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들의 행복한 일터를 그리는 잡지, ‘베어 매거진’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베어(bear) 매거진’ 서상민(오른쪽) 편집장과 이상영(왼쪽) 이사를 만났다. 미대 재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두 사람은 현재 출판사 ‘디자인 이음’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부부 동업자다. 이상영ㆍ서상민 부부 제공

어딘가 좀 이상한 잡지다. 톱스타의 근사한 화보도, 다가오는 시즌을 겨냥한 ‘패션 트렌드’ 기사도, 하다못해 그 흔한 광고조차 없다. ‘어서 지갑을 열라’고 부추기는 달콤한 속삭임 대신 이 안에 담긴 건, 지갑 사정이야 얄팍할지언정 얼마든지 행복하다 말하는 이들의 진지한 고백. “돈 안 되면 어때요? 적게 쓰면 되지. 누가 좀 덜 알아준다 해서 큰일 나나요? 나만 좋으면 그만인걸. 이 일을 할 때야말로, 매 순간이 짜릿한 걸요.”

1년에 4번, ‘베어 매거진’이 찾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흔하디 흔한 일반인들이다. 유일하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것. 커피 한 잔에 ‘인생’이 담긴다 믿는 카페 사장부터, 13년간 명맥이 끊어졌던 LP판을 부활시킨 레코드사 대표, 돌연 도시의 삶을 버리고 ‘깡시골’에 민박집을 연 젊은 부부까지…. 사는 모습이야 천차만별이지만, 누가 뭐라 하건 ‘내키는 일만 한다’는 인생철학만 두고 본다면 다를 게 없다.

“베어 매거진을 만든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제 아무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시대라 할지언정,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가 우울하다면 삶이 행복할 리 없잖아요.”(서상민 편집장)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행복의 유효 기간이 고작 ‘퇴근하는 순간부터 출근 직전까지’에 불과하다면, 그건 분명 ‘내 삶’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닐까.

‘베어 매거진’은 평범한 이들의 행복한 일터를 그리는 휴먼 매거진으로 지난 2015년 6월 창간한 이래 석 달에 한 번씩 계간으로 발행된다. 디자인 이음 제공

“아직도 생각나는 인터뷰이의 한마디가 있어요. 당신, 좋아하는 일을 위해 통장이 바닥을 치고 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지경까지 가본 적 있나요? 무릎을 쳤죠. 우리가 돈 안 되는데도 이 잡지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어요.”(이상영 이사)

잡지 출판이 ‘사양산업’이 된 요즘, 3년간 백여 명의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두 권의 책으로 엮어낸 ‘베어 매거진’의 서상민(43) 편집장과 디자인 이음의 이상영(42) 이사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들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베어 카페에서 만난 서상민(43) 편집장. 한설이 PD
◇”이 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 걸까?”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미대 실기실. 구질구질한 몰골로 화판 앞에서 밤새워 붓질을 하던 S군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 짓을 하는 걸까?’” (7호 ‘흙’편 편집장의 말 중)

그 후 17년이 지났지만 S군은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초췌한 몰골로 컴퓨터 앞에서 밤새워 마감을 준비하며 말이다. 서상민 편집장 얘기다. 20대의 절반을 바쳤던 영화일을 그만둬야 했을 때도, 서른을 넘긴 나이에 편집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줄곧 그의 머릿속엔 가시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이 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 걸까?’

“늘 ’그렇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했어요. 제 자신이 원체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편집 디자인도 처음엔 ‘굶어 죽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재미있어서 한 일이에요. 학교 선배들 전시회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 좀 달라’고 들이대기도 하고, 돈 되는 건 닥치는 대로 다 했어요. 어쨌든 좋더라고요. 종이를 만지며 책을 만들어내는 일들이요.”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명색이 미대 출신 디자이너인데, 글자를 ‘빨주노초파남보’로 만들어 달라는 고객의 뜨악한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었단다.

