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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가이드 “국회의원 601명이나 되는데 모두 도둑놈”

입력
2018.11.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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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4> 티베트~네팔 국경 건너기 진땀 

중국 티베트의 국경도시 지롱거우의 한 사찰 입구에서 신도들이 오체투지로 절하고 있다.
중국 티베트의 국경도시 지롱거우의 한 사찰 입구에서 신도들이 오체투지로 절하고 있다.
한 여행객이 네팔에서 중국 출입국사무소를 쳐다보고 있다. 중국은 포장도로, 네팔은 흙길이다.
한 여행객이 네팔에서 중국 출입국사무소를 쳐다보고 있다. 중국은 포장도로, 네팔은 흙길이다.

티베트 5,000m 고산지역을 누비다 1,300m 남짓한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길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산소도 많겠다 설산으로부터도 멀어지겠다 국경에서 100㎞ 좀 넘는 거리에 불과할 테니 창밖 구경이나 하면 되겠다 싶었다.

9월26일 중국 국경도시 지롱거우를 떠나 네팔로 넘는 길에는 트럭이 도로 양쪽으로 수백 대가 늘어 서 있었다. 차선은 왕복 2차선인데 갓길까지 차지한 트럭은 모두 국경 방향이었다. 움직이는 트럭은 한 대도 없었으니 그냥 도로가 길다란 주차장이었다. 버스가 곡예 하듯 트럭 사이를 빠져나가 국경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중국 버스와 가이드, 운전기사는 여기까지였다. 버스에서 내려 짐가방 끌고 출국수속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국경 넘는 사람도 크게 많지 않은데 수속 늦게 한다고 툴툴대다가 큰 코 다칠 뻔했다. 길에서 대기 중인 트럭은 국경 넘는데 보름에서 한 달이나 걸린다는 것이었다. 1시간이면 급행 중에 초급행이었다.

국경은 계곡 사이 다리 하나로 나뉘어져 있었다. 길이 100m 왕복 2차선 규모의 다리 중간이 중국과 네팔을 가르는 국경선이었다. 중국 쪽은 건물도 번듯했는데 네팔 쪽은 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작은 트럭 하나가 다리 건너편으로 짐을 옮겨줬고 사람은 도보로 건너는 시스템이었다. 다리 중간에서 중국 국경수비대의 마지막 인원점검을 거쳐 네팔로 들어섰다.

원래 중국과 네팔 국경은 잠무였다. 하지만 2015년 4월 네팔 지진 후 잠무 국경이 폐쇄되면서 한동안 왕래가 끊겼다. 지롱거우는 지난해 8월 열린 국경이다. 잠무보다는 라싸에서 조금 더 왼쪽으로 더 달려야 하는 우회도로다. 이곳 국경에서 라싸까지는 755㎞, 카트만두까지는 140㎞ 떨어져 있다.

네팔 트럭들이 중국 티베트 국경을 넘기 위해 도로 양쪽에 정차해 있다.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최소 보름, 길게는 한달이나 기다려야 한다.
네팔 트럭들이 중국 티베트 국경을 넘기 위해 도로 양쪽에 정차해 있다.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최소 보름, 길게는 한달이나 기다려야 한다.
네팔 인부들이 도로 옆으로 굴러 내린 트럭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며칠 째 작업 중이라고 했다.
네팔 인부들이 도로 옆으로 굴러 내린 트럭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며칠 째 작업 중이라고 했다.

 ◇비포장 도로 마사지에 온몸 공중부양 

그런데 웬걸 네팔 쪽 국경은 다리 중간부터 비포장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다. 바로 그곳부터 카트만두까지 이어지는 길의 대부분이 비포장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방은 뒷좌석에 싣고 운전석과 조수석, 중간에 5명이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넓게 가자 싶어서 큰 가방은 모두 지프차 지붕에 실었다. 그리곤 뒷좌석을 통째로 차지했다. 앉아 가든 누워 가든 내 맘이었다.

그게 판단 착오였다. 그때부터 카트만두까지 내내 비포장 도로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가뜩이나 우기 직후여서 길은 움푹 파여 있었고 지프차가 요동칠 때마다 온몸이 공중부양 묘기를 부렸다.

네팔 쪽도 트럭이 장사진을 이루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럭 사이를 헤집고 나오자마자 다시 짐을 내려 입국 수속을 밟는 수고를 피할 수 없었다. 세관원들이 우엉차 봉지를 보고는 한동안 옥신각신했다.

