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실장 경제ㆍ사회정책 총괄 지위 받아
‘J노믹스’ 수정보다 가속하려는 포석
패착 피하려면 활달한 현실감 보강해야

문재인 정부 최악의 정책 실패작으로 꼽히는 최저임금 과속인상 때문에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일 것이다. 최저임금을 일단 올려놓고 보자는 ‘우직한 선의(善意)’는 경제현장을 뒤엎었다. 자영업자들이 아예 고용을 포기하면서 음식점과 편의점, 옷가게나 숙박업소 등의 일터에서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쳐 그나마 일자리를 유지한 일용직들의 돈벌이까지도 크게 줄었다.

못살겠다는 원성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은 결코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거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해괴한 발언을 이어갔으니 욕을 자초한 셈이 된 것이다. 그런데 비난이 들끓자 장 전 실장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폭에 나도 깜짝 놀랐다”며 슬쩍 발뺌하는 듯한 말을 흘린 것이다.

장 전 실장이 왜 굳이 스타일만 구길 얘길 꺼냈는지는 한동안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최근 그 배경을 엿볼 만한 소문이 나돌았다. 요지는 청와대에서 최저임금 정책을 주도해온 건 정작 장하성이 아니라 김수현 사회수석(신임 정책실장)이었다. 김 수석이 장 실장에게 최저임금 ‘노터치(no-touch)’를 요구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장 전 실장이 사전에 구체적 인상폭을 몰랐고, 나중에 놀랐다는 얘기도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청와대 실세를 ‘임하룡’이라고 했다. 임종석ㆍ장하성ㆍ정의용의 줄임말이었다. 요즘엔 ‘임수철’이 진짜 실세였다는 말이 나돈다. 임 실장이 통일외교, 김수현ㆍ김현철(경제보좌관)이 경제ㆍ사회정책을 사실상 주도해 왔다는 얘기다. 장 전 실장이 영입 인사에 불과한 반면, 김수현은 원조 ‘친문’으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왔다는 점도 최근 실세론을 뒷받침한다.

장 전 실장의 암시와 나도는 소문처럼 김수현이 적어도 최저임금 정책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라면, 문 대통령의 이번 ‘김&장’ 경질 인사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동안 경제팀을 바꾸라는 다수 여론은 “이렇게 가다간 초가삼간 다 태워먹겠다”는 절실한 우려를 담은 것이었다. 부(富)의 양극화와 불공정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시대정신’ 자체에 시비를 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경제정책이 거기에 함몰돼 더 큰 번영을 일굴 생산적 기획이 크게 미흡하므로 ‘정의’와 ‘번영’ 간의 정책 균형을 회복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김수현을 정책실장으로 기용함으로써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강수(强手)를 뒀다. 비판 확산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강수를 택한 배경도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무엇보다도 ‘밀리면 진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항과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선택을 한 셈이다.

아울러 최저임금에 가려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전반적 성과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널리 체감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번영을 일굴 정책인 ‘혁신성장’은 경제부총리가 전담해 잘만 하면 소득주도 성장과 충분히 병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혁은 유연한 현실감각을 잃으면 ‘탈레반’처럼 되기 십상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보이지 않는 성과’ 역시 그 틀을 넘어 국가경제 전체를 보는 손익관계 속에서 재평가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각 병진론’은 수많은 규제개혁 법안이나 ‘광주형 일자리’조차 풀어내지 못하는 현장의 이해상충을 감안할 때, 이념적 몽상에 불과함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김수현 실장은 이제 경제와 사회정책을 총괄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김 실장은 이를 패장(敗將)에게 주어진 만회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일국적(一國的) 시각, 정권의 치적에 갇힌 경직된 정의보다, 국가적으로 잠시만 멈칫거려도 도태되는 치열한 세계체제를 주시하며 앞으로의 경제정책을 조율해 나가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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