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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동료 있었다면… 또 한명의 ‘김군’ 죽음 부른 1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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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동료 있었다면… 또 한명의 ‘김군’ 죽음 부른 1인 근무

입력
2018.12.12 18:00
수정
2018.12.14 15:5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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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1일 충남 태안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하청업체 근로자 김용균(24)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이날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1일 비정규직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그림 111일 충남 태안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하청업체 근로자 김용균(24)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이날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1일 비정규직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또 한 명의 ‘김군’이 세상을 떠났다. 11일 새벽 충남 태안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9ㆍ10호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24)씨다.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김모(19)씨처럼 ‘2인1조’로 해야 할 작업을 홀로 하다가 벌어진 일로, 그는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인지 4시간이 흐른 후에야 발견됐다. 김군들의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나오는 이유다.

12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보령지청에 따르면 사망한 김씨가 속한 태안화력의 현장설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사고 당시 2인1조 근무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이날부터 한국서부발전을 비롯한 발전5개사 본사 및 석탄화력발전소 12개사에 대해 긴급 안전ㆍ보건 실태점검을 실시한다.

한국서부발전 노조는 사측이 비용을 절감한다면서 설비 점검 등 운영과 안전관리에 필요한 인원을 감축해 2인 근무가 아예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입사 3개월 차의 미숙련 근로자였던 김씨가 컨베이어 점검 작업을 홀로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년 전 구의역 김군이 일했던 은성PSD도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용역 받은 서울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유지ㆍ보수 업무를 2인1조로 진행하려면 최소 10명이 필요했지만 실제론 5, 6명이 맡도록 했다. 판박이다.

2인1조 ‘안전 매뉴얼’ 무시는 열악한 사정의 하청업체뿐 아니라 공공기관, 공기업에서도 벌어진다. 최근 발생한 강릉선 고속열차(KTX) 탈선 사고에서도 신호를 점검하는 전문 인력은 2인1조로 움직여야 하지만 다른 직원의 장기 병가로 1명이 업무를 도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 비상 상황에서 초동 대응을 담당하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가축 방역사들도 노조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복무규정 상 2인1조가 원칙임에도 방역직(333명)의 60%(178명)가 1인 근무를 하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혼자 축사에 들어갔다가 소에게 받혀 손가락 절단이나 신체골절은 물론 안면마비가 생긴 방역사도 있다는 설명이다. 2015년 2월에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사가 역시 2인1조로 일해야 하는 맹수사에서 혼자 근무하다가 사자에 물려 사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더라도 법 위반이 아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업무를 2인1조로 담당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일부 사업장에서 근로자의 위험을 방지하려 2인1조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도 비용절감과 효율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인력을 감축하면서 지키지 않는 게 다반사다. 2016년 김군의 사망 후 철도 운행 시 기관사 및 운전업무 종사자 2명의 승차를 의무화 한 ‘철도안전법 개정안’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 개정안이 쏟아졌지만 이날까지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달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며 28년 만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사고는 안전 관련 규정이 있어도 이를 적절히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다”면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법ㆍ제도 보완과 더불어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2인1조가 원칙이니 다른 근로자를 불러달라’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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