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한 군부, 무능한 정부, 서로 싸우는 반군… 총성 안 멎는 ‘휴전’

#군 최고사령관, 평화회담서
“단 하나의 군대 받아들이라”
고압적 자세로 소수민족 겁박
#전국 휴전에 서명한 반군들
“받아들일 수 없다” 강력 반발
내전 지역서 충돌 가능성 높아
지난 8월24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도의 방글라데시 접경 지역, 이른바 ‘노 맨즈 랜드’에서 미얀마 국경수비대가 보초를 서고 있다. 철책선 건너편에 있는 이들은 정부군의 소수민족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넘어간 무슬림 로힝야족 피란민들이다. 미얀마 정부와 소수민족들 간의 복잡한 갈등은 평화협상의 더딘 진행으로 인해 언제쯤 해소될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마웅도=EPA 연합뉴스

지난 7일 유럽연합(EU)은 미얀마 평화 프로세스 지원 예산으로 1,200만 유로(154억여원)를 승인했다. ‘카친주의 공고한 평화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부터 올해까지 이미 ‘1단계 지원’을 해 왔는데, 이를 확대 연장한 것이다. 내년부터 2022년까지의 ‘2단계 지원’인 이번 승인 대상 지역은 카친주뿐 아니라 샨주까지 포괄한다. 두 주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무장단체가 활동하고, 분쟁의 정도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EU는 수년간 미얀마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지원해 왔던 한 당사자다. 지난 12일 주미얀마 EU 대사인 크리스티안 슈미트가 양곤에서 열린 ‘민족화해평화센터(NPRC)’의 새 사무실 개소식에 ‘리본 커팅’ 멤버로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NPRC는 아웅산 수치 정부 출범 3개월째인 2016년 7월 설립된 평화협상 총괄기구로, 수치가 의장을 맡고 있다. 물론 미얀마의 로힝야족 대량 학살과 관련, EU가 미얀마의 고위 군경 7명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무관세 특혜 제공 철폐 등의 무역 제재를 구상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원’만큼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얀마의 ‘어떤 평화 프로세스를 지원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모아진다. 국제사회는 지난 7~8년간 적잖은 예산을 쏟아 부으며 미얀마 평화 프로세스를 지원했으나, ‘평화’를 내건 각종 사업의 효율성과 예산 운용의 불투명성 등으로 상당한 냉소와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더해 작금의 평화 프로세스는 소수민족과의 협상에 주도권을 쥔 군의 고압적 자세, 민간정부의 무능, 무장반군들 간 ‘내전’ 양상 등 세 가지 악성코드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21일 수도 네피도의 미얀마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족화해평화자문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네피도=AP 연합뉴스

우선 휴전 상황을 보자. 2012년 이후 미얀마의 반군들은 각 주(州)정부 및 연방(중앙)정부와 개별ㆍ양자 휴전협상을 벌였고, 휴전협정도 주정부 또는 연방정부와 단위 별로 맺었다. 이런 복잡한 방식은 2015년 10월15일 ‘일괄휴전으로 총성을 멎게 하자’는 취지의 ‘전국 휴전(NCA)’으로 대체됐다. 현재 NCA에 서명한 반군은 10개 조직이지만, 이들 중 카친주와 샨주, 라카인주 같은 격전지 반군은 단 한 곳도 없다. NCA 서명에 참여한 10개 조직도 군사국(armed wing)을 갖춘 곳은 4개뿐이고, 나머지 6개는 어차피 군사 활동이 잦아든 지역의 작은 반군들이다. 그나마 4개 조직마저도 지난해를 지나면서 정부군과 크고 작은 충돌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4일 NCA 휴전조직이자 70년 내전 ‘베테랑’인 카렌민족연합(KNU)의 군사국 카렌민족해방군(KNLA)도 태국과 국경을 인접한 5여단 지역에서 미얀마 정부군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 휴전을 유지하던 카렌주가 또다시 내전에 휘말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카렌주는 샨주와 더불어 미얀마-태국 국경 지대에서 수십만명의 난민(refugeeㆍ국경을 넘은 경우)과 국내 피란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ㆍ국경을 넘지 않는 경우)을 양산한, 말하자면 미얀마 내 가장 심각한 내전 지역들 중 하나다. KNU의 휴전 문제가 남달랐던 것도, 교전 소식에 우려가 더욱 커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급기야 KNU는 지난달 29일, 평화협상 일시 불참을 선언했다. NCA 서명 3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15~16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평화 회담 도중, 군 최고 사령관 민 아웅 라잉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소수민족 진영을 겁박한 게 결정적 이유로 풀이된다. 민 아웅 라잉은 이 자리에서 고압적 자세로 소수민족 대표단을 향해 ‘분리독립을 하지 않겠다(Non-Secession)’는 다짐을 강요하고, ‘단 하나의 군대(Single National Army)’를 받아들이라고 일장연설을 했다. 소수민족 군대 입장에서 보면 두 요구 모두 자신들의 존엄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고 여길 만하다. KNU 중앙위원회는 이달 6일 긴급회의를 열었다. NCA의 또 다른 휴전 그룹인 샨주남부군(RCSS/SSA) 역시 지난달 25일 성명을 통해 “안보와 국방 혹은 군의 재편 원칙에 대해 (정부군과 소수민족 군대 간)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단 하나의 군대’ 구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되받아 쳤다.

