔진’이 상영 중이었다. 영화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추억여행이 시작됐다. 매점과 매표소 등은 옛날 극장 모습 그대였다. ‘응답하라 1988’ㆍ‘시그널’ 등 영화ㆍ드라마 촬영지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도 서 있었다. 관객 대기실에는 잘 관리된 검은색 소파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관객들을 위한 안마의자도 눈에 띄었다. 수족관들과 영화 관련 장난감(피규어) 등 고 대표의 손때 묻은 장식품들은 영화관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동광극장의 60년대 모습이 담긴 사진 등도 걸려 있었다.

이중에서도 35㎜ 필름영사기가 압권이다. 1980년대 당시 2,000만원을 들여 구입한 영사기는 지금도 가동될 될 정도로 건재했다.

그림 3 [저작권 한국일보]고재서 대표가 돌린 영사기에서 쏜 빛이 스크린에 영화 영상으로 비추고 있다. 배우한 기자
그림 3 [저작권 한국일보]고재서 대표가 돌린 영사기에서 쏜 빛이 스크린에 영화 영상으로 비추고 있다. 배우한 기자

고 대표는 “예전에 영사기 기사를 구하기 힘들 때가 있어 직접 조작 기술을 익혔다”며 “요즘에는 대기 관객들을 위해 틀어주곤 하는데, 다들 신기해하면서 좋아한다”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이어 “70,80년대 화공들이 붓으로 간판에 붙일 영화 포스터를 그렸는데, 당시 서울 중심가 극장일수록 그림과 주인공 얼굴이 닮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들려줬다.

화공이 그린 영화간판이 걸리고, 영사기가 돌아가는 추억의 극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필름 영사기는 2000년대 초반 국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극장 체인들이 전 상영관에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단관극장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지켜온 동광극장도 변화에 발 맞춰가고 있다. 2009년 영화 ‘아바타’를 상영하면서 구형 영사기에서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했다. 덕분에 여느 멀티플렉스 극장 못지않은 선명한 화질과 음향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93년 대대적인 내부수리(리모델링)를 통해 스크린과 음향, 의자 등 제반 시설을 현대식으로 싹 바꿨다.

고 대표는 “단관극장은 옛날 시설일거란 선입견을 없애고 고객 편의를 위해 시설개선에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당시 예전 영화관의 필수 시설이었던 무대까지 다 뜯어냈다. 의자도 새 것으로 바꾸면서 상영관 객석도 350석에서 280석 정도로 줄였다.

그래도 상영관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못지않게 깔끔하고 컸다. 1,2층 283석 규모다. 특이하게 2층 첫 줄 관객석 앞엔 다리를 올릴 수 있는 받침대가 설치돼 있다. 고객 편의를 위한 고 대표의 배려다. 1층으로 내려가니 프리미엄 영화관에서나 볼법한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와 안락의자(리클라이너 소파) 등이 설치돼 있었다. 간식거리를 놓을 수 있는 간이식탁(테이블)도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동광극장 상영관은 1993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을 갖췄다. 관객들이 2층석 앞자리 열에서 받침대에 다리를 올려 놓은 채 편안 자세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동광극장 상영관은 1993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을 갖췄다. 관객들이 2층석 앞자리 열에서 받침대에 다리를 올려 놓은 채 편안 자세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실제 영화가 시작되자 몇몇의 관객들이 다리를 쭉 뻗어 받침대에 올려놓은 채 영화를 즐겼다. 무척 편해 보였다. 이날 영화를 관람한 이상철(31)씨는 “추억의 영화관이라고 해서 파주에서 일부러 왔다”며 “영사기 등 신기한 전시품들을 볼 수 있었고, 상영관 좌석도 편해 만족스러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는 “관객들이 편한 게 최고 아니겠느냐”며 “리클라이너 소파 등은 우리 영화관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그간 동광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는 어림잡아 2,500편이 넘는다. 세월의 역사만큼이나 동광극장에 대한 고 대표의 애착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경제적 위기를 몇 번 넘기는 동안에도 동광극장의 운영만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는 시도로 옛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단관극장의 매력을 널리 알려왔다.

고 대표는 “단관극장의 옛 모습을 지키며 대중에게 알린 결과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 각종 방송 드라마나 영화, TV방송에 10여 차례 이상 소개됐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많은 화제가 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생존에 위협을 받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년에 동광극장과 멀지 않은 곳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동두천의 첫 복합상영관이다. 지금도 한 달 평균 관객 수가 많아야 500명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형 영화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빛이 바랜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이젠 현실로 닥쳤다.

[저작권 한국일보] 1959년 단관극장으로 문을 연 경기 동두천 동광극장은 개관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1959년 단관극장으로 문을 연 경기 동두천 동광극장은 개관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배우한 기자

외부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동광극장’이 자리한 중앙동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어서다. 지금도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 언뜻 보기엔 영화관이 있을 법한 장소가 아니다. 70,80년대 동두천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었으나 최근 주한 미군 감축 등으로 심각한 공동화를 겪으면서 유동인구가 현저히 줄었다. 이런 이유로 동두천에서만 2개의 중소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

고 대표는 “이제는 단관극장을 유지하는 게 힘이 부친다”며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일부 대형 영화배급사가 중소도시의 작은 극장에는 영화를 배급하지 않아 이 역시 위기를 겪는 원인”이라며 “이런 부당한 일들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동광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중소 도시 시민들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혜택을 뺏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고 대표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관객 한명 한명을 직접 안내하며 바삐 움직였다. 비장하면서도 무거운 바람도 전했다. “단관 개봉관은 이제 전국에 동광극장 하나 남았다. 어깨가 무겁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예전 영화관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힘들지만, 끝까지 동광극장을 지켜 내겠다.”

[저작권 한국일보] 고재서 동광극장 대표가 필름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고재서 동광극장 대표가 필름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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