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18> 외국인 노동자
정식으로 취업자격을 받아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58만명이 넘지만, 수당도 받지 못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 당하거나 컨테이너 같은 열악한 시설에서 기숙하는 등 불법적인 근로 환경에 처해 있는 근로자가 다수다. 고용허가제로 체류하는 경우 사용자의 허락이 없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어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고발하기 어렵고, 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용자에 대한 당국의 처벌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했는데 야근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경기도 한 목재 재활용공장에서 매일 톱밥과 싸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잠시드(34ㆍ가명)씨는 한국생활 1년 반 동안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 정부를 통해 인연을 맺은 회사에서 불법적인 근로 환경에 놓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비전문 외국인력의 단기 취업을 허락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비자(E-9)를 받고 한국에 왔다. 근로계약서도 썼지만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계약서에 적힌 하루 근로시간(9시간)과 월급(약 180만원)도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아프고 힘들어도 ‘내가 나오라고 하면 와서 일해’라는 상사의 말에 끌려 나오다시피 작업장에 와서 초과 근무를 했다. 상사가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자신이 노예로 느껴질 정도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12명)과 외국인(5명) 중 험한 작업은 외국인 몫이 되기 일쑤다.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일주일 가까이 하던 한국인 직원 한 명은 일하다가 말고 마스크를 벗어 던지더니 그 길로 집에 가버린 적도 있다. 잠시드씨는 집에 보낸다는 상사의 말에 몇 달을 버티며 하던 작업이었다. 수명이 다한 식탁 등 각종 나무 제품을 톱밥으로 가공하는 해당 공장에서는 모든 작업 과정이 험한 육체노동을 요구한다. 먼지가 많아 숨쉬기도 불편하다.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직원이 35명은 바뀐 것 같다”며 “하루 만에 그만 둔 한국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된 일을 맡아 했지만 합법적인 보상도 다 받지 못했던 것이다.

취업자격 체류외국인 업무 유형별 현황. 그래픽=송정근기자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 58만명… 단순기능 노동자 인권 사각지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수는 날로 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은 9월말 기준 총 58만8,158명으로, 2007년 말(41만1,272명)보다 17만명이 넘게 늘었다. 연구ㆍ교수 등 전문인력이 아닌 단순기능 인력만 보면 37만9,972명에서 53만9,660명으로 약 16만명이 증가했다. 양적 증가에도 그들의 근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시민단체 이주와인권연구소가 올해 실시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절반(49.7%)이 1주일에 ‘52시간 초과~68시간 이하’로 일했다. 68시간을 넘어선 경우도 7.7%를 차지했다. 특히 농ㆍ축산ㆍ어업의 1주일 평균 근로시간은 61.2시간으로 휴일은 0.7일에 불과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올랐지만 실제 월급이 올랐다는 노동자는 52.5%에 그쳤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한국 사회가 저임금 노동인력이 필요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됐고 이들이 국내 제조업과 농수산업 등을 밑에서 떠받치고 있다”며 “근로자로서 기본적인 법의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34만4,589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잠시드씨와 같이 고용허가제로 온 외국인(27만8,690명)들이나 재외동포로 방문취업 비자(H-2)를 받은 이들(24만3,905명)도 겪는 일이다. 특히 고용허가제로 온 외국인들은 한국어 장벽으로 소통이 어렵고 고향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경기도 한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 봔엿(24ㆍ가명)씨는 본드 냄새를 맡으며 작업하는 일상보다 추운 겨울을 기숙사에서 보내는 게 더 힘들다. 봔엿씨는 회사에서 제공한 컨테이너로 만든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살고 있다. 전기장판 외에는 난방 기구가 없는 기숙사에서 떨며 보낸 지난 겨울은 한국에서 2년 가까이 살면서 가장 힘들던 때다. 영하 15도까지도 내려가는 혹한에도 전기세가 많이 나올 까봐 회사 눈치를 보며 전기장판을 사용했다. 미얀마 노동자 인권을 위해 일하는 소모뚜 버마행동한국 활동가는 “좁은 공간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모여 살게 하거나 화장실이나 주방도 없는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며 “농업 쪽이 특히 주거 환경이 열악해 여성 노동자들이 성폭행 등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화재 위험도 크다. 지난해 말 부산 사상구 한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는 추위를 막기 위해 사용한 전기장판에서 불이 나 잠자던 베트남인 노동자 한 명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외국인 노동자 노동시간 분포 실태조사. 그래픽=송정근기자
◇임금 밀리고 병원 못 가고 회사도 못 옮기고

