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을 차세대 리더의 대표 주자로 소개하며 표지 모델로 내세운 10월 22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타임 홈페이지

“방탄소년단(BTS)을 봐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연예인들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지난달 12일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에 실린 기고문 일부다. 유력 주간지 ‘타임’의 표지 모델을 꿰차고, 유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주목을 끈 BTS의 활약상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나 보다.

내용은 차라리 격문에 가깝다. BTS를 현대 외교에서 중시하는 ‘소프트파워(연성권력)’의 성공신화로 치켜세우더니 연예인의 가장 큰 성공은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미국과 정면 대결하는 급박한 상황인 만큼 문화예술인들이 돈만 밝히지 말고 냉혹한 국제정치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는 엄중한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놀라운 변화다. 환구시보는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사태로 들끓을 당시 무차별로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는 악명으로 국내에 또렷이 각인된 매체다. 더 놀라운 건 독특한 관점이다. 소프트파워는 강압이나 지시가 아닌 매력과 호감으로 상대를 움직여 내편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연예인을 향한 ‘팬심’과 흡사하다. 그런데 마치 연예인들에게 갑옷을 입히고 투구를 씌워 미국과 일전을 벌이는 전장에 떠밀고 있으니 전세계 어느 팬이 선뜻 다가와 마음을 열지 의문이다. 간만에 한국을 띄운 중국의 낯선 시도가 별반 달갑지 않은 이유다.

“언론의 역할은 여론을 감독하는 것이다.” 지난달 국내 한 포럼에서 중국 관영매체 고위간부는 이렇게 단언했다. 동시에 강조한 건 양국의 친선이었다. 체제 차이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획일적인 여론 통제와 자유분방한 민간 교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도통 와 닿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중국에서는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접속이 아무 예고 없이 차단돼 우리 교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점이었다. 정부도 뾰족한 묘수가 없다며 뒷짐을 지는데 그쳤다.

하긴 예전에는 중국 호텔에서 CNN을 보다가 갑자기 TV화면이 검게 변하는 황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통제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 하루 종일 외신을 지켜보다가 여차 싶으면 버튼을 눌렀다는 의미다. 도시와 농촌의 길거리에 날로 폭증하는 폐쇄회로(CC)TV는 감시사회 중국을 상징하는 또 다른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지난 9월 베이징(北京)에 출장 갔을 때다. 저녁을 먹으러 차를 타고 톈안먼(天安門) 광장 앞을 지나는데 넓은 도로가 돌연 주차장으로 변했다. 빨간 신호등이 바뀌지 않아 20여분쯤 하염없이 멈춰서 있었다. 일부는 밖으로 나와 중얼거리거나 화풀이로 차 바퀴를 걷어차기도 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누군가 고위공직자가 지나가겠거니 막연히 짐작만할 뿐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몇 마디 투덜대자 일행이 한마디 건넸다. “늘 있는 일인데 뭐, 그게 바로 중국이야.”

연예인을 닦달해서 전사로 키우고,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막고, 국가가 사회를 쥐락펴락한다면 제아무리 곳간이 그득한들 이웃들이 쉽사리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돈과 힘으로 제압하면 더 이상 소프트파워가 아닐진대 중국몽(中國夢ㆍ중화민족의 부흥)과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화려함에 취해 기고만장한 것으로 비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 사드 사태를 통해 중국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한계를 절감하며 값비싼 비용을 치렀다. 하물며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비핵화를 성사시키려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이처럼 딴 궁리를 하며 이질감만 커지고 있으니 과연 칼로 무라도 벨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환구시보 기사에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다. “그럼 TF보이즈(중국의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는 어디에 있나요.” BTS만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제대로 저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김광수 국제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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