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권모술수로 왕이 되려 한 아비멜렉
1866년 구스타프 도레 작. 머리에 맷돌을 맞고 쓰러진 아비멜렉의 모습.

듣기만 해도 욕을 부르는 사람. 보기만 해도 주먹을 부르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더 심한 욕도 있지만 젊잖게 이렇게 별명을 붙여보자. ‘개망나니’. 성경에도 그렇게 욕 얻어먹을 만한 사람이 나온다. 성경이 워낙 방대하여 그런 인간이 한둘은 아니지만, 그 중에 아비멜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비멜렉도 4명이나 된다. 이름은 나쁘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비’는 ‘나의 아버지’, ‘멜렉’은 ‘왕’이란 뜻이니, ‘나의 아버지는 왕’이란 뜻의 이름이다. 그러니 자기는 ‘왕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는 역설이 숨겨져 있다. 아비멜렉의 아버지 기드온은 정말로 왕이 될 뻔했지만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존경을 크게 받아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기드온은 기특한 말을 남기고 왕이 되기를 거부했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사사기 8:23)

반면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누가 추대하지도 않았고 존경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헤치고 괴롭혔던, 아주 못된 놈이었다.

본래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아버지 기드온의 말대로 그 시대에는 오직 하나님만 왕으로 여기며 살아야 했던 완전 신정정치의 때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계속해서 이웃 나라들처럼 인간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드온은 사실 하나님 맘에 쏙 드는 발언을 하며 왕이 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이웃 왕국이 하던 왕권 세습을 비판하였으며,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국가 건립 이념도 잘 천명하였다.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지만, 사실 영리한 선택이었다. 누구든지 과도기에 일을 맡으면 잘 누리지 못하고 고생만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첫 왕인 사울은 매우 불우한 일생을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왕이 되고 싶어 발버둥을 쳤던 아비멜렉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기 위해 나쁜 짓을 많이도 저질렀다. 그 첫 정치 행보는 ‘이간질’이었다. 떳떳하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간질 시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아비멜렉은 자기 외가 친척들이 살던 세겜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 70명인데 그들 모두가 당신들을 다스리는 것과 나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중 어느 것이 좋으냐?” 아버지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아들들도 많았다. 그 중 아비멜렉의 어머니가 바로 세겜 출신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기 어머니 고향으로 가서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다. 친인척 중심의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질 낮은 패거리 정치를 했다.

사실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기드온의 첩이었다. 이것으로 아비멜렉이 자라온 환경과 내면을 좀 엿볼 수 있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며, 지도자의 첩을 두었던 세겜 사람들도 마찬가지 의식을 지녔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선동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그러하듯, 불법과 편법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는 깊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끼리끼리 뭉쳐서 패거리 정치를 하는 모습, 사실 지금의 사회에도 볼 수 있는 작태다.

이간질에 이어 아비멜렉은 저질 폭력을 동원했다. 이방신의 물질로 폭력배를 동원하여 자기를 따르게 한 것이다. 세겜 사람들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일흔 냥을 꺼내어 아비멜렉에게 주니,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9:4) 아비멜렉은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정치인들이 부도덕한 사이비 단체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는 격이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는 신앙도 도덕도 버리는 꼴이다.

자, 아비멜렉이 이 폭력배들과 한 짓은, 자기 형제 70명을 한 자리에서 살육을 해버린 것이었다. 막내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개망나니는 결국 이렇게 해서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3년 동안 다스린다. 3이라는 숫자에 주목하자. 구약성경의 수는 대부분 상징일 경우가 많은데, 보통 충분한 기간을 나타낼 때는 4 혹은 4의 배수를 쓴다. 3년이라는 것은 뭔가 모자라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이 악령을 세겜 사람들에게 보내어 그들과 아비멜렉 사이에 이간질이 일어나게 했다. 세겜이 배반을 한 것이다. 결국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었다. 자기가 선동해서 사람들 사이에 이간질을 하고 형제와 가족을 배반하더니, 결국 자기도 이간질과 배반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문장이 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포악한 죄과를 갚으셨는데, “자기의 형제들을 죽인 피 값을 아비멜렉에게, 그리고 형제들을 죽이도록 아비멜렉을 도운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갚으신 것이다.”(9:24) 아비멜렉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을 부정하게 도와 득을 보려고 했던 이들도 다 같이 하나님께 징벌을 당했다. 성경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생각해 볼 일이다. 나쁜 일을 주도한 자뿐만 아니라, 나쁜 일에 조력하는 이들도 하늘이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인은 새겨 보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그 징벌을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으셨는지 보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가서 싸워서는 다 죽이고 성읍을 무너뜨렸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겜 지도자들이 어느 신전에 가서 숨자, 지하 동굴 앞에 불을 피워 그 안의 1,000명을 다 죽여 버린다. 살육에 광기가 더해졌는지, 아비멜렉은 세겜에 이어 데베스라는 곳도 치러가서 또 점령을 한다. 사람들이 망대 위에 올라가 숨자, 또 그 아래에 불을 지른다. 완전히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가 된다. 살육도 가장 살벌하게 한다. 요사이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같다. 동시에 탐욕과 야욕에 미쳐버린 여느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1884년 찰스 포스터 작. 한 여인이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맷돌을 던지고 있다.

다행히 여기가 끝이었다. 아비멜렉도 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여 그만 죽는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그대로였다. 아비멜렉의 마지막 순간은 굴욕이었다. 불을 지르다가, 위에서 여인이 떨어뜨린 맷돌에 머리가 깨어져 쓰러졌다. 매우 상징적인 묘사다. 지금의 여성분들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극히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여자가 아주 비천하고 미약한 존재로 여겨졌다. 장렬한 전투 끝에 칼로 죽은 것도 아니고, 여자가 위에서 던진 주방기구(?)에 그만 두개골이 부서진 것이었다. 거칠 것 없던 마초(macho)의 미치광이 불길이, 어느 여인의 이 한방으로 단숨에 꺼졌다.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가 버린 것이다. 아비멜렉은 그 수치를 견디지 못해서 병사를 불러다가 쓰러져 있는 자신을 찌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병사는 진짜로 그를 찔러버렸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이나 인권을 유린하고 폭력마저 일삼으면 반드시 되갚음을 당하기 마련이다.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도 이를 증언한다. 부당하게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괴롭히는 것. 부당한 거래에 끼어들어 이득을 보려는 것. 도모한 자도 거기에 편승한 자도 모두 수치스러운 결말을 맞는다. 이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다.”(9:56-57)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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