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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퀸의 추억 소환을 넘어서

입력
2018.12.1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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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왼쪽)와 보컬 프레디 머큐리. 퀸 공식 홈페이지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왼쪽)와 보컬 프레디 머큐리. 퀸 공식 홈페이지

1985년 7월13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7만 여명의 청중들에게 영국의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비디오 한 편을 소개했다. 대기근이 발생한 에티오피아 난민촌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한 영국 기자가 “성경에서나 보던 대기근”이라 표현할 정도로 끔찍했던 현장에서 눈이 반쯤 감긴 채 죽음을 기다리던 세 살 소녀의 모습이 캐나다 방송국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소녀의 이름은 비르한 울두. 천에 싸여 땅에 묻히기 직전 기적적으로 호흡을 이어간 그는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의 상징이 됐다. 울두의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은 사람 중에는 당시 영국 노동당의 젊은 하원의원이었던 토니 블레어도 있었다. 그는 훗날 당시 소녀의 모습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까지 했다.

그 날 그 장소에서 록 밴드 퀸은 전설로 남은 명연을 펼쳤다. 20여분간 관중을 휘어잡은 그들은 이벤트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고, “쇼를 훔쳤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무대에 서기까지의 스토리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담겼다.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 덕에 한국은 지금 퀸 열풍이 한창이다.

그 날 퀸이 ‘훔친’ 쇼는 ‘라이브 에이드’다. 폴 매카트니, 엘튼 존, U2, 스팅, 다이어 스트레이츠 등 쟁쟁한 스타들이 한 무대에 섰는데, 그게 가능했던 건 행사의 이름처럼 굶주리는 에티오피아 난민을 돕자는 ‘공감과 연대’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브 에이드의 주인공은 퀸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난민이다.

라이브 에이드에서 죽음 직전의 모습이 공개됐던 소녀 울두는 건강하게 성장해 20년 뒤인 2005년 런던에서 열린 ‘라이브 8’ 콘서트에 주인공으로 섰다. 라이브 에이드를 기획했던 가수 봅 겔도프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G8 회의 참가국들에게 아프리카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울두는 무대에서 청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마돈나는 그와 포옹한 뒤 손을 꼭 잡고 노래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시혜적 지원이 부패한 정부와 독재자의 지배구조를 강화한다는 비판, 겔도프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 등 라이브 에이드를 둘러싼 잡음도 적지 않았지만, 빈곤 문제에 전세계의 관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성과는 분명해 보인다.

약자의 아픔에 공감해 그들을 지원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음악인들의 전통이기도 했다. 1969년 미국에서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존 바에즈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은 평화와 반전, 사랑을 노래했고, 1970년대 영국에서는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록(Rock Against Racism)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0년대 국제사면위원회의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투어에는 U2, 스팅,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톱스타들이 참여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수많은 가수들이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아픔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돌풍을 보며, 퀸의 노래가 도대체 우리의 어떤 감성을 건드렸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울컥‘하고 열광하는지 궁금하지만 감히 분석할 능력은 없다. 다만 음악은 개인적 기억을 담는 장치이기도 하니, 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에겐 그들의 노래에 수 만가지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연말을 맞아 퀸의 노래들은 곳곳에서 떼창으로, N차관람으로, 음원 다운로드로, 쉴새 없이 소비될 것이다. 아름다운 퀸의 노래를 마음껏 추억으로 소환하되, 그들이 화려하게 지배했던 라이브 에이드의 정신도 함께 소환해보면 좋겠다.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해 행동하는 정신 말이다.

한준규 디지털콘텐츠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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