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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의 반려배려] 법정에 울린 설악산 산양 ‘뿔이’의 외침

입력
2018.11.20 14: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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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왼쪽)과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에서 연극인 윤주희씨가 산양 분장을 한 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왼쪽)과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에서 연극인 윤주희씨가 산양 분장을 한 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연합 제공

“재판장님. 전 설악산 오색에서 사는 산양 ‘뿔이’라고 합니다. 산양 소송을 한다면서 왜 저는 부르지도 않고 재판을 합니까? 제가 당사자니까 당연히 제가 재판에 참석해야 합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홀에서 열린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 연극인 윤주희씨가 산양 분장을 한 채 문을 박차고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실제로 동물권리를 연구하는 변호사 단체 피앤알(PNR)은 지난 2월 설악산 산양 28마리를 원고 당사자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본보 2월12일 17면 보도)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앞서 강원도 양양 지역주민과 산악인 등 350여명이 문화재청을 상대로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천연보호구역의 현상변경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7개월이 지난 9월 열린 첫 재판에서 재판부는 산양이 피앤알에 소송을 위임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변론을 종결했다. 대신 산양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만한 법적 근거를 제공할 기회를 준다며 내년 1월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이를 앞두고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판사와 변호사 등의 역할을 나눠 맡고 온라인으로 시민배심원단까지 모집해 모의법정을 준비했다.

모의법정에서 산양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석송령’이라는 소나무의 솔방울을 먹었기 때문으로 당일까지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이 재치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법적으로 땅을 소유하고 있는 소나무인데 행정착오인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등기가 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자연물인 식물에게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동물에 대해서도 소송에서의 당사자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 측은 “실수로 만들어진 것 뿐”이라고 맞선다.

원고 측은 또 미국에서 원고적격이 인정된 그래엄산 붉은다람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을 증거로 제출한다. 이 다람쥐 역시 석송령의 솔방울을 먹었다. 붉은 다람쥐는 “우리가 미국 그래엄산 고지대 전나무 숲속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게 알려지면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며 “하지만 이곳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미국연방법원은 개발로 인해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건 붉은 다람쥐들이라고 판단해 소송의 원고로 인정해줬다”고 했다. 공사를 중단할 필요성까진 인정되지 않아 공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다람쥐도 권리를 가진 한 주체로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동물들이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인정 받은 적이 없다.

원고는 이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의 활동범위가 좁고 케이블카설치로 서식지 자체가 파괴됨을 강조한 반면 피고는 사람들이 산에 걸어서 올라가지 않고 케이블카만 이용하면 오히려 산양이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9명의 시민 배심원단의 판단은 어땠을까. 산양이 원고로서 소송제기가 가능하다고 전원 의견일치에 이르렀고, 케이블카 설치 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평결했다.

뿔이는 마지막으로 외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설악산 케이블카가 우리 집 한복판에 생기면 제가 살아갈 곳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설악산 산양들과 생명들의 입장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내년 1월엔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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