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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동 성추행... 요양병원 치료사 “우린 5년짜리 소모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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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동 성추행... 요양병원 치료사 “우린 5년짜리 소모품”

입력
2018.11.15 04:40
수정
2018.11.15 08:3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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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부상이 많아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는 작업치료사.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손목 부상이 많아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는 작업치료사.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서울 금천구 한 요양병원 작업치료사(환자의 독립적인 일생생활 가능하도록 치료하는 의료기사) 강모(28)씨는 지난달부터 손목이 너무 아파 병원을 수시로 찾고 있다. 의사의 진단은 피아니스트나 골프 선수처럼 손목을 과도하게 쓰는 이들이 자주 걸리는 손목건초염(드퀘드벵 증후군). 하루 적게는 13번, 많게는 16번까지 한 번에 30분씩 고령이나 장애가 있는 환자 몸을 주무르는 반복작업을 하면서 손목에 탈이 난 것이다. ‘일을 좀 줄여줄 수 없느냐’고 병원에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아플 때마다 연차휴가를 썼던 강씨는 결국 병가휴가를 냈다.

요양병원 작업치료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고강도 노동은 기본, 중간관리자 등으로부터 부당한 갑(甲)질 피해는 다반사다. 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도 더해진다.

치료사들 사이에서는 요즘 ‘5년까지 버티면 용하다’는 말이 유행이다. 워낙 일이 고된 탓에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 육체적으로 버티지 못한다는 일종의 자조다. 작업치료사 심모(33)씨는 몇 해 전 치료 중 손가락이 골절됐고, 윤모(27)씨는 양손 손목을 모두 다쳐 일을 아예 그만뒀다. 실제 서울 A병원의 경우 5~7년 전 입사한 치료사 43명 중 5명만 남아있을 정도다. 그나마 버티는 치료사들도 만성적인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 방광염 등을 호소하고 있다.

작업치료사 한 직장 근속 기간 = 그래픽 강준구 기자
작업치료사 한 직장 근속 기간 = 그래픽 강준구 기자

병원 내 부조리한 관행 역시 치료사들을 멍들게 한다. 영등포구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박모(30)씨는 “젊은 여성 치료사들의 머리모양이나 슬리퍼 색까지 하나하나 규제했고, 유니폼 사이즈를 정해놓고 여기에 맞게 몸매를 맞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폭로했다. 구로구의 요양병원에서는 신입교육 때 치료사들이 숙지해야 할 필수사항 1번에 ‘부장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적은 뒤 이를 강조하면서 반발을 샀다.

성희롱 성추행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리치료사 김모씨는 몇 해 전 간부급 직원에게 “얘 엉덩이 커진 것 봐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환자 앞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자 “(김씨는) 남자친구랑 매일 키스하고 다녀서 면역력이 높다”고 모욕하기도 했다. 몸에 달라붙는 스키니바지를 회식 자리에 입고 오면 “그런 건 OO(남자 동기)랑 잘 때나 입어, 벗기기 쉬우니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다.

치료사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병원은 곧바로 불이익을 가한다. 임미선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 지부장은 “’휴게실을 달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병원 측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시위 사진을 찍어 조합원 부모 집에 보냈다”며 “퇴사한 조합원이 이직한 병원까지 찾아가 ‘해고하라’고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김슬기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부회장은 “요양병원은 일반 병원에 비해 치료의 ‘질’ 보다는 ‘건 수’를 중요시하는 곳이 많아 작업치료사들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장님을 사랑해야 한다'가 1번 항목인 신입 치료사 교육 필기내용.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부장님을 사랑해야 한다'가 1번 항목인 신입 치료사 교육 필기내용.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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