“쉽게 따지자면, 그때의 저는 ‘남의 거’를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지 ‘내 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갈증이 생겼던 것 같아요. ‘아내와 나, 우리의 이름을 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2009년에 문을 연 출판사 ‘디자인 이음’이 업계에 막 안착했을 무렵이었다. “그래 이왕 할 거면, 내 평생의 고민을 담아야겠다, 각자의 영역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 보자.” 그것이 ‘베어 매거진’의 시작이었다.

서상민ㆍ이상영 부부는 2016년 서울 서촌에 위치한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카페로 문을 열었다. ‘커피’를 주제로 한 창간호를 준비하며 부부가 모두 커피 마니아가 됐기 때문이다. 카페 이름은 베어 매거진의 이름을 그대로 빌린 베어(bear) 카페. 창간호 집필 당시 인터뷰했던 커피 전문가들이 값진 조언을 해준 덕에 ‘커피 맛집’으로도 유명해졌다. 부부가 직접 가구를 설계하고 인테리어를 꾸몄다. 베어 매거진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이 매주 열리는 정기 워크숍에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디자인 이음 제공
“멋진 주말을 보내기 위한 잡지는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멋진 평일을 위한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1호 ‘커피’ 편 편집장의 말 중)

“최근 몇 년간 서점가를 장악했던 ‘힐링 콘텐츠’의 면면을 살펴보면 메시지가 다 거기서 거기예요.” 무작정 덮어두고 ‘괜찮다’거나, 일단은 미뤄두고 ‘떠나라’거나. “그런 무책임하고 가벼운 위로들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일하는 친구도, 관둔 친구도, 새 일을 벌이기 시작한 친구도 어느 누구 하나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니 근본적인 이유가 나오더군요.”(서상민)

성장이 멈춘 시대, 지금 당장 죽어라 버텨도 ‘안정적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일은 ‘고문’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예할 이유가 없어졌다면, 당장 내 인생의 8할을 투자하고 있는 ‘업’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일’의 성취감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5년 9월 커피를 주제로 한 창간호엔 스물아홉 명의 행복한 ‘커피쟁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커피 나무를 키우는 농부와 커피 머신을 만드는 엔지니어, 원두의 품질에 자존심을 거는 커피 장인들과 재능보단 연마에 가치를 두는 라테아트 바리스타까지…. 한 데 엮인 이들의 이야기에선 ‘행복한 일에 삶을 바친 자’들 특유의 치열한 낭만이 비쳤다.

’커피’를 주제로 만든 창간호. 2015년 6월 출판됐지만, 지금까지도 팔린다. 베어 매거진은 정기 간행물이지만 시의성이 강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보니 단행본처럼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 현유리 PD
◇ 옷 한 벌, 빵 한 조각, 꽃 한 송이에 쌓인 ‘시간의 무게’

창간호 ‘커피’ 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나온 베어 매거진은 총 12권. 출간된 지 한참 지난 책들도 인기가 꾸준하다. 꽃, 빵, 집, 옷, 책 등 물성이 강한 주제들은 물론이고, 기억이나 빛처럼 다소 추상적인 주제들까지 두루 섭렵했다. “솔직히 처음엔,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거든요. 열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여태껏 안 망하고 잘 굴러온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웃음)” (이상영)

팀 규모는 아담하다. 두 사람을 포함해 5명이다. 남편 서상민씨는 취재현장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아내 이상영씨는 기사를 받아 교정을 본다. “석 달에 한 번씩 200쪽 남짓의 원고를 준비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보통일’이 아니에요. 늘 시간이 없어서 부부싸움을 할 정도죠. 오죽하면 한 번은 제가 남편한테 그랬어요. ‘우리 책만 안 만들면 사는 게 되게 편해지겠다’고요.”(이상영)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출산하는 고통’을 맛보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에디터들은 취재하는 게, 아내는 교정 보는 게, 저는 사진 찍고 지면 디자인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죠.”(서상민)

