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구이로 먹고 남은, 살이 붙은 닭(1.5~2kg짜리)의 뼈를 토막 쳐 2ℓ들이 냄비에 담는다. 뼈가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아주 약한 불에서 2~6시간 데우듯 끓인다. 끓이는 내내 육수의 온도가 82~85℃를 유지해야만 국물이 대류를 일으켜 물리적인 유화가 일어나지 않아 맑은 육수를 얻을 수 있다. 당근 2개, 양파 1개, 소금을 더하고 약불에서 1시간 더 끓인 뒤 깨끗한 팬이나 1리터들이 밀폐용기에 체로 내려 담는다. 맛을 돋우기 위해 마늘 등을 더할 때 통흑후추, 월계수잎, 파슬리, 타임, 마늘, 대파의 푸른 잎, 토마토 페이스트 등을 함께 끓이면 더 좋다.

2017년에 번역을 마쳤지만 아직도 출간되지 않고 있는 책인 마이클 룰먼의 ‘요리의 황금비(가제ㆍ원제는 ‘Ratio’)’의 ‘간편 닭 육수’의 레시피이다. 그렇다, 2~6시간 끓을락말락 하는 온도로 유지해야 하므로 계속 신경이 쓰이는 이 조리법이 무려 간편한 축에 속한다. 대체 누가 닭을 통구이해서 먹고 그 뼈를 고이 모셔 육수를 끓이겠는가. 본격적인 닭 육수는 이보다 더 손도, 신경도 많이 쓰인다. 그래서 11월 24일에 실린 원고(‘양파’)에 ‘소든 닭이든 따뜻한 물만 부으면 바로 육수가 되는 농축 큐브라도 써서 수프를 끓여 먹는 게 낫다’고 썼지만 지금까지 고민했다. 양파는 ‘45분 동안 볶아서 재료의 단맛을 끌어내자’면서 국물은 공산품에 물을 사서 쓰라는 게 앞뒤가 맞는 논리일까? ‘캐시미어 목도리만큼이나 유용한 겨울 채비’라고 묘사했지만 양파만 잔뜩 볶았는데 국물이 없다면 외투도 없이 목도리만 달랑 두른 채로 겨울을 나라고 말하는 형국은 아닐까?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앞에서 늘어 놓은 레시피가 말해주듯 국물이라는 게 제대로 내려면 이렇게 복잡하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저 요리의 바탕이라는 점에서 때로 기가 막힐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너무 많은 부담을 한꺼번에 안기면 결국은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다. ‘세심한 맛’의 연재는 각 회마다 흔한 식재료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현재의 복잡하고 빡빡한 생활의 틈새에 안착해 주면 좋을 법한 아이디어 한가지씩 제안하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지난 번에는 단지 양파 하나만이라도 시간을 들여 볶아보자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렇게 볶은 양파를 집에서 내린 닭 육수에 더해 끓이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요리는 몇 겹으로 더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져 원래도 별로 없는 의욕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게재 후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안되겠다. 겨울에 국물 이야기를 한 번은 해야 도리 아닐까. 마침 원고를 마무리 하는 창 밖으로 올 겨울의 첫 눈이 제대로 내린다. 당장 마감을 마치고 수프든 칼국수든 수제비든 점심으로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어진다. 게다가 양파를 볶는다면 불에 내내 붙어 있어야 하니 그 사이에 짬을 내어 국물을 준비하는 게 차라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물론 부엌에서는 멀티태스킹을 잘못하다가 큰 사고를 낼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손이 덜 가는 육수내기에 대해 살펴보자. 

 감칠맛 도는 국물의 핵심은 ‘켜’ 

본격적으로 육수를 살펴 보기 전에 짚고 넘어갈 이야기가 둘 있다. 첫 번째는 일종의 고백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나의 별명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스스로도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품격 아재’와 ‘엉클 켜(uncle layer)’이다. 품격 아재는 말 그대로 ‘00의 품격’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여러 권 냈으니 붙은 별명이다. 이제는 연작처럼 인식되고 있고 나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내가 ‘품격’이라는 단어를 고른 건 아닌지라 종종 기분이 묘하다. ‘엉클 켜’도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엉클=아재’이므로 결국 ‘켜 아재’라는 뜻이다. 책이며 글을 통해 음식, 특히 국물의 켜에 대해 언급하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그렇다면 대체 켜가 뭐기에 계속 읊고 있는가. 밀푀유처럼 이제는 대중화된 디저트를 보면 밀가루 반죽이 말 그대로 켜켜이 쌓여 있다. 같은 형국으로 음식의 맛에도 일종의 층위가 형성되어 있고 국물도 예외는 아닌데, 다만 많은 맛의 요소가 그렇듯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존재며 필요성을 계속해서 읊다 보면 ‘엉클 켜’와 같은 별명이 붙어 버린다.

