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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사 풀린 안전, 운에 기대나

입력
2018.12.09 19:22
수정
2018.12.09 21: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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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사 풀린 안전, 운에 기대나

정책 실현이 그럴듯한 이론이나 개념, 구호만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양극화 문제 해결과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소득주도 성장이나 포용경제를 표방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지만 나타나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니 시중의 냉소가 늘어나는 형편이다. 세금주도성장이니 하는 말들이 반대진영이 지어낸 단순한 말장난으로 비치지 않는다. 최근 두드러진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다. 뚜렷한 명분과 구호가 정책 실현과 경제 문제만큼 심각하게 괴리를 보이는 분야는 기자의 눈엔 안전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세월호 4주기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이 세월호로부터 시작됐으며, 본인이 더 정치를 절박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이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이기도 하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때마다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보기 드문 사고 유형에 국민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그 과정에 정책 결함과 부실이 여실히 드러나 실망을 안긴다. 국가안전대진단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겉핥기식, 백화점식 안전대책 폐단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지난 2월부터 두 달간 민관 합동으로 다중이용시설 등 34만여 곳을 점검하고 대통령도 노고를 치하했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부실 안전진단이라는 게 결과로 나타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9일 화재로 사망자 7명을 포함해 18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종로의 고시원 건물은 35년 전 지어져 ‘기타 사무소’ 즉 일반 사무실 용도로 등록돼 있어 국가안전대진단 점검 대상에 빠져 있었다. 스프링클러 하나 없이 화재 무방비였던 이 건물의 문제점에 대해 관할 구청이나 소방당국이 과연 몰랐을까. 그냥 법대로, 관행대로 점검 대상을 정했을 터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서북권 유ㆍ무선 통신망, 카드결제 시스템까지 마비시킨 KT 아현지구 통신망 화재 역시 전국망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국가안전대진단 특별점검대상에서 빠져있었다. 안전관리 비중이 떨어지는 D등급인 이 통신구는 CCTV나 스프링클러 없이 소화기 한 대 비치된 게 전부인 취약시설로, 상식적으로는 대형 통신구 이상의 엄중한 점검과 방비 대책이 필요한 대상이어서 관리등급체계의 문제를 드러낸다. 화재 원인은 여전히 모른다. 난방용 열수송관 파열로 100도에 가까운 뜨거운 물에 사망자 1명을 포함한 40여명의 사상자가 난 16일 경기 일산 백석역 사고로 정부는 노후 열수송관 점검과 조기 교체를 지시하는 뒷북을 쳤다. 하지만 일산과 같이 노후관이 깔린 1기 신도시인 분당에서 올 초 이미 두 차례나 같은 사고가 났음에도 그 원인을 깊이 파지 못하고, 연쇄 사고 조짐을 무시한 결과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강릉발 서울행 KTX 탈선은 하늘이 대형 인명피해를 막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충격적인 사고다. 100km 고속운행 상태에서 객차 두 량이 내동댕이쳐질 정도로 심각한 탈선사고임에도 천만다행으로 10여명의 경상자만 났다. 지난 3주간 10여 차례 크고 작은 고장에 총리의 엄중 경고, 책임자 보직 해임 조치가 있었음에도 일어난 대형사고라 할말을 잃게 한다. 시스템 문제든, 기강 해이로 인한 인재든, 낙하산 문제든 뿌리부터 썩지 않았는지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코레일 나사는 풀려도 너무 풀렸다.

지난 9월 메르스 환자 발생 때 박근혜 정부의 대응실패를 교훈 삼은 듯 이 정부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고 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황당하고도 놀라운 사고를 보면 세월호 참사를 중심에 두고 국민 안전을 다루고 있다는 이 정부가 안전 문제에 얼마나 깊이 천착하고, 과잉대응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고위험 사회’에서 행운에 속지 말라고 당부해야 할 지경이다. 말의 성찬으로 재난을 막을 순 없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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