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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완벽한 지도는 없다

입력
2018.12.0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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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7도 38분 32초, 동경 127도 4분 39초. 서울시립과학관의 좌표다. 어느 지점에서 수직 방향으로 터널을 뚫으면 지구 중심을 지나서 지구 반대쪽 지표면으로 연결된다. 그 지점을 대척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립과학관의 대척점은 어딜까? 우루과이의 남쪽과 아르헨티나의 서쪽에 위치한 대서양이다.

대척점으로 이동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수직 터널을 뚫는 거다. 터널의 길이는 1만2,800km. 구멍 속으로 발만 내딛으면 중력의 힘에 의해 중심으로 빨려가고 그 힘으로 다시 대척점 표면에 이를 수 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사람이 가장 깊게 판 구멍은 지구 지름의 1,000분의 1이 채 안 되는 12km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척점을 뚫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척점이 바다 한복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이니 웬만한 나라는 대척점이 바다에 있다.

지구 중심을 통과해서 대척점에 갈 수 없다면 지구 표면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육로는 피곤하다. 구불구불하고 신호등도 많다. 해로는 험난하고 느리다. 가장 큰 문제는 사고가 잦다는 것. 하늘 길이 가장 안전하고 편하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

자, 이제 인천공항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까지 날아가면 된다. 구글맵은 태평양을 가로지르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건너는 직선 항로를 알려준다. 항로 길이는 1만9,433km. 문제는 어느 비행기도 한 번에 이 거리를 비행할 수 없다는 것. (승객과 짐을 가득 싣고 갈 수 있는 최대 항속거리는 1만1,000km 정도다.) 따라서 어딘가에 들러서 기름을 채우고 정비를 받아야만 한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정동쪽으로 날아서 북아메리카 대륙에 들린 후 남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인천-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편 가운데 고객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공사는 카타르항공, 루프트한자, 터키항공, 델타항공, KLM 순서다. 상위 다섯 개 항공사 가운데 네 개는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날아가는 항로를 택했다. 어찌된 일인가? 우리나라가 중심에 있는 세계지도를 보면 아르헨티나는 지도의 동쪽 끝에 있고, 서쪽 끄트머리는 아프리카 서안인데 말이다.

이럴 때 떠올리는 노래가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물론 걷기만 해서는 다 만날 수 없다.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지구가 둥글다니! 맙소사! 나도 지구가 둥글다는 게 믿겨지지 않지만 월식 때 생기는 지구 그림자를 보거나 아폴로 우주인들이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지구가 둥근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인천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든 서쪽으로 날아가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인천에서 인도를 지나고 아프리카를 넘어서 갈까? 그렇다면 바보다. 인천에서 미국 동부로 갈 때도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간단한 길을 나두고 꼭 북극권을 통과해서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서쪽 항로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갈 때도 마찬가지로 더 북위도 지방을 통해서 가야 한다. 그게 더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는데 굳이 체코 프라하를 거쳐서 간 것에 대해 의심을 품는 옛 정치인이 있다.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인천-프라하 구간 8,238km와 프라하-부에노스아이레스 구간 1만1,805km를 더하면 2만43km. 비행 자체가 불가능한 인천-부에노스아이레스 직항 구간 1만9,433km보다 불과 610km 더 길다. 비행시간으로 치면 40분쯤 더 걸릴 뿐이다.

이 모든 오해가 지도 때문에 생겼다. 3차원의 지구를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하는 완벽한 지도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지도는 방향, 거리, 각도, 면적을 알려준다. 그런데 네 가지 가운데 하나를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나머지 세 가지의 정확성은 포기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지도학자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는 각도를 선택했다. 항해사에게는 각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1569년 메르카토르는 적도를 따라 종이를 감싸는 방식으로 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에서는 세로 줄인 경선의 간격은 일정하지만 가로 줄인 위선의 간격은 위도가 높아질수록 넓어진다.

우리는 항해사가 아니지만 대부분 메르카토르 도법의 지도를 벽에 걸어놓고 있다. 이 지도에서 아프리카의 크기는 북아메리카 대륙과 거의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아프리카에는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인도, 중국, 미국, 일본이 모두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지도에서 적도 지방은 실제보다 작게 표현되고 고위도지방은 실제보다 크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지도란 없다. 따라서 지도에서 완벽한 행로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은 온몸으로 헤매며 찾는 것이다. 남북 평화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간단하지 않은 길이다. 몸으로 실천하며 열어야 한다. 그를 신뢰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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