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장애 컨설턴트

[저작권 한국일보]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8_김경진기자

30년 넘게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물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신을 소환해 따지고 욕하는 등 분노와 슬픔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장애가 있는 아들과 나는 삶을 살아나가야 했기에 막막함이 가장 컸다.

비단 자식이 장애인일 때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살다가 어느 순간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를 갖게 되면,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몸부림칠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장애 컨설턴트’다. ‘장애’가 있는 삶에 대해 구체적 가이드를 해주고 삶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 줄 ‘장애 전문가’ 말이다.

약칭 ‘장판’이라 불리는 장애인판에서는 장애 컨설턴트의 필요성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민간에서의 움직임에 그칠 뿐 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시도나 고민은 시작되지 않았다. “필요성은 느끼는데…” 정도에 그친다.

금융전문가, 법률전문가, 보험전문가처럼 ‘장애 전문가’도 그냥 양성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장애를 둘러싼 전문가 집단 간의 얽히고설킨 역학관계도 있거니와 그 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나는 작업치료사가 중심이 된 ‘장애 컨설턴트’에 대해 제안해 보고 싶다. 작업치료사는 신체 손상을 입은 이들이 일상생활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의사도, 사회복지사도, 특수교사도, 교수 집단도 아닌 작업치료사가 중심이 되어야 할까?

아들이 작업치료사를 처음 만난 건 두 살 때였다. 소근육 발달이 더뎌 숟가락질도, 물건 쥐기도 잘 되지 않았다. 작업치료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안을 들여다보면 주사위나 공 등을 갖고 놀며 손가락 움직이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은 네 살 때 ‘혼자 걷기’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다리 힘이 더 들어가야 하는 계단 오르기는 도무지 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결국 재활치료사가 치료 종결을 권하기에 이르렀다. “계단을 오르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본인 의지가 없으니 치료도 지속하기가 힘듭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 사느라 나는 5년간 아들을 안고 매일 4층까지 오르내렸다. 내 3번과 4번 척추 사이 연골이 모두 닳아 없어진 건 그 때문이다.

다섯 살이 된 아들은 또 다른 병원의 작업치료사로부터 감각통합치료(작업치료의 일환)를 받았다. 실내놀이터처럼 생긴 공간에서 말 그대로 놀았다. 360도 움직임이 가능한 그네를 타거나 트램펄린에서 뛰었으며, 무지개 사다리를 건너고 장애물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런데 감각통합실에서 놀고만 오는 줄 알았던 아들은 그 놀이를 통해 계단 오르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무지개 사다리를 건너면서, 미끄럼틀 계단을 오르면서, 그렇게 노는 듯 치료를 받으면서 재활치료에서는 되지 않던 신체기능 향상이 작업치료에서 가능해진 것이었다.

분명 각 치료마다 다른 목적이 있고 아들이 받았던 감각통합치료는 말 그대로 민감하거나 둔화된 여러 감각들을 잘 통합시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아들은 작업치료를 통해 재활치료 영역에서 발전을 보인 걸까? 그 이유를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지난 9월부터 나는 장애 아이의 엄마들과 함께 감각통합 스터디를 시작했다. 두 명의 작업치료사 선생님을 모셨다. 시작할 때만 해도 그냥 공부할 생각만 있었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터디가 진행될수록 눈이 크게 떠졌다. 작업치료란 그냥 손가락 잘 움직이게 하고 여러 감각을 통합시켜서 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과 활동들을 통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작업치료였다. 그러니 아이가 작업치료를 받다가 재활치료 영역에서 발전을 보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이 계단 오르기 활동에서 애를 먹을 때 작업치료사는 “왜 계단을 오르려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신경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아들의 감각적인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봤고, 의지의 문제라면 어떤 환경적 요소가 아들의 의지를 막고 있는지 등을 먼저 파악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충족시키거나 제거하면서 아들이 계단 오르기라는 활동을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작업치료는 모든 다른 치료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모든 치료 시에 작업치료사가 함께 협력해 각 과목별 기능의 향상이 일상생활 활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어디 그뿐이랴. 학교라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면 작업치료사와 특수교사의 협력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가정 내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아들을 담당했던 두 명의 작업치료사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다. 원인을 생각해보니 작업치료사들의 활동공간이 치료실 안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이나 센터 내에 있는 작업치료실에서 30분의 작업치료를 받고 5분 남짓의 상담을 하는 구조.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말은 “오늘 아이가 어땠어요” 뿐이었다.

캐나다는 작업치료사가 장애인의 생활지원까지 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작업치료사가 가정방문도 하고, 물리치료실에도 동행하며, 운전면허를 따야 할 땐 같이 가서 필요한 지원 여부를 알아보고, 학교에서 특수교사들과 협력할 방안도 찾는다. 우리나라에선 그럴 수가 없다. 작업치료사는 보건복지부 관리하에 있는 ‘의료기사’이므로 법에 명시돼 있는 ‘행위’를 했을 때만 수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업치료사가 치료실 안이 아닌 치료실 밖에서도 그들의 장점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업치료사가 개인 자격이 아닌 국가 차원의 ‘장애인 전문 생활케어 인력’이 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공간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제일 좋은 것은 전국 각지에 거점기관을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또 예산 타령을 할 것이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보건소에라도 배치해 주면 어떨까 싶다. 보건소마다 사무실 하나씩이라도 마련되면 누구나 접근성 좋게 작업치료사와 연계돼 일상생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쯤 되면 “왜 하필 작업치료사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물론 다른 장애 관련 전문가들도 컨설턴트를 할 수 있지만 경험상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작업치료사가 좀더 적격이라고 본다.

먼저 의사들은 현행 수가 제도가 바뀌어 5분씩 환자를 보는 병원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 장애 컨설턴트에 지원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하다못해 ‘장애인 건강주치의’ 모집에조차 많은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는 ‘장애’를 ‘삶’이 아닌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건 의사 개인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건강관리를 위한 지표로 국제질병분류(ICD)의 10번째 번역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수교육계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여러 상담을 하고 있지만 그곳에서는 학교와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교를 벗어난 장애인의 삶은 그들이 잘 모르는 세계다. 사회복지사 역시 제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의료적 지식이나 치료적 접근법에 있어서는 기대할 수 없고, 다른 과목의 치료사들은 국가관리 하에 있는 게 아닌 수백 개의 민간자격을 통해 치료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자격 미달인 자들을 가려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작업치료사는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지점에 서 있다. 생리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의사들과의 협업도 가능하고, 장애인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공간(학교, 치료실,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상생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해 지원을 할 수가 있다.

10년간 아들을 키워보니 알겠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아들도 나도 똑같은 일상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나간다. 다만 아들에겐 장애가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인 나는 알지 못했던 여러 지원이 필요하다. 그 막막함을 뚫어줄 ‘장애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작업치료사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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