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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토론하는 회원제 공간 운영… 우리 시대 살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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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토론하는 회원제 공간 운영… 우리 시대 살롱이죠”

입력
2018.12.1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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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사교클럽 ‘취향관’ 운영자 고지현 박영훈 씨 

회원제 특성상 취향관이 유료 인맥모임이나 소개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취향관을 설계한 박영훈(왼쪽), 고지현씨는 “결국 이 공간은 회원들의 대화로 완성되기 때문에 어떤 분들이 참여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회원 가입은 반드시 취향관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후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회원제 특성상 취향관이 유료 인맥모임이나 소개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취향관을 설계한 박영훈(왼쪽), 고지현씨는 “결국 이 공간은 회원들의 대화로 완성되기 때문에 어떤 분들이 참여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회원 가입은 반드시 취향관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후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을. 그런 이유로 그 이들과 한패로 묶인다면 영광이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에 나온 등장인물의 이 대화는 본래 문학평론가 김현의 것이다.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1975년에 발표한 비평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속의 이 문장은 여전히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취향관’은 무용한 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돈과 시간, 노력을 들이는 장소다. 3개월 단위로 회원을 모집, 회원 스스로 주제를 정해 토론, 감상 교실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잡지로 만든다. 4월에 정식 개관된 취향관은 100% 회원제로만 운영한다. 이곳의 3개월 이용료는 45만원. 돈 버는 직장인도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10~12월 멤버십으로 등록한 사람만 이미 100명을 넘었다.

취향관의 운영자는 서른두 살 동갑내기인 고지현, 박영훈 씨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고지현씨는 “취향관은 대화를 나누고 영감을 교환하는 회원제 사교클럽이다”며 “우리 시대에 맞는 살롱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영훈씨는 “일상에서 각자의 취향을 나누며 대화할 상대를 만나기가 어렵다. 이런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한 취향관의 경우, 1층은 회원들의 대화 공간으로, 2층은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열 ‘살롱’으로 각각 선보였다. 회원들은 운영 시간 내 취향관의 모든 공간과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사교모임이 목적인 만큼 우연히 만난 다른 회원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대화를 차단하는 장시간의 노트북 사용은 금지된다. 고지현씨는 “회원 가입 때 이름과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만 기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알긴 어렵지만 이용객의 대부분은 20대에서 40대”라며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고, 회원들끼리 묻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최대 2명까지 회원 아닌 손님을 동반해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2층 방을 대관해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스스로 운영할 수도 있다. 음악살롱, 영화살롱, 토론회 등이 수시로 열리고 두 대표는 종종 ‘마담’으로 출연, 살롱의 대화를 이끌기도 한다. 각 시즌마다 회원들과 나눈 결과물은 잡지로 만든다. 박씨는 “취향관은 회원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널리 소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회원 가입을 하진 않았지만 취향관의 콘텐츠를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잡지로 기록해 배포하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필요한 잡지 전문 인력(3명)은 별도로 충원했다.

취향관은 서울 합정동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4월 문을 열었다. 취향관 홈페이지
취향관은 서울 합정동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4월 문을 열었다. 취향관 홈페이지

새로운 이색 소통공간으로 자리한 취향관의 밑그림은 8년 전, 우연한 기회에 그려졌다. 취향관을 설계한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약 1년 동안 근무했던 인턴사원 시절 마주쳤던 게 계기였다. “부서가 달라서 얼굴만 알고 지내다 인턴십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우연히 마주쳤어요.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을 툭툭 던지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 마음이 많이 갔어요. 이끌리듯 친해졌죠.” 박영훈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인생의 큰 그림들을 공유했다. 대학졸업 후 박씨는 청와대 정식 직원으로, 고씨는 CJ E&M 직원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취향관 설계에 뜻을 모았다.

안정된 직장 대신 취향관을 열면서 주변의 우려는 없었느냐고 묻자 “워낙 오랫동안 해온 얘기라 ‘언제 시작하냐’는 문의가 더 많았다”(고지현)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이 관심사가 비슷했어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일을 하고 싶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몸 담는 곳이 큰 조직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박영훈)

고씨는 회사 상사가 나와 차린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겼고, 박씨도 청와대를 그만두고 그곳에 합류했다. 1년여를 함께 일한 이들은 지난해 5월 같은 날 퇴사와 함께 취향관 개관을 준비했다. 적지 않은 길을 돌아온 탓이었을까. 성취감과 보람은 컸다고 했다.

“직장 다닐 때는 직원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주어진 역할하기에 급급했는데 취향관을 운영하면서 저를 되돌아보고 에너지를 얻게 됐어요. 아직 1년째라 재단하긴 이르지만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면서 한번도 피곤한 적이 없었습니다.”(박영훈)

“여러 사람과 취향에 관해 얘기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거든요. 취향관을 운영하면서 저 자신이 가장 많이 바뀌었죠. 자연스럽게 제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으니까요.”(고지현)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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