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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기 근로자 전용주택

입력
2018.11.14 18:30
수정
2018.11.15 17: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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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대상, 같은 내용이라도 이름 붙이기에 따라 인상은 물론, 실질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쯤 될 것이다. 이름이 인식에 주는 영향을 가장 파격적으로 실증한 경우로 프랑스 화가이자 다다이즘의 주요 예술가로 꼽히는 마르셸 뒤샹(1887~1968)이 1917년 뉴욕 그랜드센트럴갤러리에 전시한 ‘샘(Fountain)’이라는 작품을 꼽을 수 있겠다. 그건 전혀 가공하지 않은 남자 소변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가가 거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달고 미술관에 전시하자 예술작품이 됐다.

□ 실생활에서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이름의 문제는 수두룩하다. 귀한 아들이란 뜻에서 ‘귀남(貴男)’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성이 방씨인 건 우스개 같은 경우겠지만, 요즘 미혼여성이 ‘분녀’ 같은 턱없는 옛날식 이름을 가졌다면 부득이 개명을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뿐 아니다. 지난해엔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명이 동문들의 오랜 요구에 따라 마침내 용암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바뀌기 전 교명은 대변초등학교였다.

□ 정부 주택정책에서도 홍보 의욕 과잉의 결과 아닐까 싶은 나쁜 이름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국토교통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12일 공동발표한 ‘일자리 연계형 지원주택 방안’ 얘기다. 두 부처 장관들이 직접 나와 악수하고 사진까지 찍는 거창한 업무협약(MOU) 체결식까지 했다. 골자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정부가 2022년까지 공급하기로 했던 행복주택과 매입ㆍ전세임대 52만호 중 4만호를 따로 떼어내 중기 근로자 전용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 문제는 정책 단계의 편의적 명칭임을 감안해도, 해당 주택들을 ‘중기 근로자 전용주택 특화단지’니 ‘산단형 행복주택’ 등으로 이름 붙인 점이다. 그런 개념으로 아파트를 지으면 고작해야 근로자 사택 같은 수준이 되기 십상이고, 주택시장에서도 그렇게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저소득층’이니 ‘낮은 임대료’니 ‘입주 혜택’이니 하는 말들을 마구 갖다 붙여 임대주택을 비롯한 공공주택들의 이미지가 훼손됐다. 이젠 공연한 명칭 붙여 사택이라도 지어줄 듯 생색내기보다는, 관련 지역에 경쟁력 있는 민영아파트 건설을 지원하고, 대신 중기 근로자에게 조용히 입주 혜택을 강화해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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