지난 2월 3일 미얀마군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민 아웅 라잉(가운데) 최고사령관. 소수민족과의 평화협상 회담장에서도 강경 발언들을 쏟아내 평화 프로세스를 답보 상태에 빠트린 핵심 장본인으로 꼽힌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 동안 미얀마 군은 휴전협상과 평화 프로세스를 ‘소수민족 길들이기 및 분열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휴전 그룹에는 이권사업의 길을 터주거나 그들의 영토확장 작전에 암묵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비(非)휴전 그룹과의 충돌을 부추기는 식이었다. 예컨대 샨주남부군이 2015년 NCA에 서명한 이래, 비휴전그룹인 탕민족해방군(TNLA)과 샨주북부군(SSPP)의 영토인 샨주 북부를 침범하면서 충돌을 빚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얀마의 소수민족 전문 기자인 라위 웽은 “지난 17일에도 샨주 북부 라시오 타운십에서 두 세력이 충돌하는 바람에 60대 카친족 여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민 아웅 라잉이 ‘단 하나의 군대’를 강조한 이면에도 분열정책이 어른거린다. 미얀마군은 소수민족 군대를 ‘국경수비대’ 혹은 ‘인민민병대’로 전환시키는 걸 적극 주문해 왔고, 이는 2008년 헌법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인민민병대’란 친(親)정부, 친군부 성향인 정규군의 보조 부대로서, 대(對)반군 작전에 동원되거나 지역 사회의 마피아 수준으로 타락한 조직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아시아파운데이션이 발표한 ‘미얀마의 민병대’ 보고서에 따르면 군이 민병대를 전략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말 네윈 군사정권 시절부터다. 지금도 소수민족 지역에서 반군과 충돌하거나, ‘세금’을 거두는 이들 중에는 ‘인민민병대’라는 간판을 건 조직이 많다. 역대 군 최고사령관들의 연설을 종합해 보면 이는 ‘국가안보’ 전략의 일환이다. 2003년 당시 군부 최고권력기구였던 국가평화개발평의회의 의장 탄쉐 장군은 그 해 국군의 날 행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군은 이 나라 정치를 두루 살피며 애국적 군대로 부상했다…. 우리 군은 인민과 손을 잡는 ‘인민민병대’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군과 인민은 하나다.”

미얀마의 국영언론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의 2005년 3월 22일 자 1면 모습. 당시 군부 최고권력자인 탄쉐 국가평화개발평의회 의장의 “우리 군(Tatmadaw)과 전체 인민은 하나가 됐고 분리될 수 없다”는 연설 내용과 함께 그의 ‘인민민병대 전략’이 언급돼 있다.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 PDF 캡처

탄쉐의 ‘인민민병대 전략’ 연설은 한때 미얀마의 국영언론 ‘뉴 라이트(New Light) 오브 미얀마’의 1면을 꾸준히 장식했다. 그의 후계자인 민 아웅 라잉 현 최고사령관 역시 2015년 국군의 날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인민민병대 전략은 이 나라의 국방전략”이라고 같은 말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지난 7월 치앙마이에서 열린 제3차 21세기 판롱회의 개회사에서도 소수민족 군대와 아웅산 수치를 모두 겨냥한 일석이조의 발언을 남겼다. “특정 지역 소수민족 군대가 5,200만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특정 계층만 대표할 뿐이다. 우리 군이야말로 인민의 군대로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세계 최장기인 ‘70년 내전’ 국가이자, 소수민족 반군만 해도 최소 20여개, 민병대 조직의 수는 무려 세 자리 숫자에 달하는 나라 미얀마에서 총성이 쉽게 멎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물론 아무도 없다. 그렇다 해도 다른 시대의 같은 발언, 군부독재 시절의 데자뷔(기시감)가 부쩍 잦아진 최근 상황을 보면 미얀마 평화협상은 당분간 짙은 먹구름 속에 갇혀 버릴 공산이 커 보인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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