길은 외통수였다. 네팔 쪽 국경마을 둔체에서 닭고기 커리로 배를 채우고는 또 다시 비포장길을 달렸다. 지프차에 먼지가 자욱했다. 티베트 쪽에서 봤던 라싸행 지프차가 왜 진흙투성이인지 이해됐다. 흙길과 오른쪽 낭떠러지 아래 경사면 곳곳에는 민가가 듬성듬성 박혀 있었고 원주민들은 좁은 길로 잘도 다녔다.

얼마 가지 않아 지프차 행렬이 멈췄다. 10톤이 넘는 트럭 한 대가 비탈길 아래 빠져있었다. 그나마 아래 평지가 있어 차량이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운전기사들이 로프를 나무에 둘러매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로프는 끊어졌다. 30분쯤 지나니 로프를 풀고 양방향 차량부터 통행시켰다.

그렇게 몇 시간 달리다 트리슐리에서 자고 다음날 또 한나절을 달려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꼬박 하루 반이 걸린 셈이다. 길을 몰랐으니 왔지 알았더라면 감히 덤벼들기가 쉽지 않았을 성 싶다.

최근 중국이 네팔에 텐진과 선전, 렌윈강, 잔장 4개 항구와 란저우 라싸 시가체 3개 내륙도시를 통해 다른 국가와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인도의 캘커타와 비사카퍼트남 항구를 이용하는 네팔이 중국 쪽으로 활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경으로 통하는 네팔 도로를 새로 정비하지 않고서는 협정은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국경을 넘어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길에서 한 주민이 염소를 몰고 가고 있다.
중국 국경을 넘어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길에서 한 주민이 염소를 몰고 가고 있다.
오토바이들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도심을 달리고 있다.
오토바이들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도심을 달리고 있다.

 ◇구르카 용병 떠올리게 하는 카트만두 

카트만두 외곽은 전원마을이었다. 도심으로 들어가서야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승용차는 카트만두 안에서만 달릴 수 있는 차량이었다. 옛 지명 칸티푸르로 알려진 카트만두는 10세기 무렵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한 것은 15세기 말라 왕조 때부터다. 18세기 후반에 구르카 왕조가 수도로 정한 후 네팔의 대명사가 됐다.

구르카 용병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바티칸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과 출신을 따지지 않는 프랑스 외인부대, 그리고 구르카 용병은 세계 3대 용병 반열에 올라있다.

네팔은 2007년 왕정이 끝나고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으며 2008년 5월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네팔연방민주공화국으로 새로 탄생했다. 국토는 한반도의 3분의 2, 인구는 3,000만명, 종교는 힌두교가 87%, 불교 8%, 이슬람교가 4% 정도다. 인구의 3분의 1이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기도 하다.

네팔 가이드 가넨드라 사히(40)씨는 “국회의원이 601명이나 되는데 모두 도둑놈”이라며 “정치개혁이 국가발전의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정치인 욕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었다. 한국어를 2년 독학한 후 연세대 어학당에서 두 달 반 공부한 그는 “네팔에는 125개 민족이 123개의 언어를 쓰고 아직도 같은 카스트와 중매결혼을 한다”며 “네팔에 한 번 다녀간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어 있다”고 주문을 걸었다.

여행객들이 네팔 최대의 스투파인 보우더나트 주위를 돌다 비둘기떼를 둘러보고 있다.
여행객들이 네팔 최대의 스투파인 보우더나트 주위를 돌다 비둘기떼를 둘러보고 있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 파슈파티나트에서 인부들이 화장용 나무를 옮기고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 파슈파티나트에서 인부들이 화장용 나무를 옮기고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도심에 전깃줄이 길 위를 덮고 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도심에 전깃줄이 길 위를 덮고 있다.

사히 씨와 함께 카트만두에서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인 파슈파티나트와 가장 큰 스투파 보우더나트, 옛 왕궁 하누만도카, 쿠마리 사원을 거쳐 재래시장인 타멜시장까지 여정은 이어졌다. 도심 한 가운데 뒤엉킨 전깃줄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줬더니 ‘제비집?’이란 답장이 달려 한참 웃었다.

해발 70m부터 8,848m까지 지구에서 최대 고도차를 보이고 있는 네팔이 자연과 인류 문명의 보물창고로 떠오르길 기대하면서 카트만두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글ㆍ사진=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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