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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기다려야 했던 뇌사자 폐… 생체 폐이식으로 많은 생명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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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기다려야 했던 뇌사자 폐… 생체 폐이식으로 많은 생명 구해”

입력
2018.11.27 04:00
수정
2018.11.30 10:1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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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생체 폐이식 수술,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생사 갈림길에 있던 19세 환자에 지난해 불법 무릅쓰고 시도

현재 여행 등 활기차게 생활… 지난달 마침내 생체 이식 합법화

지난해 10월 21일 폐동맥고혈압으로 심장이 멈추는 등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오화진(19)양이 50여명의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을 만나 새 삶을 얻었다. 국내 첫 생체 폐이식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시작돼 여러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당시에 국내에선 불법이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사들은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8일 국무회의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폐도 이식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폐이식 대기자들에게 복음이 됐다. 이전까지 뇌사자가 기증한 폐만 이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사자 폐는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폐섬유종, 폐기종, 폐동맥고혈압 등 중증 폐질환 환자에게 이식하기 어려웠다. 국내 첫 생체 폐이식 성공을 이끌었던 박승일(59)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흉부외과 교수(진료부원장)를 만났다.

-생체 폐이식은 안전한가.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안전한 수술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일찌감치 생체 폐이식을 합법화했다. 일본의 생체 폐이식 생존율이 1년, 3년, 5년 각각 93%, 85%, 75%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뇌사자 기증 폐이식 생존율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뇌사자 기증 폐이식 수술은 이식 가능한 폐를 찾기 어려워 다른 장기 이식보다 이식대기 기간이 길다. 하지만 생체 폐이식은 살아 있는 사람 2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어서 수술 전 이식 적합성 여부 검사를 통해 가족이 폐 일부를 기증할 수 있어 뇌사자 기증 폐이식 수술보다 대기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 악화로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어린이환자에게 또 다른 치료법을 제시하는 중요한 수술이다. 기증자 폐엽(肺葉) 절제는 폐암 절제수술의 경험으로 흔히 시행되는 안전이 보장된 수술이다.”

-지난해 10월 국내 첫 생체 폐 이식한 오화진양의 건강상태는.

“현재 2개월에 한 번씩 호흡기내과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화진 양의 팔다리 근육이 많이 강화됐고, 숨이 차지도 않아 일상생활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1년 전 폐고혈압증으로 심정지가 한 번 있었고,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에게 간절한 도움을 요청했던 당시 화진양의 야윈 몸과 위태로웠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즐기며,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국내 첫 생체 폐이식 수술을 시행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기존 ‘장기이식법’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뗄 수 있는 장기에 폐가 포함되지 않아 생체 폐이식은 불법이었다. 수술하면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화진양의 부모가 청와대 신문고에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도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열어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문제를 의뢰해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으니 법적 문제를 고려해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와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대한이식학회에 보고해 화진양을 위한 생체 폐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득해 나갔다. 지난해 10월 21일 불법인데도 화진양에게 국내 처음으로 생체 폐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국내 첫 생체 폐이식에 성공하지 1년을 넘겼는데 소감은.

“당시 화진양을 살릴 방법은 뇌사자 폐를 이식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뇌사자 폐를 이식 받으려면 4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뇌사자 기증 폐이식을 기다리다 생명을 잃을 것이 뻔하고, 화진 양은 이식대기자 등록 당시 폐 기능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응급대상자로도 인정 받지 못했다. 생체 폐이식 외에는 달리 살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법을 어겨야 한다는 점과 혹시 잘못됐을 때 병원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법이나 윤리보다 생명이 더 소중했고, 폐이식팀은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생체 폐이식 수술을 마쳤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화진양이 환한 얼굴로 의료진에게 감사하며 퇴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팀의 생체 폐이식 성공으로 지난달 합법화됐다. 하지만 이제 큰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이 수술이 활성화돼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의결됐는데.

“뇌사자 폐는 쉽게 손상돼 장기 기증을 해도 실제로 사용할 있는 폐는 12.9%에 불과하다. 때문에 뇌사자 폐를 기증 받으려면 평균 1,456일을 기다려야 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뇌사자 폐를 기다리던 환자 68명 가운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이 32명이나 됐다. 다행히 생체 폐도 이식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폐이식 대기기간을 대폭 줄이게 됐다. 어린이 환자는 특히 적합한 크기의 뇌사자 폐를 찾기 어려워 폐이식이 어려웠다. 그런데 생체 폐이식이 가능해져 부모 등 다른 사람의 폐 일부를 떼어 내 이식할 수 있게 돼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지난달에야 겨우 생체 폐이식이 합법화될 정도로 이 분야가 활성화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지난달에야 겨우 생체 폐이식이 합법화될 정도로 이 분야가 활성화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박승일(왼쪽)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국내 최초로 생체 폐이식 받은 오화진(왼쪽에서 세 번째)양 가족과 기념 촬영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박승일(왼쪽)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국내 최초로 생체 폐이식 받은 오화진(왼쪽에서 세 번째)양 가족과 기념 촬영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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