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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 학생들 행복 조건은 정책 지원보다 교사-학부모 신뢰”

입력
2018.12.04 04:40
수정
2018.12.04 10:22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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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7> 폭행 사건 이후, 특수학교는 안녕하십니까

발달장애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는 엄마로서 올 가을은 아주 심란한 시기였다. 여기저기서 폭행 사건이 터져 나오는데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제보 동영상은 처음 몇 초만 봐도 가슴이 떨려 끝까지 보질 못하겠다.

말을 못하는 아이들이다. 말을 하더라도 비장애 아이들처럼 자세한 상황설명을 할 수가 없다. 드러난 것 외에 감추어진 부분은 얼마나 될지, 엄마가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일들이 있었던 건지, 일부 학교의 일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일인지, 아직도 “우어~ 우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열 살의 아들을 보며 한숨이 깊어진다.

40년 넘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건 바로 불안감이라는 것이다. ‘불안감’이란 녀석의 특징 중 하나는 자가증식을 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 없이도 스스로 덩치를 키워 끝내 개인의 정신을 잠식하고 만다.

불안감이 정신을 좀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는 내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창피한 일이지만 고백하려 한다. 그래야 ‘진짜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를 범인으로 낙인 찍은 불신

지난해 5월 일반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특수학교로 전학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무한 신뢰하던 교사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끼자, 특수교사 전체에 대한 경계심마저 생기게 되었다. 마치 무한한 사랑과 맹목적 믿음을 주었던 첫 연애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서 차였을 때 느낄 법한 정도로 강한 배신감이었다.

모든 특수교사에 대한 경계심이 바짝 들어있는 상태에서 특수학교로 전학한 지 한 달 만에 아들의 귓불에서 멍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귓불을 잡아당겨 생긴 멍이다. 딱 손가락 크기로 한 지점에만 집중적으로 힘이 가해진 보라색 파란색 멍. 마침 아들의 팔에도 누군가 팔을 세계 움켜쥔 손가락 세 개의 멍이 들어있다.

일련의 상황이 머리에 그려졌다. 아들이 말썽을 피웠나 보다. 울음이 터지고 난리를 부리기 시작했을까? 처음엔 아들의 팔을 힘껏 잡아당겨서 일으켜 세우려다 힘이 드니 귓불을 잡아당겼구나. 귓불을 잡아당기면 일단 아프니 하고 있던 행동을 멈추겠지. 그리고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힘이 가해지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앉아있던 상태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켰겠지.

당장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싶지만 전학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데다 특수교사에 대한 배신감이 강한 상황에서 굳이 말 걸어 봤자 소용 없을 것 같아 그냥 넘겼다. 그렇게 2학년이 지나고 종강을 며칠 앞둔 시점에 아들 귓불에서 같은 자리에 같은 멍을 또 발견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며칠만 지나면 학년도 끝나는 마당에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 이번에도 그냥 넘겼다. 아이들이라 멍이 잘 들지만 또 그만큼 멍이 잘 빠지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색도 옅어지고 붓기도 가라앉은 듯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옅어졌어야 할 멍이 더 진하게 들어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누군가 같은 자리 귓불을 또 잡아당긴 것이다. 그 누군가는 어른일 수밖에 없다. 담임선생님과 실무사, 활동지원사와 치료사, 누구지? 대체 누구야? 아들의 동선을 그려보며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담임선생님과 실무사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나는 이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아들의 귓불 사진을 공개하고 담임선생님과 실무사를 ‘범인’으로 낙인 찍었다. 모두의 지혜를 빌려 그들에게 어떤 ‘벌’을 내릴 수 있는지 의견을 수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학년이 끝나는 날, 담임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그리고 나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알고 보니 범인은 학교 안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난 학교를 신뢰하지 않았고 내 불신은 곧 불안감이 되어 특수교사와 실무사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담임 입장에서 보면, 학부모에게 마음의 배신을 당한 셈이다. 나는 내가 당했던 배신감을 그대로 또 다른 상대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울음을 터트렸던 건 이렇게 말 못하는 장애인 자식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와 언성을 높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순간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럽고 불쌍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왜 부모가 교사와 싸우고 있는 건가.

◇불안감 먼저 내려놓고 소통해야

그때 알게 되었다. 내 아들이 학교생활을 잘 하기 위해선 내 불안감을 내려놓는 게 먼저라는 걸, 교사와 부모는 서로 배척할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는 걸, 그래야만 금쪽같은 내 아들이 학교와 가정의 협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걸.

올 가을에 불거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특수교육계는 저마다의 고통이 모두를 잠식한 아노미 상태다. 특수교사는 특수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들대로, 모두가 끙끙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혹시나 우리 학교도? 혹시나 내 아이도?” 부모들은 학교와 특수교사에 대한 경계심이 바짝 들어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식의 몸에 어딘가 멍이라도 들어있으면 불안감이 화르륵 솟아오른다.

특수교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추락 중이다. “앞으로는 학생이 어떤 도전적 행동을 보여도 절대 개입하지 말고 교육할 생각도 말아라. 요즘은 손목만 잡아도 큰일 나는 세상이다. 차라리 그냥 방치하다 집에 안전하게만 보내라”. 자괴감에 빠져 교사로서의 본분까지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마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육부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TF팀을 구성해 ‘장애학생 인권보호 종합대책’을 수립 중이다. 특수교사 대표와 학부모 대표, 전문가 집단과 각 기관의 대표들이 모여 연일 의견을 내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 중이다. 12월 말 즈음엔 모종의 결과가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를 통해 발표될 것들은 정책적인 것들이다. 이미 시행중에 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인권보호 대책을 내실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고, 새로운 무언가가 또 생겨날 수도 있다.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모든 사립학교를 공립화하는 방안이나 특수학교 교실 내 CCTV 설치 안건 등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하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거다. 이런 모든 정책적인 지원과는 별개로 특수학교라는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특수교사와 학부모 간의 신뢰 관계가 회복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는 교사를 믿지 못하니 작은 문제도 크게 받아들인다. 불안감은 자가 증식되어 학교라는 ‘가장 안전한 집단’이어야 할 곳이 ‘위험한 곳’이 된다. 모든 특수교사는 ‘예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교사 또한 부모들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는다. 말을 해도 믿질 않고 받아들이질 않으니 “그럼 믿지 말든가” 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그 피해는 사이에 끼어있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껴안는다.

교육부 차원의 종합대책으로는 무너진 양 집단 간의 신뢰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문제는 거시적인 게 아닌 미시적인 차원의 일이고, 책상에서 결정할 일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개별적 티타임도 좋고, 교사와 학부모 간 서로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을 학교 차원에서 마련해도 좋다. 무엇이든 좋으니 어떤 것이라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노력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

모든 특수교사가 나쁜 것은 아니며, 모든 학부모가 진상인 것도 아니다. 좋은 특수교사가 더 많듯 좋은 부모도 많은 법이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서로 소통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이에 있는 아이들이 행복해진다. 학교는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하나의 명제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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