국물에서는 대체로 감칠맛이나 재료에서 우러난 젤라틴과 생선이나 동물의 관절의 콜라겐이 열로 변한 것이 이 켜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한마디로 ‘멀겋지 않고 목으로 넘어 가면서 입안을 가득 메우는 듯한 맛’을 느낄 수는 국물이라면 켜도 있는 것이다. 다만 ‘진한 국물=켜가 있는 국물’은 아니다. 감칠맛이 열쇠이므로 조개 등의 맑은 국물도 또렷한 켜를 띤다. 한편 서두의 레시피에서 나열한 것처럼 양식에서는 고기가 붙은 뼈를 굽거나 토마토 페이스트 등으로 감칠맛을 덧입히는 요령을 많이 쓴다. 

두 번째는 육수와 국물의 차이이다. 우리에게는 둘을 ‘바탕’과 ‘결과’로 분류해 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다른 요리의 세계에서도 이 분류를 그대로 쓸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국물을 스톡(stock)과 브로스(broth)로 분류하는데, 고기를 비롯한 각종 재료로 낸 ‘바탕’이 ‘스톡’이므로 육수, 다른 재료를 더해 맛을 낸 결과가 ‘브로스’이므로 ‘국물’이라 옮겨 쓸 수 있다. 최종적인 맛은 당연히 국물이 품지만 역시 바탕부터 좋아야 음식이 맛있다. 서두에서 레시피를 인용한 저자 마이클 룰먼은 ‘인스턴트 닭 육수를 쓰느니 물을 쓰라’고 말하지만 국물 음식이 일상적이면서도 한결같이 멀건 한국의 현실에서는 글쎄,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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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쉽고 효과적인 육수 재료 ‘닭’ 

어쨌든 육수를 내 보자. 가장 만만한 재료는 닭이다. 치킨이 금방 튀겨낼 수 있어 배달 음식으로 흥하듯 육수도 다른 동물의 고기에 비해 빨리 낼 수 있다. 게다가 육수치고도 맛은 중립적인 가운데 말 많고 탈 많은 ‘켜’를 불어 넣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삼계탕처럼 닭을 푹 고아 먹는 음식이 있으니 닭 육수를 딱히 다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장 사소하면서도 또한 가장 큰 차이점이 있으니 닭을 통으로 끓이기를 지양한다. 삼계탕이라는 음식은 닭, 엄밀하게 말하자면 채 자라지도 않은 소위 ‘영계’를 팔팔 끓여 낸다. ‘1인에 생물체 한 마리씩’으로 소유욕을 충족해주는 것은 물론 닭처럼 생긴 식재료가 통째로 뚝배기에 들어 앉아 있으니 취향에 따라 시각적 완결성이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째로는 재료의 표면적이 작으니 조리 시간이 길어지는데다가, 소위 영계는 그야말로 덜 자란 닭이니 감칠맛이나 지방 및 젤라틴으로 인한 진득함이 떨어져 멀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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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닭볶음탕(명칭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어쨌든 표준어이니 일단 넘어가자)용을 육수의 재료로 권한다. 같은 닭이라도 부위 별로 토막을 쳐 놓았으니 표면적이 넓어 빨리 익을뿐더러 맛을 더 잘 우려낼 수 있다. 게다가 토막 쳐, 즉 부분육으로 파는 닭은 통째로 파는 것에 비해 대체로 더 많이 자라 큰 편이라 국물이 좀 더 진하고 진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손질이 되어 나왔으니 일인 가정처럼 한꺼번에 많은 양을 조리하지 않는 경우 몇 차례에 나눠 쓰기에 훨씬 편하다. 닭볶음탕용은 대체로 850g~1.2㎏ 사이이니 2,3등분할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냄비에 토막 낸 닭을 담고 잠기도록 물을 붓는다. 

