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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삼바 감사인 삼정·안진은 과연 떳떳할까

입력
2018.11.22 17:47
수정
2018.11.22 21: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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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아서앤더슨(Arthur Andersen)은 2001년 미국에서 최악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파산한 에너지 기업 엔론을 감사한 회계법인이다. 한때 세계 5위의 회계법인이었던 앤더슨은 엔론 사태(2001년)로 일감이 끊기고 수십 건의 대규모 민사 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이듬해 문을 닫는다. 갑자기 앤더슨을 떠올린 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에 연루된 회계법인들이 묘하게 앤더슨과 겹치기 때문이다. 다른 게 있다면 앤더슨은 간판을 내렸지만 삼성바이오 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삼정·안진)들은 앤더슨에 견주면 훨씬 약한 징계(삼성바이오 감사 제한)를 받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미국 에너지 기업 엔론은 투자실패로 발생한 엄청난 손실을 감추려고 수년간 분식회계를 벌였다. 분식의 규모는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의회가 분식회계를 주도한 경영자와 회계법인을 일벌백계하는 내용의 ‘사베인스-옥슬리법(2002년 제정)’을 탄생시키는 데 단초를 제공한 기업이 바로 이 엔론이다. 엔론이 당시 대규모 분식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건 앤더슨이 워치독(감시견)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인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경제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엔론이 몰락한 배경을 다룬 분석기사(2002년 1월21일자)를 보면 엔론과 앤더슨의 관계는 상당히 긴밀했다. 앤더슨의 회계사들은 엔론 직원들처럼 정장이 아닌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으로 일했고 심지어 엔론 직원 행사 중 하나인 콜로라도 비버크리크로 떠나는 스키 여행에도 함께 갔다. 엔론은 앤더슨에 감사 외 일감도 잔뜩 안겨줬다. 앤더슨이 2000년 엔론에게서 받은 수수료는 5,200만 달러(588억원)였는데, 이 중 컨설팅 업무를 해주고 받은 돈이 2,700만 달러로 감사수수료(2,5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신문은 앤더슨이 엔론으로부터 감사 외 업무에서 막대한 돈을 챙겼기 때문에 엔론의 부실한 장부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질문하길 꺼렸을 거라고 분석했다.

삼정회계법인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바이오의 장부를 감사했고, 안진회계법인은 2016년 삼성바이오의 감사인이었다. 이들과 삼성과의 관계가 엔론과 앤더슨처럼 긴밀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업무처리 과정을 보면 이해 안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으로 판단한 핵심 증거로 삼성 내부문건을 꼽았는데, 여기엔 자본잠식이 예상되는 삼성바이오에 회계법인들이 제시한 3가지 대응방안이 담겨 있다. 1안 말미엔 삼성이 삼정회계법인 등과 초안을 완성했단 부분이 나온다. 삼성이 잠식을 피하기 위한 방안을 삼정 등과 적극 논의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다만 삼정은 1안을 제시하진 않아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다. 설령 그렇다 해도 재무제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살펴야 하는 감사인이 피감사인과 회계처리 방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이해상충 우려가 있다. 삼성바이오는 자회사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 변경을 제안한 2안을 택하는데, 문건엔 2안을 누가 제시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검찰이 밝힐 부분이다.

삼정과 안진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앞서 이들 회사의 의뢰로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로 있던 삼성바이오 지분가치를 평가하기도 했다. 안진은 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인 2015년 말 통합물산의 의뢰로 삼성바이오 가치를 매기고, 자회사인 에피스의 가치를 4조8,000억원으로 평가한다. 안진은 이듬해 삼성바이오 감사인으로 선임되고 자신들이 매긴 에피스 가치가 반영된 2016년 재무제표에 ‘적정’ 의견을 내줬다.

증선위는 삼정과 안진이 분식을 공모한 건 아니라며 경징계를 줬다. 설령 공모한 건 아니라 해도 삼성이 회계법인에 여러 컨설팅(가치산정 등)을 의뢰하고, 회계법인은 판단의 근거가 될 법한 보고서를 써주고 동시에 외부감사까지 맡는 이 구조에서 과연 감사인의 1순위 덕목인 독립성이 제대로 지켜지는 게 가능했을까. 오히려 해야 할 질문을 속으로 삼킨 건 아닐지. 이 역시 검찰 수사로 드러날 것이다.

김동욱 경제부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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