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가능성은 기자의 숙명
사실확인의 규율 재정립할 때
“투명하게, 무엇보다 겸손하게”

기자에게 오보(誤報) 가능성은 피하기 어려운 숙명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오보를 적잖이 냈다. 캄보디아에 살던 일본군위안부 ‘훈 할머니’ 사연을 특종보도하고도 가족 찾는 후속 취재에서 오보를 내 ‘조작 기자’란 힐난을 들었고, 재벌이 얽힌 공직자 비리 의혹 보도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패소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부끄럽게 기억하는 일은 따로 있다. 기소가 곧 유죄로 단정되던 시절, 전직 고위공직자의 비위를 검찰 발표대로 옮긴 기사였다. 몇 년 뒤 당사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부랴부랴 판결문을 찾아보니 ‘다행히’ 일부 무죄였다. ‘다행히’ 그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일부라도 사실이 아닌 것을 바로잡거나 사과하는 ‘굴욕’을 피했다. 그때의 ‘다행’이 정말 ‘다행’이었을까. 줄곧 나를 괴롭혀 온 질문이다.

애써 묻어둔 흑역사를 소환한 건 최근 벌어진 ‘세계 1% 과학자’ 논란 탓이다. 발단은 ‘세계 1% 女과학자,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이란 중앙일보 기사다. 출산ㆍ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은 지방대 늦깎이 박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학문 성과, 그런데도 교수 임용 번번이 고배 등 공감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이 스토리는 순식간에 화제를 모았다. 경력단절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에 대한 실재하는 차별이 공감의 강도와 속도를 높였음은 물론이다.

곧 의문이 제기됐다. “세계 1% 과학자”는 도대체 뭘까? 국제 학술정보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매년 논문의 ‘피인용 지수’를 기준으로 발표하는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강사 A씨가 3년 연속 선정된 것은 팩트다. 문제는 여기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학술지의 영향력지표(IF)를 부당한 수법으로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는 저널에 A씨 연구실적 논문 일부가 실린 점 등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에 기고한 글에서 “IF로 장사하는 회사의 농간에 우리 언론이 부화뇌동한다”고 개탄했다.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여러 과학자들이 공감했듯이 언론이 맥락이 거세된 수치, 특히 최고, 최대 같은 최상급 명명에 과잉 반응해 왔다는 지적은 새겨 들을 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당 기자는 이미 알려진 팩트를 재확인하는 자료만 내놓은 채 소셜 미디어를 통한 감정적 대응으로 치달았다.

실체적 진실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이 사안에 주목하는 까닭은 문제의 핵심이 과학적 지식보다는 저널리즘의 본질인 ‘사실 확인의 규율’에 더 가까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느 기자들이 업체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를 가볍게 단신 ‘처리’하는 동안, ‘사람’에 주목하고 숨겨진 ‘스토리’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반박을 받았다면 취재 대상에 매섭게 들이대 온 ‘합리적 의심’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이 사안을 거친 논란이 아니라 한층 성숙한 논쟁, 나아가 무심했던 관행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더 자주 들춰보게 되는 책이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다. 저명한 기자 출신 학자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사실 확인의 규율’ 항목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추가하지 마라, 절대로 속이지 마라, 최대한 투명하라, 스스로 취재하라 등을 원칙으로 제시한다. 너무 뻔하다고? 속단하지 말자. 다른 모든 원칙 실천의 바탕인, 절대 뻔하지 않은 마지막 원칙이 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겸손하라! “사건을 잘못 전달하는 것을 피하는 열쇠 중 하나는 자신의 지식과 인식 능력의 한계에 대한 ‘훈련된 정직함’이다. (중략) 겸허해야 한다는 것은 또한 당신이 다음 사람과 이야기한 뒤 당신 기사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게 될 수도 있을 만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당신은 그 기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 위태로운 저널리즘에 그래도 길을 내려면,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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