월 170만~190만원을 버는 그는 그 돈으로 고향에서 작은 가게를 열겠다는 목표로 올해 겨울도 버텨보려 하지만,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주지 않아 불안한 상황이다. 봔엿씨는 “회사에 물어봤지만 다른 이유를 대지 않고 내일 준다고만 말한다”고 했다. 2016년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68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에 어떻게 대항할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조사한 제조업 이주여성노동자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5.1%가 임금체불을 경험했는데, 이에 대한 대처법으로 39.7%가 ‘기다렸다’, 12.1%가 ‘모른다’고 답했다.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한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레젤(29ㆍ가명)씨는 못을 박고 빼는 일을 하다가 엄지손톱이 빠지고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에서도 일을 했다. 일이 많다면서 병원에 보내주지 않는 사장 때문이다. 인천 한 도금 공장에서 일하는 다할(29ㆍ가명)씨는 여러 차례 복통을 일으키면서 사장에게 ‘꾀병’으로 찍혔다. 다할씨는 35㎏짜리 금속을 들고 나르는 일 등을 반복하다 보니 고향 네팔에서 받은 수술 부위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물건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작업을 계속하면 병이 낫기 어렵다는 생각에 직장을 바꿔야겠다고 결정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주가 허락해줘야 이직을 할 수 있어서다. 그녀는 “처음에는 사장과 함께 병원도 가고 했는데 사업장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더니 이후로 꾀병이라고 치부하더라”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한 데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직장을 옮기겠다고 나설까 걱정돼 사장이 자신의 병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는 얘기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경기악화로 인해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더 팍팍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A외국인노동자상담센터 관계자는 “경기가 불황이면 외부인에 대한 경계는 강화되기 마련”라며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의 상황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향해 일자리를 빼앗으러 왔다는 말이 갈수록 더 나오는 것도 경기와 연관이 있다. 이율도 이주노동자노조 사무국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 자체가 3년 동안 싸게 쓸 수 있다고 해서인데, 한국인 노동자와 같은 조건이면 (내국인) 밥그릇 뺏는 일 아니냐’고 쓴 글도 있다”고 말했다. 사용주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정부가 먼저 권리 알려주고 소통창구 늘려야

활동가들은 외국인 노동자 스스로 방패를 만들 수 있는 교육부터 한국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몰라서 당하고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국시에는 물론 정기적으로 노동법 등에 관한 교육을 강화하자는 제안으로, 올해 이주노조 등 시민단체가 전국을 다니며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고 관련 문제를 알리는 ‘투투버스’ 활동을 진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지역별 외국인노동자상담센터를 고용노동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소모뚜 활동가는 “기계가 멈추면 손해를 보니까 밥도 기계 옆에서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장들도 있다”며 “법적으로 점심시간과 같은 휴게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걸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런 일들이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줄 창구도 보강돼야 한다. 각 지역 고용청이 근로감독을 나오지만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대화하기 보다는 사업주와의 면담만 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율도 국장은 “경찰조사를 받아도 통역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들은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도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사장에게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근무태만’ 누명을 썼다고 호소했다. 피해를 입은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조사를 나온 경찰이 사장 입장만 듣고는 ‘맞을 만 했다’는 식으로 사건을 몰아갔다는 주장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3D업종에서 일하기 때문에 작업 환경개선이 쉽지 않지만 우리 사회 전반적인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로 온 외국인 노동자를 ‘인력’으로만 보지 말고 민간 ‘외교관’으로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 교수는 “고용허가제는 협약을 맺은 아시아 16개국에 대해 경제 원조를 한다는 의미도 있고, 각국에 한국을 긍정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많아지는 계기도 된다”고 설명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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