베어 매거진에 실리는 대부분의 사진은 서상민 편집장이 직접 촬영한다. 아내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할 당시, 삼각대 들어주며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다. 사진은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피사체의 편안한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담긴 것이 특징. 비결은 ‘절대 연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한껏 얼어있던 사람도, 제가 계속 셔터를 눌러대면 나중엔 ‘찍든지 말든지’ 해요. 계속 긴장해있을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얼른 상황에 적응하게 만드는 거죠.” 피사체의 의식 속에서 카메라의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 최고의 한 컷이 나온다. 디자인 이음 제공

그렇다면 제작 과정은 어떨까. “하나부터 열까지 예상했던 대로 되는 게 없죠. 저희도 취재하며 난생처음 접하는 업계인 거잖아요.” ‘맨 땅의 헤딩’이다. 일단 다음호의 주제가 정해지면, 전원이 뛰어들어 그쪽 업계에서 ‘알아준다’ 정평이 난 종사자들을 알음알음 찾아나간다. “보통 취재원을 하나 둘 만나면서 배워 가요. 처음 만난 몇 분께 업계에서 유명하다는 다른 전문가를 소개받기도 하고요.” 거의 ‘눈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지만, 그렇게 점차 눈덩이 불려나가듯 취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보인단다. “책이 나가고 나면 ‘그래도 업계에서 손꼽히는 분들은 다 섭외하셨네요’란 말을 종종 듣거든요. 그럴 때 정말 뿌듯하죠.” (서상민)

주제를 선정할 땐 ‘세간의 주목을 벗어난 분야’들을 위주로 살핀다. “고작 옷 한 벌, 빵 한 조각, 꽃 한 송이…. 여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된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지, 다들 잘 몰라요. 바로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었죠.” 서 편집장도 7호 ‘흙’ 편 취재 당시 방문한 고령토 광산에서 페인트나 화장품에도 흙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겪으며 불에 강해진 흙이 나오는 곳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얼마 남지 않은 광산 중 하나였는데,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행여 흙이 상할까 봐 굴착기도 쓰질 않고 삽으로 직접 파내시더라고요.” 그들이 서툴게 이어가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순수한 열정이 읽혔다. “저희가 만난온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그랬어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진 않아도, 어딘가에 미쳐있는 사람들 특유의 들뜬 열기가 있었죠.”

최근 발간한 12호 ‘시골’ 편 취재 당시 서상민씨는 경남 남해의 ‘돌창고’를 다녀왔다. 시멘트가 귀했던 시절, 지역 주민들이 주변에서 돌을 채굴해 만들었다는 창고 공간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예술인들이 이 돌창고를 ‘문화 활동 공간’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건축적으로만 훌륭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 수준도 높았어요. 이렇게 후미진 시골에서 이 정도의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죠. 취재할 때마다 매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기분이에요.” 디자인 이음 제공
◇편집의 미학 살린 책…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베어 매거진의 인터뷰 기사들은 온라인에서 개별적으로 만나볼 수 없다. 오직 ‘완성된 형태의 책’으로만 공개된다. 일터에서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담긴 사진부터, 여백을 넉넉하게 남긴 텍스트 배열, 인터뷰가 실린 순서까지 모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책이 ‘사전’이에요. 예전엔 ‘책을 산다’는 건 곧 ‘정보를 산다’는 의미였죠. 지금은 아니거든요. 요즘 20대에게 책을 산다는 의미는 ‘소장할 만한 가치를 고려한 소비행위’예요. 취향을 반영하는 도구이자 능동적으로 문화 활동에 동참하는 매개체죠.” (서상민)

이들이 라이프스타일 잡지 ‘킨포크’의 한국판을 만들며 큰 인기를 누렸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슥’ 던져 놓아도 그 자체로 예쁜 인테리어 소품이 되는 책은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도 유유히 살아남았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독립출판이 엄청난 붐을 일으켰어요. 저는 이걸 ‘잠깐 유행하고 말 현상’이나 ‘젊은이들의 장난’ 정도로만 보고 넘겨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자인 요소가 극대화된 책들은 충분히 그 자체로 경쟁력 있는 상품이자 매체가 될 수 있거든요.” (서상민)

