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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용병 vs 용병’ 전쟁 민영화 실험장 된 시리아

입력
2018.11.16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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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디 진영 말하마 택티컬, 반군 훈련ㆍ전투 참여 

 친 아사드 진영도 용병업체 가담 ‘또 하나의 전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진영에 등장한 첫 민간군사기업으로 꼽히는 ‘말하마 택티컬’의 멤버들 모습.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인 ‘아부 살만 베랄루스’라는 인물이 이끄는 단체로, 시리아 반군 무장단체를 상대로 군사기술, 전장에서의 응급처치 등과 관련한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아부 살만 베랄루스 트위터 캡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진영에 등장한 첫 민간군사기업으로 꼽히는 ‘말하마 택티컬’의 멤버들 모습.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인 ‘아부 살만 베랄루스’라는 인물이 이끄는 단체로, 시리아 반군 무장단체를 상대로 군사기술, 전장에서의 응급처치 등과 관련한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아부 살만 베랄루스 트위터 캡처

지난 9일(현지시간) 밤 시리아 북부 하마주 알 타라비 마을에 있는 시리아 정부군의 작전룸, 이른바 ‘화해 센터’는 알카에다 계열 시리아 무장단체 ‘하이얏 타흐리르 알 샴(HTS)’으로부터 급습을 당했다. 이 소식은 HTS의 선전 매체 ‘이바뉴스에이전시’는 물론 친(親) 러시아ㆍ친 아사드 논조로 유명한 ‘아크바이잔 네트워크 뉴스 에이전시’를 통해서도 전해졌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날 공격으로 시리아 정부군 18명, 러시아군 7명이 각각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두 나라의 고위급 장교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을 감행한 부대는 HTS의 엘리트 부대 ‘레드 밴드’다. 시리아 전장에서 반(反) 아사드 무장단체 진영의 활동상을 집중 보도하는 ‘온 더 그라운드 뉴스’의 대표기자 빌랄 압둘 카림은 지난 13일 이 급습 작전을 전하면서 HTS 엘리트부대의 훈련교관 인터뷰와 훈련 장면 영상을 내보냈다. 러시아어로 인터뷰에 응한 훈련교관은 아부 살만 베랄루스라는 인물이다. “말하마 택티컬(Malhama Tactical)의 사령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살만 베랄루스는 HTS 소속이 아니다. ‘말하마’는 전쟁, 전투를 의미하는 아랍어다. 그는 말하마 택티컬에 대해 “2013년 이래 (시리아) 반군들에게 전쟁술과 전장 응급처치 관련 훈련을 제공한다”고 트위터에 소개하고 있다.

이번 HTS 엘리트 부대의 공격과 관련, 살만 베랄루스는 지난 6일 “곧 엄청난 소식을 전하겠다. 기대하시라”며 임박한 작전을 암시하는 트윗을 올린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몰디브 출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을 훈련시키는 중”(9일), “로켓(RPG) 발사 전문과정을 시작했다”(12일), “PKM 기관총 전문사격 훈련을 마쳐 수료증을 주려 한다”(7일) 등의 트윗을 통해 말하마 택티컬의 활동상을 적극 알리고 있다. 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투와 훈련 소식 홍보에 집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리아의 반군 무장단체들을 훈련시켜 수익을 창출하는 게 이 단체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시리아 전쟁을 밀착 관찰해 온 전문가들은 말하마 택티컬을 ‘지하디 진영 최초의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ㆍPMC)’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7월25일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벌어진 시리아 남부에서 포연이 솟아오르고 있다. 시리아 전쟁은 ‘지하디 민간군사기업’이 처음으로 활동을 본격화한 무대라는 점에서, ‘전쟁 민영화’ 현상을 가장 뚜렷한 형태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7월25일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벌어진 시리아 남부에서 포연이 솟아오르고 있다. 시리아 전쟁은 ‘지하디 민간군사기업’이 처음으로 활동을 본격화한 무대라는 점에서, ‘전쟁 민영화’ 현상을 가장 뚜렷한 형태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말하마 텍티컬은 2016년 5월 우즈베크계 러시아인 아부 로피크가 ‘군사훈련 및 컨설팅 그룹’을 표방하며 출범시켰다. 노르웨이 언론 ‘베르덴스 강’이 2015년 8월10일 조명한 아부 로피크 관련 기사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러시아로 이주해 러시아 공수부대에서 군 생활을 마친 전직 군인이다. 2013년 시리아로 ‘지하디 여행’을 떠났고, 시리아의 알카에다 조직 최초 버전인 ‘알 누스라’에 합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조직에서 나와 ‘군사훈련 컨설팅 비즈니스’를 시작한 그는 2017년 2월 러시아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로피크가 숨진 뒤 말하마 택티컬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살만 베랄루스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인 그는 지난해 9월 ‘급진주의 모니터 유럽의 눈(EER)’과의 인터뷰에서 “반군들에게 고도의 군사기술이 좀 더 요구됨에 따라 말하마 택티컬을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들이 훈련시킨 그룹의 면면을 보면 이념적으로든, 충성 맹세 측면에서든 알카에다 계열 지하디 조직이면서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이 주류인 조직이 많다. 예컨대 중국 신장 위구르족이 다수 참여한 ‘투르키스탄 이슬람당(TIP)’이라든가, 체첸인들의 ‘아즈나드 알 카브카즈(AK)’,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 위주의 ‘안소룰 지하드’ 등이다.

