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강소기업이 미래다] “사람은 결국 아날로그… 디지털과 연결 장치는 ‘펜’”

입력
2018.11.11 17:00
20면
0 0
이상규 네오랩컨버전스 대표가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스마트 펜을 비롯한 자사의 제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상규 네오랩컨버전스 대표가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스마트 펜을 비롯한 자사의 제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연필을 흔히 ‘생각을 담아내는 창’이라고들 얘기하죠.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그리고 쓰다 보면 복잡하던 문제도 나름 체계가 잡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크기가 제한적인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는 한계가 있죠. 종이 위에 실제로 쓸 수 있으면서 바로 디지털화가 가능한 스마트펜을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1997년 인터넷 서비스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했던 이상규(47) 네오랩컨버전스(이하 네오랩) 대표는 2009년 ‘이번엔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들겠다’며 네오랩을 창업했다.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디지털 입력도구’다. 다만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상용화한 ‘스타일러스 펜’이 아닌, 진짜 종이에 쓸 수 있는 펜을 목표로 잡았다. 이 대표는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화하더라도, 사람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오랩의 스마트펜 사용법. 네오랩컨버전스 홈페이지 캡처
네오랩의 스마트펜 사용법. 네오랩컨버전스 홈페이지 캡처

네오랩의 스마트펜에 사용된 핵심 기술은 ‘이미지 인식’ 기술이다. 네오랩이 ‘N코드’라 이름 붙인 마이크로코드(작은 패턴으로 이루어진 코드)가 빽빽하게 인쇄된 종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 펜촉 아래에 달린 카메라가 바코드를 찍듯이 코드를 인식한다. 펜 내부에 있는 듀얼코어 CPU가 필압센서 정보와 N코드 인식 정보(방향, 좌표 등)를 1초에 160번 처리하면,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마트폰 앱에서 종이에 쓴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종이를 바꿔 쓸 때마다 어떤 노트의 몇 번째 페이지인지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능은 이 대표가 강조하는 ‘생각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필기’를 구현하기 위한 결과다. 그는 “모든 노트와 페이지에 인쇄된 N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N코드는 앞으로 130년, 그 이상도 더 쓸 수 있을 만큼 계속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코드 분석 알고리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스스로 ‘디지털 네이티브’라 칭하는 이 대표가 직접 개발한 기술이다. CPU와 배터리를 소형화하는 과정은 이석주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하드웨어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마침 시기도 잘 맞았다. 이 대표는 “우리가 N코드를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 마침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고, 데이터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면서 “누구나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 덕을 많이 봤다”며 웃었다.

이상규 네오랩 대표가 30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자사 스마트 펜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상규 네오랩 대표가 30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자사 스마트 펜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혁신적인 기술이었지만, 시제품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 대표는 “스티브 잡스도 ‘손가락이 최고의 도구’라고 하는 마당에 웬 아날로그 펜이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제한된 액정화면이 아닌 넓은 종이 면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한 뒤 디지털로 옮겨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담 등 대면 서비스가 잦은 사람이나 아이디어 콘티를 짜야 하는 만화가,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네오랩은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만류를 뒤로 하고 개발을 거듭해 2011년 첫 시제품을 내놨고, 전자펜으로서의 상품화는 2013년에야 개시했다.

그러나 처음엔 ‘신기하다’는 반응 외엔 이렇다 할 시장의 반응은 없었다. 이 대표는 “이른바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그 때 많이 느꼈다”면서 “아무리 신기한 기술을 펜에 구겨 넣어도 정작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불편하면 팔리지 않더라”고 회상했다. 네오랩은 사람들의 펜 사용 패턴을 면밀하게 연구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결과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뚜껑을 여는 순간 펜이 자동으로 켜지게 됐고, 소비자가 펜 심을 취향에 따라 바꿔 쓸 수 있게 됐다.

제품 정식 판매 전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한 네오랩은 당초 목표 금액의 1,800%나 달성하며 우리나라보다 세계 시장에서 먼저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시장 반응을 먼저 보기 위해 시작했는데, 기존 유통망부터 노렸으면 이렇게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언론에 소개되자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태국, 일본과 호주에까지 판매가 이뤄졌다.

네오랩이 두 번째로 개발한 스마트펜 ‘M1’의 모습. 모양과 무게가 일반 펜과 똑같아 ‘자연스러운 필기 경험’을 제공한다. 네오랩컨버전스 홈페이지 캡처
네오랩이 두 번째로 개발한 스마트펜 ‘M1’의 모습. 모양과 무게가 일반 펜과 똑같아 ‘자연스러운 필기 경험’을 제공한다. 네오랩컨버전스 홈페이지 캡처

종이와 디지털이라는 소재로 주목 받기 시작한 후 네오랩은 매년 30% 넘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창업 직후 2,000만원대였던 매출은 2012년 100억원, 지난해에는 3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50% 정도가 수출에서 나온다. 2년 전부터는 마이크로코드 펜 시장 부동의 1위였던 한 스웨덴 회사를 뛰어넘어 세계 1위에 올랐다. 이 대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다이어리로 유명한 ‘몰스킨’ 등 전통 문구업체와의 협업 결과가 좋은 편”이라며 “폴더블폰 등장으로 조만간 대화면 디바이스 시대가 열리면, 그에 맞는 신제품 개발도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네오랩의 목표는 ‘인류 지식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이 대표는 사람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디지털화해 이를 데이터로 가공하고 공유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이 쌓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네오랩은 지방자치단체 및 아동센터 등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50년, 100년 뒤에는 이런 메모와 필기 습관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길 바란다”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많은 걸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enabler)’으로서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