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열린 '한국잡월드 자회사 저지, 직접고용 쟁취, 문재인 정부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자꾸 철밥통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철밥통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철밥통 하나씩 들고 살았으면 좋겠다. 기존 정규직 임금 깎는다고 그 임금이 밑으로 내려가겠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의 바람처럼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우리 모두 철밥통(정규직 혹은 평생직장) 하나씩 들고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많은 사람이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동구 공산권 붕괴 후 포스코를 방문한 모스크바대학 총장이 사원주택단지를 둘러본 후 “우리(구 소련)가 꿈꾸고 추구한 이상을 이곳에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던 1991년 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의 물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정규직은 점점 ‘특수 신분’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이런 추세를 되돌리려 한다. 정책 1호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내걸고 취임 첫날부터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3% 전후에서 요지부동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4년 32.2%를 바닥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올해는 33%로 오히려 점점 늘고 있다. 정부의 힘으로 몇몇 직장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들, 전체 경제구조를 놓고 보면 별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정규직뿐만 아니라 고용 자체가 줄어드는 ‘고용없는 성장’이 대세가 돼버렸다. 고용없는 성장 추세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강하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취업자 증가율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올해 고용탄성치는 9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일본의 8분의 1, 미국의 2분의 1 수준(올 1분기 기준)이다.

이 상황에서 강한 노조를 가진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은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한 장벽을 높게 쌓으며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 세습이나 비정규직 차별 관행을 고수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상황이다.

그 사이 정보화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노동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통해 일을 맡기는 고용 형태인 긱(gigs)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장기 고용(jobs)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에서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중소 IT기업 대표에게서 들은 ‘반(半) 고용’이 바로 긱의 한국형 변용이다. 정부나 대기업의 기술용역을 따려면 직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이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 년에 1억원 내외의 소득을 올리는 실력이 뛰어난 IT 전문가들을 중소기업이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정부가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기준인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을 충족하기 위해 억대 수익의 프리랜서에게 월 200만원 남짓의 임금과 4대보험에 가입해주고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반고용 상태인 프리랜서는 정규직이지만, 자유롭게 다른 회사 일도 한다. 실력을 갖춘 인재가 ‘독립 계약자’나 ‘컨설턴트’의 형태로 일을 하는 고소득 자영업(프리랜서)이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규직을 지키고 늘리려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려면 오히려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이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 신속히 적합한 직원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해고자를 보호하고 보다 많은 인재가 과감하게 프리랜서로 나설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과 직업 재교육을 위한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성과를 의심받는 고용장려금 예산을 실업급여 인상분으로 돌리고, 동시에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 고용정책이다. 정규직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환상이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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