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거주자 홍혜은씨 
빠듯한 후원금으로 계간지 창간을 준비하며 홍혜은씨는 잡지 편집디자인을 배웠다. 가을호 구입비는 겨울호 제작비로 쓸 계획이다. 고영권기자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면 동반자로 인정해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난 21일 여성가족부가 개최한 간담회에서 방송인 허수경씨의 제안이 화제에 올랐다. 비혼·동거가족에 대한 사회 제도적 차별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이 행사는 그러나, 애초 의도에서 벗어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7년째 동거부부로 살고 있는 허씨를 비롯해 간담회에 참석한 동거가족들의 하소연에 “(결혼에 따른) 책임은 피하고 권리는 누리겠다는 건 모순”이라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질문의 구도가 바뀌어야 할 시대인데 여전히 혼인, 혈연, 입양을 통한 가족만을 정상으로 보겠다는 거죠. 그런 분들에게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는 걸, 결혼하지 않고 비혼으로도 살아도 괜찮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카페에서 만난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의 거주자 홍혜은(30)씨는 같은 이름의 계간지를 만든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홍씨는 2016년부터 ‘비혼지향자’ 3인과 방 두 개, 거실 하나를 갖춘 공덕동 다세대주택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지난 달 26일 그 동안의 경험을 담은 계간지를 냈다.

홍씨가 공덕동하우스를 열게 된 건 일일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사 경험에서 비롯됐다. 홍씨가 부모와 떨어져 지낸 건 고3 수험생활을 하면서부터. 다섯 남매의 맏이라 부산스러운 집을 떠나 독서실에서 먹고 자며 공부했다. “고시원처럼 방이 있는 게 아니라 큰 공간에 책상과 가벽으로 임시 거주 공간을 만든 건데 불법이죠. 여성전용 독서실이라 밤 12시면 밖에서 쇠사슬로 문을 잠갔고 창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했어요. 불 나면 다 죽는 건데 그때는 나가서 혼자 살 공간이 그곳밖에 없었어요.”

충주 출신인 홍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계절마다 기숙사비를 나눠 내며 일 년에 네 차례씩 이사했다. 여름과 겨울, 기숙사가 문을 닫을 기간에는 고시원에 살기도 했다. 수십 번을 이사한 끝에 SH공사의 임대 원룸에 당첨,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됐다. 거기서 4년을 사는 동안 셋째 동생이 치위생사 실습을 위해 서울에 오면서 살림을 합쳤다. 홍씨는 이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마련했고, 먼저 정규직이 된 동생이 월세 보증금을 마련해 지금의 ‘공덕동하우스’를 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월세, 생활비, 경험을 나눌 비혼을 두 명 더 들였다.

비홍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거주자 홍혜은씨. 고영권 기자

공덕동하우스는 기능별로 공간을 나눴다. 거실은 책 읽고 글 쓰는 등 작업실로 활용하고 방 하나는 손님맞이 공간, 다른 하나는 침실로 쓴다. 남성 거주자와 공동생활이 불편하지 않느냐(공덕동하우스 거주자는 남자 2명, 여자 2명이다)는 질문에 홍씨는 “제가 남성과 친구가 되는 건 ‘끊임없이 그들의 남성 아님을 확인’할 때였다. (공덕동하우스 거주자는) 기존 문법하의 성역할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 그 의식을 남과 공유하며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고 대답했다.

운영 원칙도 만들었다. 월세와 생활비는 수입에 따라 차등을 두고 낸다. 차등을 낸 기준과 납부 비용은 ‘세대주’ 동생이 매달 엑셀로 정리해 발표한다. 십시일반 ‘공덕동 기금’도 모아뒀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거주자가 당장 월세를 내지 못할 때나 수술비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쓴다. 홍씨는 “더치페이가 평등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여성주의자다. (공덕동하우스 거주자는) 성별 임금격차가 확연한 사회에서 생활비를 똑같이 부담하는 게 성평등인 것처럼 말하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가사노동은 “룸메이트를 20명 이상 경험한” 홍씨가 분담 기준을 정했다. 그는 “철저하게 업무를 분장할수록 갈등이 더 생겼다. 청소, 옷정리 등 신경 많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게 맞다. 각자 ‘잘 하는 분야’를 맡되, 일일이 나누기 애매한 분야는 일한 사람이 ‘메시지방’에 일지를 남긴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홍씨는 정부의 비혼 정책을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주택 정책은 2박3일 욕을 해도 시원찮은 데, 청년과 신혼부부를 주택 청약대상으로 함께 묶은 게 대표적이죠. 신혼부부 청약 평균 경쟁률이 8대 1수준이면 청년 대학생은 120대 1이 넘습니다. 청년이 당연히 결혼할거라는,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은 경제력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저처럼 공동체로 살고 싶은 비혼은 정책에서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거죠.” 법적 가족이 아니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거나, 의료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못하는 정부 의료서비스도 한계로 꼽힌다.

‘동거가족은 책임을 회피하고 권리만 주장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한국은 국가가 만들어야 할 사회복지서비스를 가족에게 떠넘기면서 성장했는데 이 전가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국민도 당연하게 국민의 책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홍씨는 “기존의 가족 형태가 깨지면서 정부가 복지체계를 개편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정부가 4인 가족의 복지혜택을 늘리는 건, 4인 가족이 국가를 대신해 돌봄 노동과 노인 부양을 감당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저는 왜 소셜서비스를 늘리지 않고 그런 방식의 대책을 내놓느냐고, 국가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라고 문제제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간 공덕동하우스. 권김현영 페이스북 화면캡처

“이런 삶도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홍씨는 계간지 창간을 위한 모금 동영상을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후원금 100여만원을 모아 만든 초판 80부는 3주만에 다 팔려 추가로 50부를 더 찍었다. 계간지의 정가는 1만5,000원이지만 홍씨는 공덕동하우스를 운영할 때처럼 “사회적 경제 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1만원 미만을 받기도, 형편 되는 분들께는 그 이상의 후원금을 받기도 하는데, 지금까지는 나름 성공하고 있어요. 무임승차자에 대한 혐오가 시대정신이 된 때에 필요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