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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제국 대형로펌, 서열화된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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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제국 대형로펌, 서열화된 로스쿨

입력
2018.11.17 09:00
수정
2018.11.17 19: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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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빅5 로펌 신규 변호사 전수조사]

신입 322명 중 지방 로스쿨 출신은 고작 9명 뿐

SKY 졸업자 77%… 서울 소재학교 ‘그들만의 리그’

올해로 도입 10년 맞은 로스쿨 ‘고시학원’ 전락 위기

직장 경력자 줄고 저연령화 …다양한 법조인 양성 못해

법조인이 되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예비법조인의 꿈. 그 꿈을 실현하는 관문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와 교육과정, 그리고 취업과정은 정의로울까. 로스쿨 도입 10년. 그 그늘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법조인이 되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예비법조인의 꿈. 그 꿈을 실현하는 관문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와 교육과정, 그리고 취업과정은 정의로울까. 로스쿨 도입 10년. 그 그늘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2009년 출범해 도입 10년을 맞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로펌 업계의 학벌 위주 구조를 고착화하고, 다양한 배경과 경력을 지닌 법률가 양성에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유명 대형로펌 취업을 사실상 독차지했으며, 대형로펌 일자리로부터 소외된 지방 로스쿨 재학생들은 하나둘 강의실을 떠나 변호사시험(변시) 고득점을 위해 서울 신림동과 신촌 학원가로 회귀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최근 3년(2016~2018년)간 국내 대형로펌 5곳(김앤장ㆍ광장ㆍ태평양ㆍ세종ㆍ화우)에 취업한 변호사 322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방대 로스쿨 졸업자는 9명(2.8%)에 불과했다. 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등 이른바 SKY 로스쿨 출신이 249명(77.3%)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나머지(64명ㆍ19.9%) 신규 변호사 자리도 성균관대ㆍ이화여대ㆍ중앙대ㆍ경희대ㆍ한양대ㆍ서강대ㆍ한국외대 등 서울 시내 로스쿨 졸업자들로 채워졌으며, 수도권 로스쿨 졸업자는 1명도 대형로펌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최근 3년(2016~2018년)간 국내 대형로펌 5곳(김앤장ㆍ광장ㆍ태평양ㆍ세종ㆍ화우)에 취업한 변호사 322명의 출신 대학과 로스쿨을 전수조사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한국일보가 최근 3년(2016~2018년)간 국내 대형로펌 5곳(김앤장ㆍ광장ㆍ태평양ㆍ세종ㆍ화우)에 취업한 변호사 322명의 출신 대학과 로스쿨을 전수조사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대형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출신 대학교(졸업 학부)를 살펴봐도 이 같은 흐름은 동일하다. 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졸업 변호사가 256명(80.0%)에 달했고, 지방대(포항공대ㆍ카이스트 제외) 졸업자는 6명(1.9%)으로 해외 대학교 졸업자(15명ㆍ4.7%)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바늘구멍을 뚫고 대형로펌에 들어간 지방대 로스쿨 졸업자(9명)도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한다. 이들 대부분은 취업전 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했거나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감으로 재직한 이력을 지녔다. 사실상 지방대 로스쿨을 나온 무경력자 변호사가 대형로펌의 문턱을 밟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이다. 특정 대학, 유명 로스쿨을 나온 이들에게만 활짝 열린 대형로펌의 좁은 문. 사회 여러 분야의 인재에게 전문화된 교육을 시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 실무가를 양성하겠다는 로스쿨 제도의 취지가 퇴색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로스쿨 서열화는 올해 4월 법무부가 공개한 ‘전국 25개 로스쿨별 변호사시험 합격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월 치러진 제7회 변호사시험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출신은 70%가 넘는 합격률을 보였다. 반면 원광대(24.63%), 전북대(27.43%), 제주대(28.41%)는 30%를 넘지 못했고 동아대(30.18%) 충북대(31.62%) 로스쿨 출신도 전체 평균 합격률 49.35%에 크게 못 미쳤다. 합격률에 따른 서열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공고해지면서 ‘로스쿨 반수열풍’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 법무부가 공개한 제1~7회 변호사시험 응시자 수, 합격자, 합격률. 그래픽=신동준 기자
지난 4월 법무부가 공개한 제1~7회 변호사시험 응시자 수, 합격자, 합격률. 그래픽=신동준 기자

로스쿨 출신 여덟 번째 합격자를 배출할 변시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0%대 합격률과 싸우는 수험생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본보는 로스쿨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찾기 위해 로스쿨 전ㆍ현직 교수와 재학생, 휴학생, 중퇴자, 졸업생, 로스쿨 협의회 관계자, 로펌 관계자 등 30여명을 만나고 대면ㆍ온라인 인터뷰했다. 로스쿨 교육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강의실을 찾고 취업시장에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지 확인하려고 최근 3년간 대형로펌 5곳 신입 변호사의 면면을 분석했다.

