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를 구분할 수 있다. 이름이 생김새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흔히 뱁새라고 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머리가 붉은색이고 눈이 오목 들어간 모양의 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부리가 노란색이고 노처럼 넓적하게 생겼다. 이름을 알면 그 동물이 보인다.

바다에는 말(hippo)처럼 생긴 바다 괴물(kampos)이라는 뜻의 생물(hippocampus)이 산다. 귀여운 바닷물고기인 해마(海馬)에 괴물이란 뜻이 있다니 유감이기는 하지만 말처럼 생긴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하마(河馬 hippopotamus)에는 왜 하마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강(potamus)에 사는 말(hippo)이라니… 도대체 어디가 말처럼 생겼다는 말인가. 차라리 물돼지라는 뜻으로 하돈(河豚)이라고 했다면 불만이 없었을 것 같다.

분자유전학의 증거로 볼 때 하마는 한쪽으로는 고래와 가깝고 다른 쪽으로는 돼지와 (소, 양, 낙타처럼 되새김질 하는) 반추동물에 가깝다. 말은 소와 달리 반추동물이 아니다. 말과 하마는 멀어도 너무 먼 관계다. 그러니 하마란 이름은 생김새는 물론이고 분자유전학적으로도 옳지 않다. 하마는 고래와 돼지 사이에 누구와 더 가까울까? 놀랍게도 고래다. 고래는 하마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그런데 왜 하마는 고래처럼 생기지 않고 돼지처럼 생겼을까?

고래는 육상을 버리고 바다로 돌아간 포유류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생명 진화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육지 환경에 맞추어 겨우 재편성한 삶의 도구들을 포기하고 다시 바다 환경에 맞추어 호흡에서 생식에 이르는 온갖 장치를 다시 짜야 했다. 물론 고래 혼자만의 외로운 여정은 아니었다. 바다소인 듀공과 매너티도 육상생활을 완전히 포기했다. 바다표범과 바다사자는 절반만 돌아갔다. 이에 반해 하마는 육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래보다 더 먼 친척인 돼지와 닮은 모습을 유지했다.

하마는 이름만큼이나 오해를 많이 받는 동물이다. 가장 큰 오해는 하마는 귀엽고 착한 동물이라는 것. 수컷은 만 여섯 살이 되면 1,200kg까지 나가는 거구가 된다. 느림보일 것 같지만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 말기의 최고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가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그리고 매년 500명 이상의 사람이 하마에게 희생당한다. 물론 초식동물인 하마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심심하거나 귀찮아서 접근한 사람을 해친다. 하마는 사자나 상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물이다. 하마는 포식자는 아니지만 다른 동물의 먹잇감도 아니다. 감히 하마를 공격하는 동물은 없다. 하마 새끼에게 가장 위협적인 동물은 다른 수컷 하마다. 어미의 수유기간을 줄여서 얼른 짝짓기하고 싶은 수컷들이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이다.

바다소는 물속에 있는 풀을 먹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마는 바다소와 달리 물속에서 풀을 먹는 게 아니다. 해가 지면 물가로 나와서 밤새 풀을 먹는다. 하룻밤에 50kg을 먹어치운다. 해가 뜨면 물로 돌아가서 느긋하게 몸을 식히면서 밤새 먹은 풀을 소화시키고 물속에서 배설한다. 하마 똥은 강과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 곤충의 영양분이 된다. 물고기는 다시 새와 사람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건기가 되면 하마 똥 때문에 호수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 괜찮다. 독수리와 악어가 깨끗하게 청소해준다. 그리고 다시 우기가 찾아온다. 생태계는 이렇게 돌고 돈다. 그런데 사람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나무를 몽땅 베었다. 댐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면서 물의 흐름을 바꿨다. 우기가 되어도 생태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물고기가 줄어들고 어부의 수입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하마 똥 탓을 하지만 호수 밖의 영양분을 호수 안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하마의 역사적 사명이다. 하마는 잘못이 없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어찌나 성공적이었는지 정말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물먹는 하마’라는 제습제 역시 브랜드 네이밍에 성공한 제품이다. 하마는 물만 먹고 사는 줄 아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 상표는 ‘돈 먹는 하마’라는 관용구에서 나왔다. 매년 다음해 예산안을 심의하는 이맘때가 되면 ‘돈 먹는 하마’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로 누가 ‘돈 먹는 하마’로 지칭될까? 돈은 끝없이 투자되는데 거기서 나오는 돈은 없는 분야다.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말로 돈 먹는 하마다. 여기서는 수익이 창출될 일이 없으며, 특히 공공 영역에 속한 경우라면 이익이 창출되어서는 안 된다. 땅 위의 영양분을 물속으로 운반하는 것이 하마의 생태적 역할인 것처럼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역시 자원을 이동시키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돈 먹는 하마에게는 돈을 아낌없이 주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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