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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소니아 존슨(12.5)

입력
2018.12.0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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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분리주의 공동체 '와일드파이어'를 창설 운영했던 급진적 페미니즘 활동가 소니아 존슨의 70년대 ERA운동 당시 모습. nursingclio.org
여성 분리주의 공동체 '와일드파이어'를 창설 운영했던 급진적 페미니즘 활동가 소니아 존슨의 70년대 ERA운동 당시 모습. nursingclio.org

소니아 존슨(Sonia Johnson, 1936~ )은 미국 페미니즘 운동사를 통틀어 가장 뾰족한 이론가이자 활동가라 할 만하다. 1970년대 성평등수정헌법운동(ERA)에 가담하며 페미니즘 운동의 전면에 나선 그는 80년대 말 여성들의 분리주의 공동체 ‘와일드파이어(wildfire)’를 조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90년 출간한 동명의 책 속 한 챕터 제목은 ‘위대한 이혼’이었다. 그는 국가 폭력과 남성 폭력을 대등하게 파악, 국가의 남성지배 메커니즘을 가정의 남성 폭력과 나란히 놓고 국가를 용인하는 여성은 남편에게 학대 폭행당하면서 그들의 통제 하에 살아가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여성들과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겐 섹스도 가부장적 지배ㆍ통제 행위여서, 여성의 완전성과 권력의 각성을 잠식하고 가두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는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가정에서 태어나 40대까지 신자로 살았다. 유타대를 나와 같은 신앙의 남자와 결혼했고, 럿거스대에서 교육학 석ㆍ박사 학위를 땄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 다니며 국내외 여러 대학서 영어 등을 가르쳤고,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가 미국으로 다시 온 것은 ERA운동이 한창이던 1976년이었다.

그는 77년 후기성도교회의 ERA 반대 기조에 맞서 ‘모르몬 ERA 운동’을 조직해 활동했고, 이듬해 미 상원 연단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79년 9월 뉴욕서 열린 ‘미국심리학회’에 참석해 ‘가부장적 공황: 모르몬 교회의 성정치학’이란 제목의 발제로 후기성도교회를 맹렬히 비판했고, 그 결과 “교리를 위반하고, 그릇된 교리를 선전하며, 선교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그 해 12월 5일 파문 당했다. 앞서 10월 그는 이혼(당)했다.

존슨은 84년 대선에 출마했다. 미국 시민당, 펜실베이니아 소비자당, 캘리포니아 평화와 자유당 연합 후보였다. 그는 7만2,161표(0.08%)를 획득했다. 그의 캠페인 참모였던 마크 던레아(Mark Dunlea)는 훗날 첫 여성대통령을 소재로 한 ‘마담 프레지던트’란 소설을 썼다.

종교와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지난한 투쟁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이 ‘와일드파이어’, 즉 여성이 모든 것을 불사르는 ‘들불’이 되는 거였다. 그 공동체는 1993년 해산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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