◇고시학원이 된 로스쿨

유명 로스쿨을 나와야 대형로펌에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구도가 지난 10년간 굳어지면서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한 지방 로스쿨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변시에서 점수를 더 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이에 로스쿨 강의실은 고시학원과 다름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지방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국제법 교수 연구실에서 교수와 학생 2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국제해양법 분야를 연구해온 교수는 과거 수강생 수십 명에게 국제법적 이슈와 각국의 법적 대응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날은 강의실 대신 자신의 연구실에서 학생들이 작성한 변시 모의고사 답안지를 펼쳐놓고 문제 해설을 했다. “이런 유형이 시험에 잘 나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40%대까지 떨어진 변시 합격률이 바꿔놓은 풍경이다.

교수에게 ‘특별과외’를 받는 로스쿨생들은 그나마 변시에 대한 우려가 덜한 학생들이다. 헌법ㆍ민법ㆍ형법 등 변시 기본과목에서 안정적인 점수를 받고 있음은 물론 선택과목인 국제법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자랑한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제1회 시험 당시 87.15%에 달했던 변시 합격률이 올해(제7회) 49.35%까지 떨어지며 로스쿨은 고시학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기초법학 실종 사태에 대한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3년짜리 단기 과정의 로스쿨 제도에서 간략한 요약서를 찾게 되는 심정을 이해하지만 의뢰인에게 탁월한 법지식과 경험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예비 법조인이 메모장 분량의 책으로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형근 교수 제공.
기초법학 실종 사태에 대한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3년짜리 단기 과정의 로스쿨 제도에서 간략한 요약서를 찾게 되는 심정을 이해하지만 의뢰인에게 탁월한 법지식과 경험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예비 법조인이 메모장 분량의 책으로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형근 교수 제공.

정형근 경희대 교수는 사법시험 공부하며 본 법학교과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꼼꼼히 메모한 흔적이 보인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무실에 가보면 고시 공부할 때 본 교과서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변호사 시절 교과서를 자주 펴보았죠. 세월이 흘러도 법의 정신과 내용을 충실하게 익혀야 하는 필요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정형근 교수 제공.
정형근 경희대 교수는 사법시험 공부하며 본 법학교과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꼼꼼히 메모한 흔적이 보인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무실에 가보면 고시 공부할 때 본 교과서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변호사 시절 교과서를 자주 펴보았죠. 세월이 흘러도 법의 정신과 내용을 충실하게 익혀야 하는 필요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정형근 교수 제공.

◇기초법학 사라져가는 로스쿨

“로스쿨 시대의 표준적 교과서는 단언컨대 가장 얇은 것이다. 변호사시험을 위해서는 가장 얇은 교과서 한 권과 가장 얇은 최근 3개년 판례정리집 한 권만 보면 충분하고 그 이상 보면 낙방한다. 판례는 이해할 필요가 없고 이해하면 오히려 손해다. 판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암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변호사는 판례의 결론만 알면 되는 것이다.”

어느 로스쿨생의 푸념이 아니다. 이용식 서울대 로스쿨 형법교수의 형법총론 서문이다. 의학과 함께 사람의 생명까지 다루는 학문인 법학은 오랜 기간 두꺼운 법서와 끈질긴 고민의 시간으로 학습의 깊이를 짐작게 했다. 그러나 로스쿨생 책상 위엔 법서 대신 수험서가 놓였고, 그조차 복사본일 때가 많다. 기초법학 실종 사태에 대한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3년짜리 단기 과정의 로스쿨 제도에서 간략한 요약서를 찾게 되는 심정을 이해하지만 의뢰인에게 탁월한 법지식과 경험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예비 법조인이 메모장 분량의 책으로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무실에 가보면 고시 공부할 때 본 교과서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변호사 시절 교과서를 자주 펴보았죠. 세월이 흘러도 법의 정신과 내용을 충실하게 익혀야 하는 필요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기초법학이 설 곳 없으니 선택과목 강의도 ‘맞춤형’이 된다. 제주대 로스쿨에서 중국법을 강의하는 전령현 기금교수는 “학생들이 헌법 민법 형법 등 변호사시험 기본과목을 익히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끼다 보니 선택과목에 집중하기는 힘든 실정”이라며 “중국법을 강의할 때 기본과목과 연관성을 짚어가며 수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출발선 다른 로스쿨, 학원만 호황

법학 이외 전공자(비법학사)가 느끼는 고충도 적지 않다. 법학 전공자와 동일한 교과과정을 밟는 비법학사들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학원가를 찾는다.