서상민ㆍ이상영씨 부부는 독립출판계에서 주목받는 작품들을 엄선해 ‘청춘문고’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은둔형 작가들을 발굴해 널리 소개하기 위함이다. 원본 그대로를 재출간한 것이 아니라, 표지부터 내지까지 모든 디자인을 리뉴얼 해 출판했다. 디자인 이음 제공

이들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편집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기억’을 주제로 한 10호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일러스트 작가부터, 오직 ‘흑백’ 사진만 필름으로 찍어내는 사진관 주인, 재건축을 앞두고 곧 허물어질 아파트를 기록하는 사람들과 수 십 년 된 영화 포스터를 하나하나 모으는 포스터 디자이너까지…. 언뜻 보기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여도 이들의 이야기가 한 데 모이는 순간, “그렇지, 모두 ‘기억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구나”하는 깨달음이 따라온다. “이런 게 바로 편집의 재미예요. 만약 저희가 온라인으로도 기사를 내보낸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잘게 쪼개지겠죠? ‘기억’이라는 범주로 묶여서 완성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족은 단 한 문장도 허용하지 않는 깔끔한 ‘문답 형식’의 구성도 모두 치밀한 연출이다. “기사를 읽었다기 보단 그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모든 인터뷰 기사의 주인공은 오직 ‘인터뷰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나 편집자의 그림자가 남지 않게 해야죠.” 디자인 이음 제공
◇’행복한 일을 하는 삶, 마냥 낭만적일까요?’

“그동안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절대 진리’가 있다면,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냥저냥 내키는 대로 설렁설렁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이요? 저는 지금껏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서상민)

어떤 일이든 생업이 되는 순간부턴 ‘밥벌이’의 무게가 얹힌다.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그저 ‘낭만적’ 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커피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절대 카페 하지 말라 하시고요. 빵 만드시는 분들을 만나면 제빵 쪽엔 얼씬도 말라세요. 저희도 그래요. 주변에 누가 이제 와 출판업에 뛰어들겠다? 어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릴 거예요.” (이상영)

그래서 ‘시골’을 주제로 한 12호엔 ‘생계’의 기로 앞에 놓인 귀촌인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았다.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갔지만, 덜 벌고 덜 쓰며 빈둥거릴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는 담담한 반성부터, 민박을 운영하며 버는 적은 수입으로는 아주 가까운 미래조차 보이지 않게 되리란 불안한 예감까지, 도시인들이 ‘귀촌’에 기대하는 정형화된 환상을 깨트리는 고백이 이어진다.

12호 ‘시골’ 편에 실린 경남 하동의 민박집 ‘소보루’와 주인 김자혜씨.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 남편과 함께 귀촌한 김씨는 하루에 딱 한 팀만 받는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적인 귀촌 사례는 아니었어요. 인터뷰이 본인도 인생의 다음 국면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였고요. 도시인들이 선망하는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의 전형이요? 막상 직접 들여다보니 흔치 않더라고요. 결국 다시 고민이 시작되는데… 저는 그런 현실적인 번뇌들이 담겨서 더 좋더라고요.” 디자인 이음 제공

“하지만 결국 ‘베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예요. 때론 지나치게 재고 따지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이요. 어깨너머 듣는, 남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 막상 부딪혀보면 아닐 때도 많거든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밀린 인쇄값 내라는 독촉에 마음의 여유를 잃기도 하고, 내년이면 벌써 딸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이대로 괜찮을까’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만들고 싶어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요. 할아버지가 돼서도 책을 만들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망하지 않을 겁니다.”(서상민)

‘부디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걸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생계와 낭만 사이에서 오늘도 흔들흔들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바로 이런 긴장 때문에 사는 게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 그러니,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어리둥절한 당신이라면,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된 당신이라면, 베어 매거진을 펼쳐보자.

‘주말엔 여행을 떠나고 가끔은 나를 위한 작은 사치도 누려보세요. 휴일의 달콤한 낮잠이나 버스의 빈자리처럼 일상의 작은 기쁨도 놓치지 말아요.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봅시다.” (2호 ‘꽃’ 편집장의 말 중)
베어 매거진은 묻는다. ‘지금 행복하게 일하고 있나요?’ 현유리 PD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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