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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풍 심해 귀마개ㆍ장갑 낀채 잠들어… 전기매트 한 장뿐, 감기 달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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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풍 심해 귀마개ㆍ장갑 낀채 잠들어… 전기매트 한 장뿐, 감기 달고 살아”

입력
2018.12.10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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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와의 사투 벌이는 쪽방촌 사람들

[저작권 한국일보]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에서 강기영씨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에서 강기영씨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보일러는커녕, 전기매트 하나에 의지하며 견뎌요.”

올 겨울 가장 추웠던 9일(오전 7시 기준, 영하 11.8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서 만난 강기영(61)씨는 이불 속에서 한파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일러 없는 4.95㎡(1.5평) 남짓한 쪽방에 추위를 녹일 물건이라곤 1인용 전기매트가 유일해 강씨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상상 이상일 듯 했다. 당시 서울 체감온도는 영하 17도다. 기자가 롱패딩 차림으로 들어갔는데도 한기가 엄습해 집 바깥이랑 구분이 안됐다. 폭 1m 남짓한 쪽방촌 골목길엔 바람마저 거세 오가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7일부터 사흘 연속 올 겨울 서울지역 최저기온을 경신한 주말 쪽방촌은 무거운 정적 속에 최강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20년 넘게 쪽방촌에 살면서 추위에 이골이 난 강씨는 전기난로를 사볼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접었다. 창문 없는 벌집형 구조인 쪽방이 화재에 취약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집주인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온열기구 사용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미닫이 문 틈 사이로 찬 황소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콜록콜록 기침을 해댄 강씨는 “감기로 한 달째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나을 기미가 없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200m쯤 언덕을 올라가야 나오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형편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 쪽방촌 건물은 대부분 콘크리트 외벽이 아니라 가건물에 쓰이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웃풍이 특히 심했다. 동자동 쪽방촌에 3년째 살고 있는 이모(60)씨는 “집주인이 보일러를 밤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만 틀어주는 데다 웃풍이 너무 심해 공기가 너무 차다"며 "귀마개와 장갑까지 낀 채로 잤다"고 하소연했다.

동파는 쪽방촌 주민들이 겨울철마다 만나는 불청객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추위가 몰아친 지난 7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접수된 동파 신고가 101건. 방원길(61)씨 쪽방촌 집도 이를 비켜가지 못했다. 한파주의보(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가 내려진 7일 아침, 전기포트에 물을 데워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인 후에야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목욕이나 빨래는 언감생심이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정현(61)씨는 “겨울이 되면 빨래나 목욕을 하기 위해 따뜻한 물이 나오는 동자동 쪽방촌희망나눔센터를 찾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주민이 하루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해가 저문 쪽방촌의 저녁은 한기로 더 적막했다. 창신동 쪽방촌은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불빛만 새나올 뿐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동파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조금 튼 공용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추위로 이내 얼어버린 듯, 바닥이 꽁꽁 얼었다. 전기매트 하나로 추운 겨울 밤을 견디는 한 쪽방촌 주민은 방 안에서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대며 기승을 부리는 저녁 한기를 달랬다. 이 주민은 “이 곳에서 20년째 겨울을 맞지만 매번 버티기 힘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쪽방촌 5곳에 거주하는 주민은 3,197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52%)이 기초생활수급자, 나머지가 65세 이상 홀몸노인(34%) 장애인(10%)인 취약계층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집안에서 저체온증, 동상을 포함한 추위로 고통을 호소해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83명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는 쪽방촌 주민으로 추정된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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