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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25일 연속 일하다 숨졌는데…” 건설노조, 국방부 앞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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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25일 연속 일하다 숨졌는데…” 건설노조, 국방부 앞 농성

입력
2018.11.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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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사망조합원 보상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김종길씨의 아내 우종옥씨(가운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승엽 기자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사망조합원 보상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김종길씨의 아내 우종옥씨(가운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승엽 기자

”오랜만에 우리 딸 보겠네. 부럽다, 부러워. 조심히 잘 다녀와“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 8월, 에어컨도 고장난 굴삭기에서 25일 연속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고 김종길(51)씨가 사고 전날 딸을 보러 간다는 아내 우종옥(52)씨에게 전화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김씨는 25년 경력의 굴삭기 운전기사로, 3월부터 공군 17비행전투단 청주공항 군전용 활주로 개선 공사 현장에서 근무했다. 김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아내의 생활비와 의학대학원을 다니는 딸의 학비 마련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청주에서 홀로 생활하던 중 변을 당했다. 우씨는 ”일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편이었다. 미국에서 전투기가 들어온다고 활주로를 빨리 완성해 공사기한을 맞춰야 한다며 하루에 10시간, 12시간씩 근무했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종길씨의 사망사고에 대해 국방부와 한진중공업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이어 국방부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건설노조는 김씨의 사망사고가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인재(人災)라고 지적했다. 전민호 건설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김씨는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하루 9시간, 일주일 63시간 노동하다 사망했다”며 “사건 당일은 일요일이라 다른 동료 노동자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실족해, 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지난 8월 12일 오전 9시 50분쯤 작업 현장이던 공항 내 개활지에서 굴삭기 밖으로 떨어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결과를 토대로 사망원인을 실족사로 추정했지만 구체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유족과 노조측은 폭염 속 과로에 의한 실족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장을 직접 방문했던 이창권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원주굴삭기지회장은 “장비에서 내리려다가 실족한 것으로 보인다. 개활지가 평평하고 굴삭기 운전석 높이가 1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정상적인 상태라면 실족할 리 없다”고 전했다. 폭염 속 연일 장시간 노동을 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실족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휴일도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 작업일지에 따르면 김씨는 공사현장에서 일한 154일 동안 13일밖에 쉬지 못했다. 게다가 사건당일까지 25일 연속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권 지회장은 “건설기계 운전자도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무리한 노동조건을 현장에서 쫓겨날까 봐 시공사의 강압에 못 이겨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주한 공사인데도 산업안전공단의 폭염 관리 지침조차 무시한 채 작업을 강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발주 건축·토목 공사는 더위가 심한 낮 시간대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덜 더운 시간대에 일하거나 작업을 며칠 연기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린 지 10일 만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김씨가 사용하던 굴삭기의 에어컨은 5일째 고장 난 상태였으며, 먼지 때문에 근무 중 창문도 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금철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은 ”민간이 아니라 공공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발주처인 국방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노조는 건설업에 대해 주 52시간 상한 근로제의 예외를 적용할 경우 김씨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건설업계는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는 건설업의 특성상 주 52시간 상한 근로제가 불합리하다며 근로시간 단축 특례업종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의견을 반영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권,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건설업에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허용하고 탄력근로제 운영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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