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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수성가(自手成家) 뒤집어 보기

입력
2018.12.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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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自手成家). 사전적 의미는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一家)를 이룸. 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事業)을 이룩하거나 큰일을 이룸’이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혼자 힘 만으로 집안이나 사업을 일으킨 것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내 힘으로 이뤘다’는 것에 도취되어 ‘흥.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당신들이 뭐 보태 준 거 있어?’라며 어깨에 힘을 주는 이들도 있다. 그 오만한 태도는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래, 너 얼마나 잘 되나 보자.’라는 억하심정까지 낳는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누군가의 성공을 온전히 ‘개인화’할 수 있을까. 정말 말 그대로 ‘나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을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그 성공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지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과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내 손으로 다 이뤘단 말이야. 당신들, 뭐 도와준 거 있어?’라는 오만한 태도는, 결국 혼자만의 초라한 ‘성공’이 되고 말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자수성가는 없다’는 말이 더 옳지 않을까 싶다.

‘당신이 어떤 성취를 했든, 누군가가 당신을 도왔다.(No matter what accomplishments you make, somebody helped you.).’ (앨시어 깁슨ㆍAlthea Gibson, 1927~2003)

변호사로서 다양한 사건 상담을 하다 보면, 인생이 얼마나 다이내믹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닥까지 추락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가 하면, 몇 년을 힘들어 하던 사람이 좋은 기회를 만나 멋지게 재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언제까지 잘 나가는 사람은 없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을 때 본인의 대처 못지않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도와주는가가 경우마다 다 다르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인심저축(人心貯蓄)’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우리가 저축을 하는 이유는 평소 여유자금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유사시에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 돈을 저축하는 일 못지않게 인심을 저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저축해 놓은 인심은 내게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빛을 발한다. 어떤 이가 인생의 위기를 맞았을 때, 평소 인심저축을 해 놓지 않아 인심계좌가 마이너스 상태라면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불행을 통쾌하게 여긴다. 하지만 내 인심계좌 잔고가 충분하다면 내 어려움을 보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쟤는 복도 많아. 저렇게 도움을 받네?’라고 부러워하지만 실은 그 사람이 평소 주위에 인심을 저축해 놓은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궁할 때 받을 것이 없다(有而不施 窮無與也ㆍ유이불시, 궁무여야).

순자(荀子)에 나오는 문장이다. 꼭 돈이 아니어도, 필요할 때 요긴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가 인심저축의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으리라. 옛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두고 ‘선을 쌓는다(積善ㆍ적선)’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인에게 실천적인 처세의 지혜를 주는 채근담(採根談) 한 구절을 소개한다.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 양보해 상대방에게 길을 열어 준다(徑路斫處 留一步 旅人行ㆍ경로작처 유일보 여인행).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3할을 덜어 남에게 나눠 주고 함께 즐긴다(滋味濃的 減三分 讓人嗜ㆍ자미농적 감삼분 양인기).

이것이 한 평생을 살면서 가장 안락하게 사는 비법이다(此是涉世一極安樂法ㆍ차시섭세일극안락법)’.

‘내가 다 했단 말야!’가 아니라 ‘어르신 덕분입니다.’, ‘김 과장이 애써 준 덕택이지.’라는 푸근한 마음. 내 인심계좌를 채우는 길이리라.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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