서울 상위권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지방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정수목(44ㆍ가명)씨는 입학부터 벌어진 로스쿨생들의 학습수준 편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학사(법대 졸업자)들도 버거운 로스쿨 커리큘럼을 비법학사들이 소화해내기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로스쿨에서 3년 간 배우는 공부량은 과거 4년치 법대 과정에 사법시험 합격자가 사법연수원에서 배우는 2년치 실무과목까지 6년 과정을 망라합니다. 갓 법대를 졸업한 사람이 아닌 이상 매우 버겁죠.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각이다 보니 교수조차 수업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고민이 큽니다. 입학 전 예습을 해온 사람들에 맞추기도 하고, 아예 초심자 기준으로 강의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합격률에 울고 웃는 로스쿨은 입시 때부터 ‘사법시험 1차 합격’ 경험자를 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공부한 장수생 대부분이 로스쿨로 유입되면서 합격률을 보장할 요소가 줄어든 셈이다.

강의실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로스쿨생을 신림동으로 이끈다. 통상 2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는 실무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사실상 3학기 만에 법학이론을 통달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법학사들은 이미 배운 내용이니 실무수업에 초점을 맞추고 연습하지만 비법학사들은 기본과목조차 벅차니 실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 재학생은 수업 마치고 신림동 학원에 갑니다. 지방 로스쿨 재학생은 수업 시간표를 월ㆍ화요일 또는 월ㆍ화ㆍ수요일로 몰아놓고 서울에서 4~5일간 지내며 학원 진도를 나가요. 그렇다고 신림동을 오간 로스쿨 학생들이 변시에서 꼭 좋은 결과를 받는 건 아닙니다.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운데 공부량은 늘어나니 자기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부족해 성적은 오르지 않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출발선이 다른 법학수준보다 로스쿨생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강의에 소홀한 일부 교수들이다. 로스쿨생들은 최신 판례나 개정법률에 대한 업데이트가 안 돼 수업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고 증언한다. 사법시험을 다수 경험한 이른바 ‘사법시험 장수생’이 수업 시간에 열의가 부족한 교수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경력을 지닌 변호사의 배출. 로스쿨의 도입 취지는 이래저래 무너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양한 경력을 지닌 변호사의 배출. 로스쿨의 도입 취지는 이래저래 무너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력자 줄고 졸업자 늘며 저연령화 심화

최근 직장 경력을 지닌 로스쿨 입학생이 줄고 저연령화가 뚜렷해지는 점도 다양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로스쿨 도입 초기에는 학부를 졸업한 뒤 일정 기간 직장을 다니거나 전문직역에서 근무하다 로스쿨로 유입된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무역회사 근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 기자 출신 변호사 등 자신만의 이력과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전문화할 소지가 컸다. 그러나 5~7기로 갈수록 경력자는 줄고 대학교 졸업 직후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람이 늘었다. 로스쿨 관계자는 “입시에 대한 공정성 요구가 높다 보니 수치화된 성적 등 정량지표를 앞세우게 됐다”고 털어놨다. 로스쿨 입학 과정에선 법학적성시험(LEETㆍ리트)과 영어 성적, 대학교 학점 등이 지표가 되는데, 갓 대학교를 졸업한 응시자가 유리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응시자는 최근 시험 출제 경향에 익숙하고 로스쿨 입시에만 몰두하니 리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습니다. 반면 한참 전 졸업하고 사회에서 경력을 쌓은 경우는 시험에 대한 감이 떨어졌고 주경야독으로 입시 준비를 하니 성적이 낮은 편입니다.”

경력자의 로스쿨 진입을 가로막는 변호사 시장의 나이 장벽도 수치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전수조사에 따르면 대형로펌 다섯 곳의 취업자 평균연령은 30.17세로 조사됐다. 로스쿨 입학 과정에서 나타난 저연령화가 졸업 후에도 고스란히 재연된 것이다. 다양한 경력을 지닌 변호사의 배출. 로스쿨의 도입 취지는 이래저래 무너져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대형로펌 취업 변호사들의 출신 대학과 로스쿨에 대한 전수조사 내용은 인터랙티브 그래픽(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lawfir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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