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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TV수신료에 중간광고까지... 공영방송 맞나

입력
2018.11.28 04:40
수정
2018.11.28 15: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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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사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KBS 본사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6년 전 영국에서 영화 아닌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 감독이 20대 때 작가로 참여했다는 흑백 영상물이었다. 제작사는 영국 공영방송 BBC였다. 1920년대 라디오로 생방송되던 쇼프로그램 제작 현장을 촬영해 편집한 내용이었다. 촌로의 농부가 방송 청취를 위해 라디오 주파수를 어렵게 맞추는 모습으로 영상물은 시작했다. 이제 보게 될 쇼는 BBC 라디오로 방송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넌지시 알리는 장치였다.

영상물은 재즈밴드의 연주와 코미디언의 만담 등을 품고 있었다. 일종의 ‘보이는 라디오’였다. 영상물이 만들어지던 때는 라디오조차 귀하던 시절이다. BBC는 보다 많은 국민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영상물로 만들어 극장에서 무료 상영했다. 영화가 방송보다 주류 매체이던 시절, 영국 국민은 극장에서 라디오를 보았던 셈이다. 1시간 분량의 흑백 영상물을 보면서 방송의 공공성을 문득 떠올렸다.

방송은 등장할 때부터 강력한 매체로 인식됐다. 영국은 공익을 위해 방송 규제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BBC 같은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방송 체계를 구축했다. 시장만능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방송 규제를 최소화한 미국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이다. 히치콕이 참여한 영상물은 공영방송 BBC였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방송의 역사를 규제와 탈규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방송은 어디에 속할까. 일관성 없는 규제의 연속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방송 규제 정책이 춤을 췄다. 정책에 철학도 지속성도 없으니 방송 중심축이 되어야 할 공영방송이 자주 흔들렸다.

국내 최대 방송사인 KBS는 문화공보부 소속 국영방송이었다가 1973년 공영방송으로 독립했다. 국영이나 다름없는 공영이라는 비아냥도 따랐지만 형식만은 공영다웠다. 뉴스와 교양프로그램을 앞세웠고, 광고를 내보내지 않았다. 재원은 TV수신료를 바탕으로 했다. BBC와 일본 공영방송 NHK를 모델로 삼은 운영 방식이었다.

KBS의 공영방송 체계가 크게 흔들린 시기는 1980년 언론통폐합 때다. 민영방송 TBC는 KBS에 흡수돼 KBS2가 됐다. 또 다른 민영방송 MBC의 주식 70%는 KBS로 넘어갔다. MBC의 지역 회사들의 지분 50% 이상은 서울 MBC가 가져갔다. 정권이 KBS 사장을 임명했고 KBS 사장은 MBC 경영진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서울 MBC는 MBC 지역 회사의 의사결정에 간여하게 됐다. 당시 막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만들어낸 방송 통제의 수직계열화였다. 통제의 꼭지점에 KBS가 있었다. 공익보다 정권 안위를 위한 선봉장 역할을 해야 했다.

KBS의 정체성은 KBS2의 광고 때문에도 모호해졌다. 갑작스레 이어받은 시설과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TBC처럼 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시청자들의 시선을 달랐다. 시민들은 5공화국에 아부하는 ‘땡전 뉴스’만 내보내는데 광고까지 한다며 TV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펼쳤다. 정부는 전기료 청구서에 TV수신료를 포함시켜 반강제로 거두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후 TV수신료 인상은 KBS의 숙원 사업이자 저주가 됐다. 현재 TV수신료 2,500원은 1981년 4월 컬러TV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금액이다. 정권에 따라 KBS의 보도 방향이 달라지니, 여당 시절 TV수신료 인상을 외치던 정치인이 야당이 되면 인상을 극구 반대하는, 기이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을 감안했을 때 37년 묵은 TV수신료를 인상해야 마땅함에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중간광고일까. 지금의 광고로도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비판을 받는데 중간광고까지 하게 되면 KBS를 공영방송이라 부르기 민망해질 것이다. 더 실망스러운 건 KBS 경영진의 태도다. 중간광고 대신 TV수신료를 올려달라는 호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게 공영방송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묻고 싶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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