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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폭주행위에 '레이스'라는 표현, 그렇게 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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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폭주행위에 '레이스'라는 표현, 그렇게 써도 될까?

입력
2018.11.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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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행위가 정말 '레이스'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행위가 정말 '레이스'라고 해야 할까?

'도심에서 000km/h 레이스', '불법 레이스 중 사고'

뉴스를 보다 보면 제법 자주, 쉽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내용은 늘 비슷하다. '~한 사람들이 도심(혹은 일반 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크게 넘긴 속도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라는 것이다.

섬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규정 속도를 '~km/h 이상 넘겼다' 혹은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며 주변 운전자에게 위협감을 주었다'라는 표현들 말이다. 이와 함께 사고 장면 등이 이어지며 보는 이들의 입에서 '나쁜 표현'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물론 위의 내용들, 그러니까 뉴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에는 거짓이 없다. 그들이 규정 속도를 위반하고, 흔히 말하는 칼치기를 했고, 이로 인해 주변에게 피해를 준 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서술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저게 레이스인가?'라는 표현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레이스라고 말할 수 없다. 레이스는 '경주'라는 넓은 범위의 의미가 있겠지만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본다면 '정해진 규정이 존재하고 이를 준수하며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규정에 대응하고 또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진짜 레이스'에 나서는 팀과 선수들은 경기의 순간이 아닌 그 외적인 시간에도 많은 연구와 훈련을 거친다. 여기에 짧게는 매 경기, 길게는 1년의 기준으로 변화되는 기술적인 규정에 대한 대응도 함께 이루어 진다.

알고 있다. '레이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조금 더 이목을 끌기 좋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좋다는 것도 사실이고 적절하게도 '그런 사고'를 치는 이들은 대다수가 고급스러운 외제차, 고출력의 외제차로 달리고 있으니 뜨거운 댓글의 반응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표현을 사용되고 있는 순간, 그 표현을 보며 '레이스'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여기는 국내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말 그대로 '우리의 레이스가 저런식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모두 아울러 '선수들은 일반 도로에서의 달리는 운전자들에게 제발 안전한 서킷에서 즐겨라'라는 말을 매 인터뷰마다 할 정도다. 또 국내 모터스포츠를 관장하는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나 국제 규모의 협회인 'FIA' 또한 '로드 포 세이프티' 혹은 '양보 운전 서약' 등과 같은 다양한 안전운전 캠패인을 펼치고 있는데 그들의 노력를 '언어로 짓밟는 건' 아닐까?

또한 굳이 레이스가 아니더라도 '난폭운전', '무법(광란)의 질주' 등과 같은 대중적인 표현과 '공동위험행위'라는 보다 법적인 표현이 존재 하는데 언론에서 굳이 '레이스'라는 표현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참고로 법적으로 볼 때 공동위험행위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불법행위다.

강상구 변호사는 "공동위험행위는 두 명 이상이 일반 도로에서 공동으로 무리지어 다님으로써 타인에 위험을 가하거나 잠재적인 교통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을 의미하는데, 과속, 난폭, 보복운전은 물론이고 앞뒤, 좌우로 무리지어 달리는 운행까지도 포함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만약 이러한 공동위험행위와 함께 '일정 구간에서의 기록', '최고 속도' 등과 같은 경쟁을 통해 금품이나 자동차 등을 주고 받는 등 금전적인 이익과 결부된다면 도박죄까지도 성립되어 가중처벌될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이러한 행위를 조장하거나 도운 경우에도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보자면, 국내 모터스포츠에 관련된 취재 기사와 인터뷰 기사를 쓰다보면 '그들 만의 리그' 혹은 '수준이 낮은 대회'라는 식의 비아냥과 조소가 가득한 댓글들을 볼 수 있다.

물론 국내 대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참 답답한 장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국내의 빈약한 환경에서 모터스포츠 대회를 운영하는 입장이나, 대회에 출전하는 이들도 '현실에 맞춰서 레이스를 해야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회 규정이나 심사, 운영 등에 대한 논란도 사실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깎아 내릴 '한국 모터스포츠'는 아니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에는 이미 자동차 제조사(캐딜락, BMW, 현대)는 물론이고 자동차와 관련된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등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드라이버들의 수준도 나날히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90년대국내 모터스포츠를 호령하던 김의수, 이재우, 조항우(스티븐 조) 등이 아직도 현역이냐며 '수준이 발전하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후배들이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다.

F1 출신의 베테랑 외인 이데 유지(엑스타 레이싱)은 물론이고 슈퍼GT를 비롯한 일본의 다양한 모터스포츠에서 경험과 우수한 성적을 이어온 아오키 타카유키(ERC-인제 레이싱), 야나기다 마사타카(아트라스BX 레이싱)가 국내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고 있다.

여기에 과거에도 사가구치 료헤이(전 인디고 레이싱), 밤바 타쿠(전 아트라스BX 레이싱) 등은 물론이고 '눈을 감고도 후지 서킷을 달릴 수 있다'라던 '카케야마 마사미(전 인제 레이싱)과 같이 일본에서도 '거물급'으로 평가 받는 선수들이 한국에서 경쟁했었다.

이외에도 유럽 무대에서도 강력한 퍼포먼스를 과시했던 GT3 드라이버인 팀 베르그마이스터(전 아트라스BX 레이싱)이나 카를로 반담(전 팀 106)은 물론이고 미치 길버트(전 인치바이인치 레이싱), 알렉스 폰타나(팀 훅스 모터스포츠)와 같이 유럽 태생의 드라이버들 역시 우리의 무대에서 경쟁했다.

반대로 국내의 선수들이 해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CJ로지스틱스 레이싱팀을 이끄는 황진우 감독은 과거 슈퍼GT와 A1 그랑프리에서 호평을 받았고 최명길과 임채원, 최해민 등은 포뮬러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여기에 최근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GT 레이스에서 활약 중인 릭윤(윤상휘)와 꾸준히 GT3 레이스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앤드류 김(김재원)이 있다. 또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은 팀을 꾸며 GT3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취미삼아 레이스한다'라는 비아냥을 가장 많이 들은 팀 106의 류시원 감독은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원메이크 레이스에서 포디엄 정상을 차지하고, 또 지난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최종전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포디엄 피니시를 기록하며 드라이버로서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우리의 모터스포츠가 세계 최고'라는 건 아니다. 다만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또 개선해야 할 점, 발전해야 할 점도 정말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대로 분명 경쟁력과 가능성을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쉬운 표현으로 그들의 노력을 짓밟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사진: 김학수 기자,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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