서양식이라면 ‘미르푸아’라 일컫는 삼대 향신채 즉 양파, 당근, 샐러리를 더해 끓이지만 육수를 위해 따로 사다가 갖출 필요는 없고, 그저 한국인이라면 냉장고에 상비할 가능성이 높은 마늘과 파 정도를 넣고 중불에 올린다. 다만 한두 자밤쯤 소금간을 꼭 한다. 본격적으로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최대한 약불로 낮춰 한 시간 정도 보글보글 끓인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가끔 냄비를 열어 상태를 확인하거나 단백질 찌꺼기인 거품을 걷어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으므로 양파를 썰어 볶기에 충분한 시간인데, 너무 귀찮아서 양파 같은 건 볶을 수 없다면 주말에 부엌 혹은 집 청소를 하는 사이에 끓인다. 혹 성질이 급해 양파 썰기도 청소도 싫고 그저 육수나 최대한 빨리 내고 싶다면 조리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여주는 압력솥도 있다. 같은 요령으로 재료를 담고 끓여 밀폐되면 30분 끓였다가 불을 끄고 그대로 압력이 빠질 때까지 둔다. 다 끓인 육수는 실온에서 그대로 식혀도 엄청나게 큰 문제는 없지만 솥째 찬물에 담가 최대한 빨리 식힐 때 변질 우려가 없어 좀 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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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여 식히기까지 끝났다면 당장 칼국수든 죽이든 수프든 끓여 먹어도 좋지만 너무나도 갑자기 국물이 생각날 때를 대비해 비축해 둔다. 고기는 건져내 따로 대접에 담는다. 계량컵 등에 냉동 보관용 지퍼백을 벌려 씌우고 국자로 국물을 떠 담는다. 1컵(200~300ml)쯤 담기면 지퍼백에 담긴 공기를 완전히 빼 최대한 납작하게 만들어 주둥이를 닫는다. 지퍼백의 표면에 내용물의 명칭(닭 육수)와 낸 날짜를 쓴 뒤 납작하게 누운 채로 쟁반에 올려 냉동실에 얼린다. 꽝꽝 얼면 세워 나란히 보관할 수 있으니 냉동실의 공간을 한결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언제든 국물이 먹고 싶을 때 꺼내 봉지에서 잘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에 1,2분 돌린 뒤 냄비에 끓인다. 평소에는 닭죽을 주로 끓여 먹는데, 요즘은 국물을 내고 남은 닭고기와 당근, 푸실리나 오레키에테 같은 짧은 파스타 혹은 오트밀을 넣고 수프를 자주 끓여 먹는다. 짧은 파스타가 없다면? 스파게티 같은 긴 면을 부스러기가 산지 사방으로 튀지 않도록 종이 행주로 감싸 서너 토막으로 뚝뚝 꺾어 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처럼 영혼까지 달래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제법 길어진 겨울 밤의 싸늘함을 버틸 수 있을 만큼은 푸짐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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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인스턴트 닭 육수 활용법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그저 국물만 갖추고 싶다면 ‘양파’ 편에서 잠깐 언급한 인스턴트 육수가 찬장의 귀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고형과 페이스트형 두 종류가 대세인데, 최대한 원료의 목록이 짧은 것을 사는 게 맛과 상관 없이 마음 편하다. 온갖 첨가물이 난립하는 세상이다 보니 영어 문화권에서는 ‘직관적으로 발음할 수 없는 원료가 들어간 식품은 사지 말라’는 말이 통한다. ‘모노글리세라이드’ 같은 첨가물이 대표적일 텐데, 인스턴트 닭 육수에는 이렇게 어려운 이름의 첨가물까지는 대체로 쓰지 않는다. 다만 감칠맛을 더하는 효모 추출액이나 질감 향상을 위한 말토덱스트린 같은 종류는 거의 공통적으로 쓰이니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인스턴트 육수 단독으로 쓸 수도 있지만 집에서 낸 닭 육수가 심심하다 싶을 때 지원 역할을 맡겨도 좋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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