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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 교인이 된 건 ‘선행’면허증을 딴 것… 장롱 면허가 되지 말아야

입력
2018.11.10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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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그리스도인, 삶의 지침과 행동 

1530년경 다니엘 호퍼 (Daniel Hopfer)작인 ‘거짓을 행하는 이들을 꾸짖는 예수’. 마태복음 7장 15-21절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1530년경 다니엘 호퍼 (Daniel Hopfer)작인 ‘거짓을 행하는 이들을 꾸짖는 예수’. 마태복음 7장 15-21절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분명 사람한테 한 꾸지람이다. 온 몸이 털로 덮여있는 기이한 존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정체는 사람이지만 하는 행동이 형편없는 사람에게 하는 욕지거리다. 누구인지(to be)보다는 무엇을 하는지(to do)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in theory) 사람이지만 실질적으로(in practice)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하면, 당신을 낳아준 어머니로부터도 들을 수 있다. “짐승을 낳고 길렀구나”라는 말은 매우 슬픈 말이 아닐 수 없다. 누구인지 보다는 무엇을 하는지가 진정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기독교인일 수 있다.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교회도 잘 다니기 때문이다. 침례나 세례 증서도 한 장 가지고 있다면 이론상 그리스도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진짜배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예수는 매우 섬뜩한 말씀을 남기셨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마태복음 7:17-19) 아무리 그럴싸하게 생긴 나무가 있다고 해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진짜배기 나무가 아니라서 찍어 버려야 한단다.

예수는 이 비유를 사람에게도 적용하신다.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7:20-21) 적힌 문자 그대로 적용하자면 정말 큰일이다. 교회마다 온통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수도 누구인지 보다는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신다. 말끝마다 ‘주님’을 읊조리는 열심 교인이어도 소용없다. 행함이 없다면 그토록 외치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헛일인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전통적 교리는, 위 예수의 말씀보다는 바울이 적은 로마서에 더 무게를 두어 ‘구원’을 말한다. ‘성경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로마서는 기독교인의 신앙 근본을 가장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누가 그리스도인지 그 ‘이론’을 빼어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놓치는 사실이 있다. 로마서가 교리, 즉 이론의 책인 것이 맞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3분의 1가량은 ‘실천’(practice)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사람이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인격적인 고백과 믿음으로 인해 구원은 이루어진다. 착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종교적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 날 수 밖에 없다. 마음에 그렇게 사랑과 감사가 넘쳐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선한 일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예수의 말씀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 말씀 그대로만 보자면 행실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화해하여 보려는 신학자들의 시도나 목사님들의 설교를 접해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 자체가 하나님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신앙인이 늘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게 하도록 말이다.

장롱 면허증이란 말이 있다. 운전 면허증은 있는데 전혀 운전을 안 하니까, 면허증이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운전 면허증이 있는 이유는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 아닌가. 침례나 세례를 받고 교인으로 등록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도, 때론 장롱 면허증이 된다. 침례 증서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하게’ 행할 면허증을 딴 것과 같다. 그런데 선한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증서는 완전 쓸데없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면허증을 주었는데, 전혀 실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어느 교회에 가서 참 인상적인 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전 교인이 그냥 성경만 길게 읽는데, 무척이나 마음을 울렸던 예배였다. 해설이 없이 본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그 본문은 로마서 12장이었다. 로마서 1-11장까지 보면, 하나님 앞에 사람이 어떻게 의로워 질 수 있는지 바울이 빼어나게 설명하고 있다. 매우 교리적인 이론적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고 나서 12장에 이르러서는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마치 이론을 설명한 1-11장의 결론인 것처럼 들린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자격을 갖추고 나서, 어떻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알려준다.

참 예배는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드리는 것이다.
참 예배는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드리는 것이다.

그 12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서 12:1) 예배는 날 맑은 일요일을 기분 좋게 시작하는, 마치 좋은 영화 한 편을 감상하러 가는 것 같은 일이 아니다. 예배란 일상에서 나 자신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일요일 오전 같은 특정한 시간에 드리는 의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말한다.

기독교인이 그런 삶을 살면 이렇게 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2) 그래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행위는 세상의 악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야 한다. 그런데 그 차이가 없다면, 무늬만 나무인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된다. 예수께서 찍어 버리라는 그 나무 말이다.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8) 나누어 주고 가르치며 베푸는 선한 행실을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진정성을 늘 점검해야 한다. 순수한 마음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섞여 있는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9)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 성도들이 쓸 것을 공급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십시오.”(12-13)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종교적 행위는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고 손님을 환대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의 선한 역량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야 한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14)

이웃에게 잘 대해 준다고 하여, 이웃의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고 뭐든 ‘함께’ 하는 사람이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15)

다시 예수의 무시무시한 경고로 돌아가 보자. 위와 같은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마태복음 7:22-24) 그리스도인은, 들었다면 행해야 한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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