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0주년 행사 
17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 카페에서 만난 조정래 작가. 보성여관은 소설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곳이다. 해냄출판사 제공

조정래 작가(74)를 만났다. 17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열린 문학관 개관 10주년 행사에서다. 조 작가는 10권짜리 ‘태백산맥’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베껴 쓴 열혈 독자에게 감사패를 줬다. 필사본은 “매일 두시간씩 작업하면 꼬박 4년이 걸리는 분량”(해냄출판사 이진숙 주간)이다. 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필사본은 무려 34개. 문학관엔 그간 65만명이 다녀갔다. 기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태백산맥은 1986년 출간된 이후 850만권이 팔렸고, 요즘도 매년 10만권쯤 나간다고 한다. ‘아리랑’, ‘한강’까지 합하면 조 작가의 대하소설 3편의 판매량은 1,550만권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 무대인 벌교에서 조 작가는 작가 이상의 작가다. 문학관엔 그의 가족사진, 그가 입던 양복까지 전시돼 있다. 보성군은 ‘태백산맥 테마파크’를 만든다며 주변 땅 3,000평(약 9,900㎡)을 샀다. 조 작가는 그런 숭앙의 분위기를 굳이 사양하지 않는 듯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으로서, 그는 기뻐했고 종일 바빴다. ‘조정래 선생님의 찻(茶)자리’까지 지정돼 있는 인근 카페에서 잠시 마주앉았다.

 -새 소설을 쓰는 중이라고 들었다. 

“‘천년의 약속’이라는 세 권짜리 장편이다.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모든 나라 국민이 국가가 자신에게 해 준 게 뭔지를 회의하고 질문했지만, 답이 없었다. 내가 응답하겠다는 거다. 이제 한 권을 썼고, 내년 6월 10~15일쯤 시중에 나온다.”

 -어떻게 그게 예측 가능한가. 

“소설 쓰며 잡은 목표를 늘 초과 달성해서 그렇다. 집필 계획을 한 번도 어긴 적 없다. 10년 뒤에 쓸 작품도 이미 준비 중이다. 목표는 곧 희망이다. 열심히 쓰는 건 작가의 생존 확인이다. 작가에겐 은퇴가 없다. 작가 은퇴식이라는 게 있나. 쓰지 않는 작가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누구나 소설을 쓰고 발표해도 되나. 즉, 성추문을 일으킨 작가와 그 작품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인간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건 종교인만의 일이 아니다.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의 임무이기도 하다. 문학은 인간의 존엄과 존경,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예술이다. 예술가의 난행과 추행, 도덕 파괴적 행위를 낭만으로 봐 준 권위적 문화는 이제 수정돼야 한다. 그런 관대함을 심판하고 척결하자는 주장에 철저히 동의한다. ‘미투’로 성폭력 가해 사실이 드러난 사람은 단호하게 처벌받고, 그가 만든 작품은 매도돼야 한다. 친일파의 작품이 용납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을 도구화해도 괜찮다는 건 과거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런 낡은 생각을 가지고 현대를 살아서 되겠나.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소유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지, 남성만의 인권이 아니다.”

조정래 작가가 17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열린 문학관 개관 10주년 행사에서 독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해냄출판사 제공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집행한 사람들을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논란이다. 

“블랙리스트는 자격 미달인 특정 정권이 저지른 잘못이다. 사회 전체가 병들었다고 봐선 안 된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더 과감하게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는 목소리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하수인’ 입장에서 지시를 받아 이행한 실무자들에겐 관대해도 좋지 않나. 피해 입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용서하는 것으로 보상받아라.’ 나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역사’보다 주로 ‘나’를 통찰하는 게 요즘 소설의 경향이다. 

“20년쯤 된 이야기다. 사회 전체에 치열성이 부족하다. 젊은 작가들이 죄다 1인칭 소설만 쓴다. 1인칭은 말하자면 작가가 수다를 떠는 거다. 단편소설에서나 통한다. 작가들이 3인칭을 다룰 줄 모른다. 피해버린다. 그러니 소설 속 사건이 만들어지지 않고, 감동과 긴박감이 없다. 그래서 요즘 소설은 통 못 읽겠다. 안 읽은 지 꽤 됐다. 공지영, 방현석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젊은 작가들이다.”

 -신춘문예 시즌이다. 작가로 사는 걸 권하나. 

“문학은 인간과 문자가 있는 한 필요하고, 그러므로 존재할 거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 가면 위인 동상이 많다. 예술가 동상이 정치인 동상보다 많다는 걸 아는가. 예술가 중엔 문인 동상이 제일 많고, 시인보다 소설가 동상이 많다. 소설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얘기다. 문학은 할 만한 것이다. 잘만 쓰면 배고플 일도 없다.”

보성=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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