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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영웅이 간 곳 어디메뇨…속리산 품은 견훤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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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영웅이 간 곳 어디메뇨…속리산 품은 견훤산성

입력
2018.11.20 18:00
수정
2018.11.20 18:5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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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와 분리된 듯 호젓함만이… 상주 화서면

상주 화북면 장바위산 꼭대기의 견훤산성. 동남쪽 성곽의 곡선이 물결처럼 아름답다. 상주=최흥수기자
상주 화북면 장바위산 꼭대기의 견훤산성. 동남쪽 성곽의 곡선이 물결처럼 아름답다. 상주=최흥수기자

상주는 평야도 넓지만 산도 깊다. 속리산에서 최고의 절경으로 꼽는 문장대는 상주 화북면에 속하고,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057m)은 보은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문장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속리산의 우람한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견훤산성이다.

상주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 유적이 많은 것은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현재는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라 기록하고 있다. 화북면 장바위산 정상부의 견훤산성도 그 맥락에 있다. 남으로 신라와 맞서고, 북으로 고려의 남하를 막는 위치이기는 하나 견훤이 쌓은 성이라고 전할 뿐,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실제 전투를 벌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견훤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속리산국립공원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 못 미쳐 오른편이다. 도로에서 산성까지 거리는 700m로 짧지만,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대신 점성이 없는 모래땅이어서 궂은 날도 질척거리거나 미끄러질 염려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견훤산성 남측 커다란 바위에 김해 김씨 아무개의 묘비명이 적혀 있다.
견훤산성 남측 커다란 바위에 김해 김씨 아무개의 묘비명이 적혀 있다.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한 성곽 축조.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한 성곽 축조.

넉넉잡아 30분 정도 걸어 산성에 도착하면 석축을 쌓은 커다란 자연석에 ‘김해 김씨 아무개의 묘’임을 알리는 비문이 적혀 있다. 실제 묘는 바위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고, 묘에는 비석이 따로 없다. 견훤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보려는 의도일 텐데, 어쨌거나 묘비로는 이만한 게 없겠다.

그 바위를 끼고 조금 더 오르면 남동 방향 산성의 외벽이 명확한 형태를 드러낸다.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해, 필요한 곳에만 돌을 쌓아 자연과 성벽이 조화롭다. 옆에서 보면 성벽의 흐름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곡선을 이뤄 미적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성 위에 올라서면 높은 산에 둘러싸인 화북면소재지가 아늑하게 내려다보인다. 화북면엔 ‘우복동(牛腹洞)’이라는 표지가 유난히 많다. 우복동은 공식 행정지명이 아니라, 소의 배처럼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 주민들은 이곳이 전란과 자연재해도 피해 가는 십승지 중 하나라 주장한다. 청화산, 시루봉, 승무산, 도장산 등 속리산 줄기의 크고 작은 봉우리에 갇힌 형세여서 실제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속리산이라는 이름대로 속세와 분리된 세상이다.

견훤산성 북서쪽 성곽에서는 속리산의 우람한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산골까지 날아든 미세먼지가 아쉽다.
견훤산성 북서쪽 성곽에서는 속리산의 우람한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산골까지 날아든 미세먼지가 아쉽다.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 비스듬히 기울어져 보인다.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 비스듬히 기울어져 보인다.
원래의 모습이 보존된 동북쪽 성곽.
원래의 모습이 보존된 동북쪽 성곽.

견훤산성은 장바위산 정상부위를 한 바퀴 두르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7~15m 높이의 성벽이 650m에 이르는데, 동남쪽과 동북쪽만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초록 이끼를 머금은 안쪽 성벽의 원형도 일부 남아 있다. 바깥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듯 보이는 이유는 위로 쌓을수록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곳에 서면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발 아래는 깎아지른 낭떠러지여서 천연 요새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 소나무가 많아 단풍이 곱다 할 수는 없지만 속리산의 깊이가 절로 느껴진다.

화북면 용유리에는 우복동에 안거하며 자연을 찬미한 유람시를 모아 놓은 ‘속리산 시비(詩碑)공원’이 조성돼 있다. 여기에 견훤산성을 노래한 시가 두 수 있다. “가을날 옛 성 마루 흰구름 가니, 한 세상 영웅들의 간 곳이 어디메뇨, 백제의 흥망성쇠 천 년의 한이, 늦은 산 초동들의 한 가닥 노래로세.” 공검면의 채주환이라는 양반이 쓴 시다. 찾는 이 많지 않아 쓸쓸함이 더한 견훤산성의 처지를 노래한 듯하다.

견훤산성 가는 길의 화북면 상오리 솔숲.
견훤산성 가는 길의 화북면 상오리 솔숲.
화북면에서는 ‘우복동’이라는 표시를 흔히 볼 수 있다.
화북면에서는 ‘우복동’이라는 표시를 흔히 볼 수 있다.
화북면소재지 인근 바위에 새겨진 글씨. 경치가 빼어난 곳, ‘洞天(동천)’이라 썼다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화북면소재지 인근 바위에 새겨진 글씨. 경치가 빼어난 곳, ‘洞天(동천)’이라 썼다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견훤산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괴산을 거쳐 상주로 연결되는 49번 지방도로다.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청주영덕고속도로 화서IC에서 가장 가깝다.

상주=글ㆍ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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