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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스토리]프로 잡는 아마…반상에서 ‘하극상’은 무죄(?)다

입력
2018.11.10 13:00
수정
2018.11.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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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이루비 아마추어, 여자기성전서 전기 우승자인 김다영 3단 잡고 4강 진출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도 아마추어에 당해...인공지능 등장은 아마추어 기력 향상 기회

아마추어인 이루비(왼쪽) 선수가 지난 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8강전에서 전기대회 우승자인 김다영 3단에게 승리한 직후, 복기를 하고 있다. 바둑TV 캡처
아마추어인 이루비(왼쪽) 선수가 지난 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8강전에서 전기대회 우승자인 김다영 3단에게 승리한 직후, 복기를 하고 있다. 바둑TV 캡처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그 만큼, 승부를 예단하긴 어렵다. 이변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스포츠 경기에서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종종 일격을 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상(盤上)에서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사고는 이달 초에도 터졌다. 지난 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우승상금 3,000만원) 8강전에서 이루비(20) 아마추어가 전기대회 우승자인 김다영(20) 3단을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통합예선에서 강지수(29) 초단과 박지영(28) 초단을 잡은 데 이어 본선 16강에서 장혜령(21) 초단에게 승리한 이루비 아마추어가 디펜딩 챔피언인 김다영 3단마저 돌려 세웠다. 동갑내기 기사이지만 현재 두 선수의 객관적인 전력 차이는 크다. 김다영 3단은 현재 국내 여자바둑 랭킹 7위인 강자다. 이에 반해 이루비 선수는 올해 아마추어 대회인 내셔널리그에서도 8승9패로 평범한 성적을 거뒀다. 8강전 직후 “국내 랭킹 1위인 최정(22) 9단과의 대결을 벌이고 싶다”고 밝혔던 이루비 선수의 바람대로 4강 상대는 최정 9단으로 결정됐다.

이 보다 앞선 올해 6월에 불었던 아마추어 돌풍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11살의 최연소 나이로 ‘제23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에 참가한 김은지 아마추어는 예선에서 박태희(24) 2단과 김경은(15) 초단을 제치고 본선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차주예(19) 아마추어 역시 이 대회에서 김신영(27) 2단과 허서현(16) 초단을 물리치고 역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여자 국수전에서 아마추어가 본선에 진출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김은지와 차주예 아마추어에게 고개를 숙인 상대들이 프로무대에서도 이미 검증된 선수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에서 반란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

이창호(맨 오른쪽) 9단은 지난 2010년 열렸던 ‘제2회 비씨카드배’ 본선 1회전에서 당시 고교생인 한태희 연구생에게 불과 96수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한국기원 제공.
이창호(맨 오른쪽) 9단은 지난 2010년 열렸던 ‘제2회 비씨카드배’ 본선 1회전에서 당시 고교생인 한태희 연구생에게 불과 96수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한국기원 제공.

남자 바둑계에서 하극상은 더 많다. 한국 바둑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이창호 9단 역시 아마추어에게 격추됐던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이창호(43) 9단은 2010년 열렸던 ‘제2회 비씨카드배’ 본선 1회전에서 당시 고교생인 한태희 연구생에게 불과 96수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당시 이창호 9단이 국내 랭킹 1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이변이 분명했다. 아직도 이 대국은 한국바둑 역사상 최대 이변으로 각인돼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세돌(35) 9단도 아마추어 흑역사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이세돌 9단은 2011년 ‘제39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통합 예선에서 당시 16세로 연구생이었던 황재연 선수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 대회 본선 1회전에서 현재 국내 랭킹 3위인 김지석 9단에게 승리한 여세를 몰아 당시 역시 랭킹 1위였던 이세돌 9단까지 제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올해 1월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졌던 ‘제3기 미래의 별 신예최강전’ 결승전 당시 안정기(왼쪽) 3단이 박건호 2단에게 승리, 프로 입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올해 1월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졌던 ‘제3기 미래의 별 신예최강전’ 결승전 당시 안정기(왼쪽) 3단이 박건호 2단에게 승리, 프로 입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아마추어 시절, 프로바둑 기사 잡는 킬러로는 안정기(21) 4단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안정기 4단은 2015년 4월 열렸던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예선에서 당시 전영규 6단을 시작으로 중국 랭킹 41위였던 주위안하오 3단과 자국내 신인왕 출신의 랴오위안허 2단, 관록의 안조영 9단을 차례로 격파했다. 이어 예선 결승에선 당시 국내 랭킹 10위였던 김승재 6단까지 제압했다. 이어 본선 32강전에선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중국의 천야오예 9단에게도 승리, 세계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10회 대회 떄 부터 아마추어의 참가를 허용한 LG배 기왕전에서 통합예선을 통과한 아마추어는 안정기 4단이 처음이다. 기세를 탄 안정기 4단은 같은 해 열렸던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본선 32강에도 진출하며 한국기원의 포인트 입단 조건을 충족, 그 해 프로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도 향후 아마추어들의 반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바둑TV 해설위원인 이현욱(38) 8단은 “예전엔 연구생을 거쳐 도장에 들어가야만 공동 연구회 등을 통해 실력 향상까지 배가시킬 수 있다는 하나의 코스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요즘엔 일정 수준 이상의 기력을 보유한 아마추어들도 인터넷이나 인공지능(AI)으로 얼마든지 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선 프로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될 수 있다”고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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