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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지만 않게 해달라”는 ‘위험 외주화’ 하청노동자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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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지만 않게 해달라”는 ‘위험 외주화’ 하청노동자의 절규

입력
2018.12.1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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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0일 밤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인 24세 청년이 설비 점검 중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발전소 운전ㆍ정비를 맡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위험 외주화’에 의한 사고다. 한 사람이 기계에 끼여도 동료가 기계를 멈출 수 있도록 ‘정규직이 2인 1조로 하던 업무’가 외주 체제에서 1인 순찰제로 바뀌는 바람에 막지 못한 사고로 보인다.

2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이번 사고는 발전소 관리 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간 뒤 경쟁입찰을 통해 하청업체가 맡았을 때부터 예견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익 창출을 업무 최우선 순위에 두는 민간, 그것도 하청업체에 안전업무를 맡기다 보니 비용 최소화를 위해 인력을 줄이는 발상이 작동하고, 그 과정에서 안전관리도 소홀해지기 일쑤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일을 떠넘긴 원청기업은 ‘나 몰라라’ 하는 게 다반사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2016년 서부전력 등 한전에서 분사한 5개 발전사에서 일어난 사고 가운데 97%가 하청 업무에서 발생했다. 2008년 이후 9년 동안 산재 사망자 40명 중 하청노동자가 37명이었다. 이번 사고도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20대 청년이, 비록 1년 후 정규직 전환 조건이었다고는 하나, 비정규직 상태로 익숙하지 않은 야간근무를 혼자 하다 발생했다. “기업의 90%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다는 노동계 주장을 감안하면 제대로 감독도 못하고 사후 대책만 남발하는 정부 책임이 크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고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했거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원청 사업주 처벌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환경노동위에서 법안을 제대로 한번 논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기국회가 끝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호소하기 위해 11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자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발전소 하청노동자는 이번 사고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국회의 태만이 또 꽃 같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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