말하마 택티컬은 ‘훈련교관 임무’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다. 지난 2년여간 직접 참여했던 전투도 많다. 2016년 지하디스트로 분류되는 자이쉬 알 파타의 시리아 정부 공격이 그랬고, 2016년 가을 알레포 전투에서는 다히얏 알-아사드 구역과 미냔 디스트릭트 등 일부 구역을 정부군한테서 탈환하기도 했다.

살만 베랄루스는 분쟁 취재 독립 매체인 ‘포퓰러 프런트’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HTS와 함께 싸우고 그들을 훈련시킨다”고 말했다. 동시에 “지하디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가 보기에 그들(HTS)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러시아에 대항하는 조직”이라며 “우리의 타깃은 (아사드 정권뿐 아니라)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 용병들”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이들이 시리아 땅에서 대(對) 러시아 전투를 벌이는 상황은 시리아 전쟁의 국제화 수준을 다시 한번 잘 보여준다. 말하마 택티컬의 등장은 ‘친 아사드 진영 러시아군과 용병들 대 반 아사드 진영 러시아 용병’ 간의 싸움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장단체들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시리아 전쟁은 지하디 진영에서도 PMC가 등장한 첫 무대이자, ‘전쟁 민영화(Privatizing of War)’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전쟁터로 기록될지 모른다.

2000년대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미국 용병업체 ‘블랙워터’의 직원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간군사기업으로 언급되는 블랙워터 소속 용병들은 ‘전쟁 산업을 실행하는 그림자 전사’로 불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대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미국 용병업체 ‘블랙워터’의 직원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간군사기업으로 언급되는 블랙워터 소속 용병들은 ‘전쟁 산업을 실행하는 그림자 전사’로 불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살만 베랄루스의 말이 암시하듯 말하마 택티컬이 시리아전에 관여하는 유일한 러시아 PMC는 아니다. 이미 2013년 ‘슬라보 부대’라는 업체 용병들이 친 아사드 진영에서 전쟁에 가담한 바 있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러시아 용병의 시리아전 참여가 본격화한 건 2015년 9월 러시아가 시리아전에 공식 개입한 이후다. 러시아의 대표적 PMC인 와그너(Wagner)의 소속 용병들이 이 곳에 다수 주둔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지난 5일 러시아 언론 ‘노바야가제타’는 “4일 시리아 동부 데르에조르 지방에 가해진 폭격으로 러시아 PMC인 와그너 소속 용병이 사망했다”고 전한 바 있다. 와그너 대표 드미트리 우트킨은 러시아 군 정보국 출신으로 전해졌는데, 지난 9일 러시아 국방부 고위 관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와그너 용병들은 러시아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진영에도 가담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들어 지난해 와그너를 제재명단에 올렸다.

그동안 ‘전쟁 민영화’를 주도한 PMC로는 주로 미국 회사들이 거론됐다. 2007년 9월 16일 이라크 바그다드 니수르 광장에서 군중을 향해 무차별 발포했던 미국 용병업체 블랙워터(Black Water)가 대표적이다. 미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 폴리시가 지난해 2월 관련 기사에서 말하마 택티컬을 “지하드계의 블랙워터”라고 표현한 것도 그만큼 블랙워터가 PMC 업계의 대명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니수르 광장 학살’ 사건으로 이라크에서 추방된 블랙워터의 설립자 에릭 프린스는 이후 홍콩 베이스의 ‘프런티어서비스그룹’을 설립했고, 주로 아프리카 내 중국 비즈니스 보안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블랙워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며, 일각에선 그의 프런티어서비스그룹을 두고 ‘중국판 블랙워터’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말하마 택티컬도 중국으로의 확장세를 언급한 적이 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제임스 타운’은 지난해 11월 27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17년 8월 말하마 택티컬은 중국 위구르족 (지하디) 전사들을 더 훈련시켜서 신장 지방으로 조직적 확장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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