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섭씨 100℃의 펄펄 끓는 물을 뒤집어 쓰고 귀갓길 시민이 숨지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백석동에서 일어난 온수관 파열 사고는 그동안 귀가 따갑도록 외쳐온 “안전 사회”가 여전히 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길을 걷다가 뜨거운 물 세례 만날 걱정까지 하고 살아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

이번 사고는 20년 이상된 노후 온수관 파열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하 2.5m에 묻힌 온수관 파열 부분은 1991년 매설 당시 작업자들이 내부 확인을 위해 드나들었던 통로인데, 마지막 용접 부위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고가 처음도 아니다. 올해 초에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20년 이상 된 낡은 열수송관이 두 차례 터져 수천 가구의 난방이 끊겼다. 2013년 이후로 노후 열수송관 부식 사고는 7건이라고 한다. 산업자원부는 고양 성남 부천 등 1기 신도시에 이런 사고가 집중된다며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열수송관 2,164㎞ 중 20년 이상 된 686㎞(32%)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사고 가능성을 알면서도 인명 피해가 나야 움직이는 정부의 안전 불감과 복지부동을 이해할 수 없다.

불과 열흘 전 KT 아현지사 통신구 광케이블 화재에 이은 이번 사고로 지하시설 관리가 체계적인지도 의문이다. 전선 통신선 수도관 열수송관 등 주요 인프라가 지나는 ‘지하공동구’는 용도별 관리 주체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등 제각각이고 1차 관리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 지자체의 안전관리 태세에 문제는 없는지, 안전관리를 위한 해당 부처와 지자체 간 소통은 잘 되는지 묻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의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의 구축이 필수다. 2014년 잇따른 싱크홀 사고 이후 국토부가 지하시설물ㆍ구조물ㆍ지반 정보를 망라한 3차원 지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 한계 등으로 부정확할 수 있는 도면 정보를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지하공간 통합지도 구축‘이 안전사고 예방ㆍ대처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이름만 그럴 듯한 사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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