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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학원, 영어유치원... 유치원들 '간판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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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학원, 영어유치원... 유치원들 '간판갈이'

입력
2018.12.03 04:40
수정
2018.12.03 09:3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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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폐원검토 현황, 유아 대상 학원 과목별 월 평균 교습비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사립유치원 폐원검토 현황, 유아 대상 학원 과목별 월 평균 교습비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아파트단지 내에 위치한 A유치원은 지난달 23일 학부모 긴급 간담회를 열어 ‘놀이학원’ 전환을 선언했다. 원장은 ‘특별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 놀이학원을 할 수 밖에 없다’며 폐원동의서를 내밀었다. 학부모 A(44)씨는 “간담회 때 강하게 항의를 한 후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유치원에 안 보내고 있다”며 “’처음학교로’에 신청을 하긴 했는데 (추첨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에 반발하고 있는 사립유치원들 중 일부가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학원으로 업종 전환에 속속 나서고 있다. ‘학교’가 아닌 ‘학원’이 되면 유치원 3법에 구애 받지 않고 학원비나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원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기존 사립유치원 원비보다 통상 2, 3배 비싼 만큼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 학부모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 같은 사립유치원들의 속내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지난 1일 낸 입장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유총은 이 입장문에서 “교육부가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교통정리를 할 때”라면서 “잔류와 변화, 퇴로라는 3가지 기회를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 한유총이 말하는 ‘변화’는 학원으로의 업종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 입장에선 이미 재원생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놀이학원으로 간판만 바꿔 달고 기존과 같이 운영하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심산이다. 학원이니 유치원 3법에 구애 받지 않고 평균 원비도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반일제(3시간 이상) 유아 대상 놀이학교의 월 평균 교습비는 69만2,000원(지난 6월 기준)이다.

현장의 혼란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원아와 학부모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유치원에 5세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B(32)씨는 “이 동네에 유치원이 3곳인데 우리 애가 다니던 유치원은 지난달 30일 원장이 ‘공황장애’에 걸려서 폐원하겠다고 하고, 다른 한 곳은 놀이학원으로 바뀐다”며 “급하게 영어유치원이랑 아기스포츠단을 알아봤더니 지금 다니는 유치원은 분기(3개월)에 150만원 정도 내는데, 이런 곳은 한 달에 160만원 정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의 한 유치원에 보내던 학부모 C(35)씨도 얼마 전 유치원을 내년부터 놀이학원으로 전환한다는 통보 받았다.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애들이 걱정”이라며 “이 사태 이후 3주 동안 식단 사진도 안 올라와 학부모들이 항의하니 그제서야 다시 올려줬다”고 답답해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유총 주최로 열린 ‘전국 사립유치원 교육자, 학부모운영위원 총궐기대회’ 참석자들이 이른바 유치원 3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인턴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유총 주최로 열린 ‘전국 사립유치원 교육자, 학부모운영위원 총궐기대회’ 참석자들이 이른바 유치원 3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인턴기자

정부도 현재로선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학원 업종 전환은 막을 수 없지만 그 전 폐원 심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지켰는지 철저히 살펴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폐원 승인 전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와 그간 누리과정 지원금 사용에 관한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법률팀의 류하경 변호사는 “법으로 다 막을 수는 없다”며 “껍데기만 바꿔 운영하는 곳들의 명단을 공유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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