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사바리말라 사원에 순례자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힌두교 성지 순례 기간에만 문을 여는 인도 케랄라주 사바리말라 사원이 16일(현지시간) 2개월에 걸친 순례기간을 맞아 문을 열었지만, 사원 입구로 가는 길 곳곳은 바리케이드가 배치됐다. 1만5,000명에 이르는 경찰 병력이 사원 앞을 삼엄한 경계로 지켜보는 것은 여성 신도의 출입을 막으려는 우파 힌두민족주의 단체의 시위를 막기 위해서다.

지난 9월 인도 대법원이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며 이 사원에 대해 여성 신도의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사바리말라 사원 앞은 엉망진창이 됐다. 정식 순례기간에 앞서 10월과 11월 초 단기간 문을 열었을 때, 우파 힌두교도들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는 여성들을 공격하려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10월 한 달간 시위대 2,000여명을 체포했으며, 17일에도 한밤중에 사원에 침입하려던 우파 힌두민족주의 단체의 대표를 붙잡았다.

이날 시위대 1,000여명이 사바리말라 사원에서 약 160㎞ 떨어진 코치공항까지 나와 사원 참배를 위해 케랄라주를 찾은 여성들을 저지하려 나섰다. 사원 참배에 등록한 여성 인권운동가 트룹티 데사이는 “택시들조차 내가 타고 있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을까 봐 승차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남성 시위대는 사바리말라 사원이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종교적 전통일 뿐이라며 사법부와 주정부 개입에 반발하고 있다. 사바리말라 사원은 다신교인 힌두교에서 순결을 상징하는 아야파 신을 모시고 있다. 10세에서 50세 사이 가임기 여성은 생리를 하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다’는 게 출입 금지 이유다. 심지어 시위대 가운데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여성도 있다. 시위대에 동참한 여성인 인디라 크리슈마쿠마르는 “2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힌두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번 참여했다”며 “사원에 들어오려거든 내 몸 위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샤니 싱나푸르 사원을 시작으로, 비슷한 이유로 금녀 구역을 강조하던 힌두교ㆍ이슬람교 사원들이 여성단체가 제기한 소송에 줄줄이 패하면서 인도 전역에서 사원의 금녀 전통은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케랄라주를 흔드는 힌두 민족주의 단체 움직임에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배출한 인도인민당(BJP)은 케랄라주 의회에서는 1석에 그칠 정도로 세력이 미미한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힌두민족주의 집단의 세 결집을 노리고 있다.

이를 두려워한 주정부도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기는 하지만 시위를 적극 진압하지는 않고 있다. 경찰은 온라인으로 방문을 신청한 여성 800여명이 사원까지 약 5㎞를 걸어야 하는 트레킹 코스를 이용할 때 보호 조치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를 이용한 여성은 없다. 법원 판결이 시위대의 물리적 위협으로 무력화한 셈이다. 사바리말라 사원 측도 지난 19일 법원에 공식적으로 판결 이행을 위한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슬아 인턴기자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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