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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성지’ 향린교회 철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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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성지’ 향린교회 철거 운명

입력
2018.11.19 15:58
수정
2018.11.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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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시행사에 매각 후 이전 추진

향린교회는 명동성당과 더불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중심지였다. 입구 왼쪽 기둥에 항쟁 20주년을 기념해 2007년 6월 세운 6월 민주항쟁 기념패가 붙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향린교회는 명동성당과 더불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중심지였다. 입구 왼쪽 기둥에 항쟁 20주년을 기념해 2007년 6월 세운 6월 민주항쟁 기념패가 붙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명동성당과 함께 6월 민주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향린교회의 건물이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소속 향린교회(담임목사 김희헌)가 현 건물을 재개발 시행사에 매각하고 이전한다. 향린교회의 이성환 부목사는 “(내부) 논의 끝에 향린교회 토지 및 건물을 매각하기로 하고 최근 재개발 시행사와 가계약을 맺었다”고 19일 밝혔다. 이 부목사는 “아직 본계약을 한 상태가 아니라 이전을 확정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내년 상반기 중구청에서 사업승인이 나면 본격적인 철거와 이사가 이뤄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향린교회는 지난 5월 교회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공동회의에서 ‘향린교회 토지 및 건물 매각의 건’을 논의해 교회 철거와 이전을 결정했다. 이전할 장소를 정하지는 않았으나, 교회의 성격을 고려해 명동 중심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옮길 방침이다.

향린교회는 1953년 12명의 개신교인들이 창립했다. 낡은 3층 건물에 십자가도 내걸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65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명동성당과 함께 6월 항쟁의 주요 거점으로 꼽힐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1987년 5월 향린교회에서 종교계와 정치계, 학생운동 조직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국본)를 결성했다. 국본은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켜 그 해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향린교회는 지난해 연말 개봉해 723만명이 관람한 영화 ‘1987’ 속 교회의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이 대공분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황급히 도주하는 향림교회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종종 찾았던 향린교회에서 착안했다.

교회는 민주화 운동 등 역사성을 고려해 교회 건물 일부를 살릴 방법도 고려 중이다. 이 부목사는 “가계약 조건으로 교회 건물의 일부를 보존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며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 운동 기념 공원을 만드는 방향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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