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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정치인 떠났지만 ‘아바타’ 남은 체육계

입력
2018.11.2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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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득 국기원장. 연합뉴스
오현득 국기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4년 11월 체육관련 단체 회장 등을 맡고 있던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겸직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일부 ‘사단법인’ 형태의 조직이 정치인들의 편법적인 외곽조직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당시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개정된 국회법의 후속조치였다.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국회의원이 단체장을 맡아 행정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비리에 휩싸인 집행부가 실세 의원을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르는 등 부작용이 컸다. 일부 단체 수장은 정치자금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출연금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연봉이 수억원에 이르고 법인카드 등도 받았다. 당시 체육계는 “경기단체를 경기인에게 돌려주지 못할망정 정치인이 자리만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민간인이 중심이 되어야 할 체육단체를 국회의원이 장악해 단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국회의원들은 하나 둘 체육단체장에서 떠나 특권을 내려 놓는 듯했다.

그렇게 정치인들이 나간 자리는 체육계의 바람처럼 경기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늬만 경기인일뿐, 정치인들의 ‘아바타’에 가까웠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은 2013년 1월 자신이 추대한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컬링연맹 회장에 오르면서 운영위원장에 이어 부회장을 맡는 등 연맹의 실세가 됐다. 김 전 부회장의 기반인 경북 의성이 바로 김 의원의 지역구다. 김 전 부회장은 김 의원이 2015년 5월 국회의원 겸직 금지에 따라 회장직을 내려놓자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고, 이때부터 차기 회장 선거를 차일피일 미루며 조직을 사유화했다.

채용비리와 공금횡령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태권도의 본산 국기원 오현득 원장은 2010년 정치 낙하산으로 국기원에 입성한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후보 경호대장을 맡은 인연으로 2010년 국기원 이사로 들어갔다. 2013년 이사회에서 재신임을 받지 못해 물러난 오 원장을 다시 국기원 이사로 불러들인 이는 당시 국기원 이사장이던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이었다. 이후 오 원장은 연수원장, 부원장을 거쳐 현재 원장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홍문종 이사장은 2016년 자리를 내놓으면서 오현득 당시 부원장을 후임 원장으로 선임해 논란이 됐다. 태권도 공인 5단에 그친 오 원장의 자격(국기원장은 공인 9단)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각종 이사회 규정을 어긴 파행 선임으로 태권도계의 공분을 샀다. “홍 이사장이 자신의 사람으로 이사진을 구성해, 퇴임 후에도 국기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던 한 태권도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또 한번 비슷한 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이 체육단체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4년 전 국회의원에 이어 이제는 도지사, 시장도 지자체 체육회장을 할 수 없게 된다. 역시 체육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자는 취지다. 문제는 예산의 95% 이상을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는 지방체육단체의 수장이 민간인이 됐을 때 과연 그걸 지켜낼 수 있느냐다. 그래서 이번엔 오히려 체육계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올림픽이나 프로스포츠에 비해 전국체전 등 지역 체육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체육회장을 자치단체장이 맡지 못한다면 과연 지자체에서 체육에 투자하고 관심을 갖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국회의원의 겸직 금지 결정 당시에도 협회가 ‘정치인 회장'의 잔류를 희망하는 종목도 있었다. 비인기 종목 단체의 경우 국회의원의 영향력에 기대어 숙원사업을 추진하거나 종목의 위상을 높이는데 지원 사격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반대했던 경기인들조차 지금은 “어차피 정치인들의 후광을 얻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차라리 정치인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게 낫겠다”는 푸념이 나온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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