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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뒷전으로 밀리는 돌봄서비스

입력
2018.11.30 04:40
수정
2018.11.30 13: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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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계기로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등 3법 내용 일부 개정 논의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다. 사립유치원 공공회계관리시스템 사용 의무화, 유치원 설립자의 원장 겸직 금지, 학교급식 대상에 유치원 포함 등이 주 내용이다. 그런데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당연할 것 같았던 법률 개정안 처리가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을 때는 금방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지만, 그런 비리를 가능케 했던 지역사회 먹이사슬 구조가 은밀하고 치밀하게 만만치 않은 저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정점으로 하여 광역시도 의원, 시〮군〮구 의원, 지자체 공무원, 지역 언론, 그리고 비리 사립유치원 소유주들이 얽혀서 형성한 이해의 관계망은 유치원 3법 개정안 통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 비리는 단순히 유치원에 그치지 않는 한국 사학 비리의 전형적 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하는 엄마들’이 자유한국당 앞에 가서 유치원 소유주들을 비호하지 말라는 시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의원들 역시 이런 지역사회 유착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립유치원 소유주들의 로비 대상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 재력가들을 건드렸을 때 다음 선거에서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한국당 지역구 의원들이 좀 더 노골적으로 사립유치원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뿐, 나머지 정당 지역구 의원들도 은밀한 침묵의 연대를 형성하면서 유치원 3법 개정 작업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미 국회 교육위원회 3당 간사 합의도 있었고 원내대표 간 합의도 있었다. 12월 3일에는 ‘반드시’ 법률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조승래 위원장 이야기도 들려온다. 과연 그렇게 될까?

이렇게 유치원 3법 개정안이 표류하는 사이 현금을 뿌리는 작업에는 여야 간 은밀한 합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다. 아동수당 결사 반대였던 자유한국당에서 출산장려금 2,000만원에서 시작해서 자녀 연령 18세까지 모두 1억원에 이르는 파격적인 현금급여 확대를 제안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 제안에 맞선 민주당의 대응은 이번 기회에 아동수당을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양상으로 나오는 듯하다. 이미 도입된 제도이니 현실에 맞게 수급자격 아동 연령도 올리고 액수도 증액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변화이다. 그런데 지금이 꼭 그럴 시기인가?

사립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수백만 학부모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국가에서 현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안심하고 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회적 돌봄시설 확대를 원하고 있다. 현금도 좋지만 우선 바라는 것은 양질의 돌봄서비스다. 그런데 현금을 손에 쥐여주는 것보다 돌봄서비스 확대는 당장 다음 선거 당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국공립 어린이집ㆍ유치원은 다음 선거 때까지 건물 완공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현금은 당장 눈에 보이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에서 제안한 현금 살포 계획에 현금으로 맞서야 한다는 맥락에서 아동수당의 파격적 확대가 아동수당법 개정안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재정에서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봤으면 한다. 국가 백년지대계 설계 차원에서의 사회적 돌봄구조 확대와 지역구에서의 생존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꿀 때도 됐다. 지역사회의 이른바 ‘유지’들이 만든 이해관계 구도를 부모들이 깨기 시작했다. 돌봄 당사자로서 부모들의 표가 더 많은지, 아이들 뒤에 숨어서 사업하는 사람들의 표가 더 많은지 계산해보라. 다음 선거를 다른 시각에서 준비할 때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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