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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돈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저출산

입력
2018.11.0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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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서유럽 대륙에서 2차대전 이후 자리 잡은 현대 국가체제의 한 모습이다. 히틀러의 전쟁국가(warfare state)에 맞서 승리할 경우 지향할 수 있는 국가체제로서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모습을 영국의 베버리지는 1942년 전쟁이 한창일 때 구체적 사회보장제도로 설계하여 보여 주었다. 결국 베버리지 보고서는 연합국 승리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는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이기도 했다.

전후 부흥기를 거치면서 확립된 복지국가 체제는 1970ㆍ80년대에 ‘영국병’으로 상징되는 재정 위기를 경험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 마거릿 대처 수상의 복지국가 개혁이 그때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보다 영국식 복지국가 축소가 사회보장제도의 대규모 감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국가별로 이미 확립된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에는 변화가 없었다. 재정 규모나 제도 변화에서 이른바 경로 의존성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복지국가는 명맥을 이어 갔다.

그런데 나름 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된 1970년대 이후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출산율의 저하이다. 1960년대 이후 보편적 피임 수단의 대중적 보급에서 시작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돌봄은 가정 내 여성의 몫이었는데, 여성 취업이 증가하면서 취업과 출산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이 취업을 선택한 결과다. 그런데 이른바 대체출산율이 2.1 이하로 내려간 19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저출산 양상이 서유럽 복지국가에서 단일한 양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적극적 인구정책ㆍ가족지원정책을 추진해 온 프랑스에서는 1993년 1.66이 가장 낮은 출산율이었다. 비교적 성평등 문화가 발달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 변화에 사회적 돌봄시설 구축과 남성 돌봄참여 확대로 적극 대응한 노르딕 국가에서 나타난 저출산 양상도 달랐다. 노르웨이의 경우 출산율의 최저점은 1983년 1.66, 스웨덴은 1999년 1.5로 나타났다. 반면 남성 취업노동, 여성 돌봄노동의 전통적 가족관이 강해 여성의 취업ㆍ돌봄노동의 이중부담 해소에 정책적 반응이 늦었던 독일의 출산율 최저점은 1994년 1.24, 이탈리아는 1995년 1.19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출산율 1.5 이상을 보인 국가들에 비해 독일, 이탈리아처럼 보수적 가족관이 강한 국가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1.3 이하 출산율의 지속에서 ‘초저출산율 1.3 이하’ 개념이 나왔다.

결국 무슨 이야기인가?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여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도 여성이 취업ㆍ돌봄노동의 이중 부담을 갖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볼 수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1970년대 출산율이 하락하기 이전에 아동수당제도를 도입했다. 소득ㆍ자산과 자녀 출생 순위를 고려한 아동수당의 경우 프랑스와 스웨덴의 도입 연도는 1930년대, 영국은 1946년, 독일은 1955년이었다. 소득ㆍ자산, 출생 순위에 관계없이 지급하는 보편적 아동수당제도 실시 연도는 스웨덴 1948년, 영국 1977년, 독일 1975년이다. 프랑스는 1998년 급여 수준을 상향조정한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둘째 자녀부터가 대상이다.

아동수당제도가 이미 도입, 확대됐지만 서유럽 여성들은 아이를 더 낳지 않았다. 기존 아동수당제도를 통해 아동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수조 원의 아동수당과 출산장려금을 뿌린다고 저출산을 ‘극복’할 수는 없다. 극복의 대상은 저출산이 아니라 성차별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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