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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 17년… 남편 잃은 여성 50만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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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 17년… 남편 잃은 여성 50만명 넘어

입력
2018.12.09 14:42
수정
2018.12.09 21: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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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벼랑 끝 내몰리지만

정부는 일자리 등 대책도 없어

가부장적 사회 폭력ㆍ멸시 피해

시골마을엔 ‘전쟁 과부촌’ 생겨

지난달 29일 취재진 등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한 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취재진 등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한 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모두가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는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고통도 무뎌질까요?”

22세에 탈레반의 공격으로 임신 8개월 차에 남편을 잃은 아프가니스탄의 라힐라 샴은 뉴욕타임스(NYT)에 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프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샴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여성 인권이 취약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치욕적인 시선을 감내하며 생계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2001년 미국이 탈레반을 괴멸하겠다며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7년간 50만 명이 넘는 여성이 과부가 됐다고 아프간 정부가 최근 밝혔다. 아프간 정부 관계자는 “정부군과 반군 측 여성 모두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남편을 잃은 여성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을 챙길 정부의 대책이 변변치 않다 보니 생활고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이 점점 불어난다는 점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럽게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면서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거나, 언제 폭격이 가해질지 모르는 도로를 누비며 청소를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가까스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17년 전 로켓 공격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마수마는 아랍뉴스에 “이곳에서 남편 없이 5명의 자녀를 키우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라며 “그나마 거리 청소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굴 고타이 아프간 여성부 통계 담당 선임은 “현재로서는 정부가 이 문제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서 “과부를 위한 단기 일자리 창출은커녕 그 어떤 대책도 나온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남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악습 탓에 시댁에서 남편 형제와의 재혼을 강요하는 탓이다. 샴은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시동생과 재혼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분위기여서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샴은 공무원인 남편의 유족 연금을 수령할 자격이 있지만, 남편의 연금을 시아주버니가 관리해 생계를 시댁에 의존하고 있다. 남편을 잃은 후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남성들의 불쾌한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져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뒀다.

각종 폭력과 멸시가 만연하다 보니 시골마을에는 이들이 모여 사는 ‘전쟁 과부촌’도 생겨났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남동쪽으로 15㎞ 떨어진 자나바드에 자리잡은 비비코는 AFP통신에 “값싸고 안전한 주거지를 찾아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몰려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쟁으로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여성들의 아픔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전쟁의 포연에 묻혀 한낱 아우성으로 들리는 형편이다. 더구나 전장의 상황도 뾰족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탈레반이 비밀리에 접촉해 평화협상을 추진한다지만, 여전히 아프간에서는 하루 평균 50여명이 목숨을 잃는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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