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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프랭크 시나트라(12.12)

입력
2018.12.1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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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 소사이어티'에 출연한, 마티니를 든 시나트라(왼쪽).
영화 '하이 소사이어티'에 출연한, 마티니를 든 시나트라(왼쪽).

프랭크 시나트라(Francis “Frank” Sinatra, 1915.12.12~1998.5.14)는 1940년대 스윙시대의 가수면서 50~70년대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의 폭풍 같은 인기를 뚫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가수”, “미국 대중음악을 정의한 가수”라는 찬사를 누린다. 5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탔고, 레코드 회사를 차려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에바 가드너, 미아 패로 등과 결혼, 이혼을 반복했고, 메릴린 먼로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 그래미 레전드상 등 예술상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가 훈장과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1985), 의회 명예황금훈장(1997)을 받았다.

폴 앵카가 가사를 쓴 69년 노래 ‘My Way’처럼 그는 법ㆍ도덕의 평가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원하는 바의 쾌락을 절제 없이 추구했다. 특히 “남자에게 술은 최악의 적이지만,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술을 각별히 즐겨 ‘시나트라의 음주법’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떠돌 정도였다. 그리고 의학적 상식을 비웃듯, 비교적 건강하게 만 82년을 살고 평온하게 숨졌다.

그의 부모는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술집을 운영한 이탈리아 이민자였고, 그는 금주법 시대의 술과 마피아들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복서여서 이래저래 폭력과도 친숙했다고 한다. 그는 고교를 중퇴한 불량청소년이었지만, 빼어난 목소리와 멋진 외모를 물려받았다.

전성기인 1955년 한 쇼 무대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다는 위스키 ‘잭 다니엘스(Jack Daniel’s)’를 들고 나와 “신의 음료”라고 찬사를 퍼붓자 이듬해 판매량이 두 배로 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단골 술집에는 어디나 그의 지정석이 있었고, 그중 한 곳인 프랑스 파리 사보이 호텔 바의 바텐더들은 그가 사랑한 칵테일 ‘마티니’의 시나트라식 칵테일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중독 수준의 술꾼에다 말년까지 골초였고, 앨비스 프레슬리 못지 않게 불면증에 시달렸다.

유명한 건강 블로그를 운영하는 의사 랄프 싱크(Ralph Cinque)란 이는 다혈질이던 시나트라가 양극성장애를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방종한 생활 습관과 지속적인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무병장수한 비결은 실로 불가사의라고 평하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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