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언론계 분들이 내게 과학뉴스의 내용을 문의할 때면 한결같이 이렇게 주문한다. 사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과학이란 드물다. 20세기 이후의 현대과학은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상당한 지적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이란 지적 한탕주의에 다름 아니다. 한탕주의가 통하리라는 망상이 현실에서 깨지면 과학에 대한 혐오만 키울 뿐이다.

이제는 내 나름의 대응 모범답안이 여럿 있지만 이런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여전히 당황스럽다. 한번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내 글을 싣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한 글이었다. 과학글을 국어교과서에 실어주겠다니 참으로 가문의 영광이구나, 이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빨간 색으로 떡칠된 교정지를 받았을 때는 무척 참담했다. ‘물리계(physical system)’라는 말이 어려우니 더 쉬운 말로 고쳐달라는 메모를 보고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생태계’라는 말은 다들 그냥 쓰는데 왜 ‘물리계’는 어려울까? 결국 그 글은 교과서에 실리지 못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올해 수능국어 31번 문제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물리계’라는 단어도 어려워하는 고등학생들이 질점, 구 대칭, 구 껍질, 부피 요소 등으로 점철된 저 장황한 지문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이건 분명히 수험생들을 괴롭힐 목적으로 출제된 문제임에 틀림없구나.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만유인력’이라는 단어가 자꾸 거슬렸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들었던 말이었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적엔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지만 그게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영어로 된 대학물리학 교재에서 ‘universal gravitation’이라는 말을 본 순간 나는 만유인력이 왜 萬有引力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수능국어 31번 문제는 ‘보기’글을 참고해 지문 ‘A’의 내용과 맞지 않는 항목을 고르는 문제이다. ‘A’는 만유인력의 일반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지구나 태양처럼 무수히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체가 그 주변에 미치는 만유인력은 적분의 개념으로 구할 수 있다. 즉, 지구나 태양을 매우 잘게 쪼개서 각각의 미세한 구성요소가 주변에 미치는 만유인력을 모두 더하면 된다. ‘보기’는 적분의 구체적인 방법과 그 결과를 알려준다. 만약 태양의 밀도가 구 대칭이라면 태양이라는 거대한 물체를 태양의 중심에 있는 하나의 점(질량이 똑같은)으로 바꿔치기 할 수 있다. 태양의 모든 질량이 그 중심에 하나의 점으로 집중돼 있든, 아니면 지금처럼 구 대칭으로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고 있든 지구에 미치는 중력은 똑같다. 뉴턴은 1687년에 발표한 ‘프린키피아’에서 기하학적으로 이런 내용을 증명했다.

만유인력의 기본적인 성질을 이미 알고 있는 학생이라면 이 문제를 쉽게 풀었을 것이다. ‘보기’나 지문 ‘A’를 읽지 않더라도 5개의 선택지만 보고서 정답을 고를 수 있다. 반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잘 모르는 학생이라면 ‘보기’와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출제자는 수험생이 과학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이 문제를 만들었겠지만, 국어 독해력이 뛰어난 학생보다 물리지식이 더 많은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게 가장 공정하다는 신화를 수능국어 31번이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국어실력보다는 운이나 그 밖의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을 테니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요구받는 내 처지에서는 고등학생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 수능국어 문제로 나왔다는 사실에 복잡한 심경이 엇갈렸다.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정말로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이번 시험문제로 국가가 확인해 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이 들어야 할 터인데, 적어도 “이제는 초등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쓰셔도 됩니다”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두려움과 혐오만 커지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 문제는 상위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최고난도의 이른바 ‘킬러 문항’임에 분명하다. 이거 하나가 상위권과 중하위권을 나눌 수 있다. 일종의 한탕주의인 셈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고등학생조차 이해할 수 없는 수능문제가 나온 역설 속에는 한탕주의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아니, 시험 한 번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인생까지 뒤바꾸는 우리의 입시제도 일부가 대단한 한탕주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계층 간 이동의 다른 모든 통로를 막아 놓고서 시험 한 방이 그래도 공정하지 않냐는 항변이 여전히 상식으로 통하는 한, 상위권 변별력을 위한 ‘수험생 대량살상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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